손관승의 새벽 3시
‘빈티’ 나는 코트도 혼을 불어넣으면 ‘빈티지’
나의 낡은 트렌치코트와 백팩
등록 : 2018-04-19 14:46
빠진 어금니의 허전함과 참담함
치과의사 친구 ‘대체품 많다’ 위로
특파원 시절 입은 코트는
‘글로생활자’로 사는 나의 정체성
시대의 치통일까? 화사한 벚꽃들이 강풍 앞에서 속절없이 떨어지던 날 나는 소중한 것과 이별했다. 수십 년 동안 내 몸의 일부였던 어금니와의 작별이었다. “앓던 이 빠진 기분”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빠진 어금니를 바라보는 심정은 뭐라 설명하기 힘들다. 통증에서 해방된 시원한 기분에 앞서 참담하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
평생 조직에 헌신을 다했지만 이제는 용도 폐기 상태에 처한 직장인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금니가 없으면 씹는 데 불편하고 소화력도 떨어진다. 자연스레 우울해지고 얼굴 모양도 변하며, 자신감도 떨어진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처지는 그와 다르지 않다. 심리적 낙차도 크다. 치통을 앓아본 사람만이 그 고통과 상실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직장을 잃어버린 경험을 가진 사람이 그 어려운 심정을 공감해줄 수 있다. 빠진 어금니를 앞에 두고 참담해진 내 마음을 읽었는지, 치과의사인 친구는 이렇게 위로했다.
“기분 안 좋지? 그런데 요즘은 의학기술이 발전해서 얼마든지 대체품이 많으니까 그리 우울할 필요가 없어. 이제 다시 자신감을 가져도 돼!”
그렇게 하여 나는 새로운 어금니와 만났다. 정말이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싶게 새로운 어금니와 친해졌다. 다시 웃음과 활기를 찾았다. 인공 치아로 음식을 씹는 ‘저작’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었듯이 나는 글을 쓰는 ‘저작’ 활동으로 새롭게 세상과 만나고 있다. 정들었던 직장에서 나온 뒤 찾은 나의 일이다.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며 사는 나는 스스로를 ‘글로생활자’라 이른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썼지만 ‘작가’라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것 같고, 저자라 말하자면 너무 평범한 느낌이 들기에 시도한 셀프 작명이다. 그렇다고 이 활동을 결코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글로생활자란 ‘글을 써서 생활하는 자’라는 뜻이니 취미가 아니라 일, 프로라는 뜻이다. 나는 여러 주제의 강연을 하지만, 최근 들어 ‘2막 인생’을 준비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요청이 부쩍 늘었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중년의 실직은 확실히 우리 사회의 무거운 과제임을 실감하게 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단순히 인생 2모작이 아니라 3모작, 4모작으로 이어지는 ‘N모작’ 시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계절이 바뀌기 전 그분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내가 즐겨 휴대하는 물건이 둘 있었다. 오래된 트렌치코트와 가방이다. 그 베이지색 트렌치코트가 나와 인연을 맺은 지 18년의 세월이 지났다. 소매와 옷깃이 해어져 자칫 남루해 보일 수 있는 까닭에 이제는 그만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입으라는 충고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그 옷에는 내가 걸어왔던 직업과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특파원 시절 그 코트를 입고 온갖 현장을 누볐고 수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했으니 그 자체로 내 역사이자 정체성이 아닌가. 내가 글로생활자로서 다시금 일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과거 덕분이다. 단지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버릴 필요는 없다. 의미와 스토리를 입히면, 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비록 ‘빈티’ 나 보이던 것조차 멋진 ‘빈티지’ 제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좋은 사례였다. 강연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시청각 보조 자료도 찾기 힘들다.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그 옷을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있다. 트렌치코트와 더불어 강연장에 자주 동행하는 가방은 등에 메는 백팩이다. 이 가방은 ‘글로생활자’로서 나의 존재 가치를 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나의 모바일 오피스, 움직이는 사무실 역할도 한다. 이제는 끈이 너덜너덜해질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메고 다닌다. 그 이유는 그 가방의 스토리에 있다. 약 5년 전 내가 대표이사를 그만둘 무렵 직원들이 내게 작별의 선물로 준 것이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으니 이제 이 가방을 메고 마음껏 여행을 하세요. 그리고 이 가방 안에 새로운 꿈과 열정,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가득 담아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내게 이 가방은 단순히 물건을 넣는 감정이 없는 차가운 물체가 아니라 나와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살아 있는 따뜻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두렵다. 그럼에도 나는 이 가방으로 용기를 얻고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법도 배웠다. “나의 전성기는 언제였던가? 그때가 좋았지!” 과거의 기억장치는 미화되는 법, 많은 사람은 현재에 대한 불만을 과거의 추억에서 위로받으려 한다. 우리의 지나온 과거는 자산일까, 빚일까? 만약 그것이 오래 앓던 어금니라고 한다면 이를 가리켜 자산이라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더 이상 고통스럽게 안고 있을 게 아니라 과감하게 새로운 것으로 갈아끼워야 한다. 반면에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버릴 필요는 없다. 단지 과거의 것이라고 해서 비판 없이 수용하면 안 되는 것처럼,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서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래된 것과 새것의 공존 가운데서 숨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지나온 과거를 기억하고, 내 정체성을 유지하며, 미래로 향하는 마음, 그것이 곧 나라는 존재 아닐까? 과거를 미래의 동력으로 만들자. 과거의 향수에 젖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수용하기에 따라서 과거는 빚이 아닌 자산도 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걸어온 인생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과거의 시간에 혼을 불어넣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그렇게 하여 나는 새로운 어금니와 만났다. 정말이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싶게 새로운 어금니와 친해졌다. 다시 웃음과 활기를 찾았다. 인공 치아로 음식을 씹는 ‘저작’ 활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되었듯이 나는 글을 쓰는 ‘저작’ 활동으로 새롭게 세상과 만나고 있다. 정들었던 직장에서 나온 뒤 찾은 나의 일이다.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며 사는 나는 스스로를 ‘글로생활자’라 이른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썼지만 ‘작가’라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것 같고, 저자라 말하자면 너무 평범한 느낌이 들기에 시도한 셀프 작명이다. 그렇다고 이 활동을 결코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글로생활자란 ‘글을 써서 생활하는 자’라는 뜻이니 취미가 아니라 일, 프로라는 뜻이다. 나는 여러 주제의 강연을 하지만, 최근 들어 ‘2막 인생’을 준비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 요청이 부쩍 늘었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중년의 실직은 확실히 우리 사회의 무거운 과제임을 실감하게 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단순히 인생 2모작이 아니라 3모작, 4모작으로 이어지는 ‘N모작’ 시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계절이 바뀌기 전 그분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내가 즐겨 휴대하는 물건이 둘 있었다. 오래된 트렌치코트와 가방이다. 그 베이지색 트렌치코트가 나와 인연을 맺은 지 18년의 세월이 지났다. 소매와 옷깃이 해어져 자칫 남루해 보일 수 있는 까닭에 이제는 그만 버리고 새것으로 갈아입으라는 충고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그 옷에는 내가 걸어왔던 직업과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특파원 시절 그 코트를 입고 온갖 현장을 누볐고 수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했으니 그 자체로 내 역사이자 정체성이 아닌가. 내가 글로생활자로서 다시금 일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과거 덕분이다. 단지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버릴 필요는 없다. 의미와 스토리를 입히면, 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비록 ‘빈티’ 나 보이던 것조차 멋진 ‘빈티지’ 제품으로 바뀔 수 있다는 좋은 사례였다. 강연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시청각 보조 자료도 찾기 힘들다.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연유로 나는 그 옷을 지금까지 버리지 않고 있다. 트렌치코트와 더불어 강연장에 자주 동행하는 가방은 등에 메는 백팩이다. 이 가방은 ‘글로생활자’로서 나의 존재 가치를 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나의 모바일 오피스, 움직이는 사무실 역할도 한다. 이제는 끈이 너덜너덜해질 정도가 되었지만 여전히 메고 다닌다. 그 이유는 그 가방의 스토리에 있다. 약 5년 전 내가 대표이사를 그만둘 무렵 직원들이 내게 작별의 선물로 준 것이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으니 이제 이 가방을 메고 마음껏 여행을 하세요. 그리고 이 가방 안에 새로운 꿈과 열정,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가득 담아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내게 이 가방은 단순히 물건을 넣는 감정이 없는 차가운 물체가 아니라 나와 함께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살아 있는 따뜻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두렵다. 그럼에도 나는 이 가방으로 용기를 얻고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법도 배웠다. “나의 전성기는 언제였던가? 그때가 좋았지!” 과거의 기억장치는 미화되는 법, 많은 사람은 현재에 대한 불만을 과거의 추억에서 위로받으려 한다. 우리의 지나온 과거는 자산일까, 빚일까? 만약 그것이 오래 앓던 어금니라고 한다면 이를 가리켜 자산이라고 표현하기는 힘들다. 더 이상 고통스럽게 안고 있을 게 아니라 과감하게 새로운 것으로 갈아끼워야 한다. 반면에 오래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버릴 필요는 없다. 단지 과거의 것이라고 해서 비판 없이 수용하면 안 되는 것처럼,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해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모두 과거에서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래된 것과 새것의 공존 가운데서 숨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지나온 과거를 기억하고, 내 정체성을 유지하며, 미래로 향하는 마음, 그것이 곧 나라는 존재 아닐까? 과거를 미래의 동력으로 만들자. 과거의 향수에 젖는 것만으로는 곤란하다. 수용하기에 따라서 과거는 빚이 아닌 자산도 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걸어온 인생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과거의 시간에 혼을 불어넣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