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한날한시에 전 세계인이 멍때리면 어떨까요”
제3회 한강 멍때리기 대회 여는 웁쓰양
등록 : 2018-04-19 14:56
2014년 개인적으로 처음 개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유엔이 정한 ‘세계 멍때리기 데이’ 꿈꿔
‘멍때리기.’
누구나 흔히 쓰는 말이지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다. 이를테면 ‘넋 놓기’ ‘멍하게 있기’란 뜻의 신조어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멍’에 ‘하다’의 센 말로 쓰이는 ‘때리기’가 더해진 것이다.
어쨌거나 의미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데, 한데 모여 작정하고 멍을 때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오는 22일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열리는 ‘2018 한강 멍때리기 대회’ 참가자 150명이 그 주인공들이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통념을 고쳐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치 있는 행위다.” 2014년 멍때리기 대회를 처음 만든 웁쓰양컴퍼니의 대표 겸 아티스트인 웁쓰양은 ‘멍’의 재인식을 강조했다. 웁쓰양컴퍼니는 서울시와 함께 멍때리기 대회를 주최한다. 멍때리기란 뭔가? “명상과 비교하면 알기 쉬울 것 같다. 멍때리기는 의도하지 않은 채로 벌어지는,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현상이다. 반면에 명상은 의도를 가진 행위다. 멍때리기는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멍때리기 대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회화 작업을 하던 2013년께 심한 슬럼프가 왔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결심하고 설렁설렁 지냈지만 불안했다. 나만 멈춰 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움직이니까. ‘다 멈추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의 퍼포먼스를 구상했다.” 이렇게 해서 2014년 10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웁쓰양이 개인 차원에서 마련한 첫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페이스북으로 홍보한 대회엔 50명이 참가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멍때리기 대회에서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나? “아이러니하지만 조롱이다.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면서 대회 바깥의 바쁜 사람들에게 ‘약 오르지’ 하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정신적·육체적 휴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게 목표였다. 지금처럼 서울시가 주최하는 정례 대회로 발전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올해 대회는 얼마나 신청했나? “이틀 동안 2760명이 신청했다. 그 가운데 150명을 추렸으니 18 대 1이 넘는다. 40~60대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 예년과의 차이다. 60대 어르신이 손자와 참가하는 등 가족 단위 출전도 많아졌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참가를 대신 신청한 경우도 있다.”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대신 여러 색깔의 카드를 이용해 불편한 점이나 요청사항을 표시한다. 졸릴 때 빨간카드를 들면 마사지 서비스가 제공되고, 목마를 때 파랑카드를 들면 물이 제공되는 식이다. 휴대전화 확인, 잡담, 시간 확인, 수면 등은 금지된다. 대회를 구경하는 시민들의 투표로 멍을 잘 때린 사람 10명을 먼저 고른 뒤, 이들 중에서 심박수를 가장 안정적이고 낮게 유지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 역대 우승자들이 적잖이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1등 수상자는 직장인 두 명과 취업준비생 한 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들은 잠옷 차림으로 출전했는데, 수상 소감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회사에 가기 싫은 상황을 재현하려 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2016년의 제1회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선 래퍼 크러쉬가 1위를 했다.”
외국으로도 멍때리기 대회가 수출됐다.
“2015년부터 외국 여러 도시에서 국제대회가 열리고 있다. 중국 베이징, 대만 타이베이, 홍콩,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이다. 영어로는 ‘스페이스아웃 컴피티션’(Spaceout Competition)이라 한다. 우리보다 삶의 질이 높은 유럽 사람들에게 멍때리기가 필요할까 싶지만, 그들도 오버워크(과로), 오버커넥트(과한 연결망) 등으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는 건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 다니던 웁쓰양은 서른 살이 넘어 회화를 시작하며 독립 아티스트의 길을 걸어왔다. 멍때리기 대회가 이름을 얻기 시작하며 2015년 웁쓰양컴퍼니를 차렸고, 2016년엔 멍때리기 대회로 상표권을 등록하기도 했다.
앞으로 멍때리기 대회가 어떻게 발전하기를 기대하나?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유엔이 정한 ‘세계 멍때리기 데이’를 꿈꾼다. 한날한시에 전 세계 사람들이 멍을 때리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기 위해 ‘지구의 날’인 4월22일 저녁 8시에 전 세계가 10분 동안 소등하는 것처럼.”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아티스트 웁쓰양이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효창목길 한겨레신문사 옥상에서 멍때리는 자세를 선보이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바쁜 현대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통념을 고쳐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치 있는 행위다.” 2014년 멍때리기 대회를 처음 만든 웁쓰양컴퍼니의 대표 겸 아티스트인 웁쓰양은 ‘멍’의 재인식을 강조했다. 웁쓰양컴퍼니는 서울시와 함께 멍때리기 대회를 주최한다. 멍때리기란 뭔가? “명상과 비교하면 알기 쉬울 것 같다. 멍때리기는 의도하지 않은 채로 벌어지는,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현상이다. 반면에 명상은 의도를 가진 행위다. 멍때리기는 몸과 마음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멍때리기 대회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회화 작업을 하던 2013년께 심한 슬럼프가 왔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결심하고 설렁설렁 지냈지만 불안했다. 나만 멈춰 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움직이니까. ‘다 멈추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집단의 퍼포먼스를 구상했다.” 이렇게 해서 2014년 10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웁쓰양이 개인 차원에서 마련한 첫 멍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페이스북으로 홍보한 대회엔 50명이 참가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멍때리기 대회에서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나? “아이러니하지만 조롱이다.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면서 대회 바깥의 바쁜 사람들에게 ‘약 오르지’ 하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이를 통해 관객들이 정신적·육체적 휴식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게 목표였다. 지금처럼 서울시가 주최하는 정례 대회로 발전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올해 대회는 얼마나 신청했나? “이틀 동안 2760명이 신청했다. 그 가운데 150명을 추렸으니 18 대 1이 넘는다. 40~60대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 것이 예년과의 차이다. 60대 어르신이 손자와 참가하는 등 가족 단위 출전도 많아졌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참가를 대신 신청한 경우도 있다.”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대신 여러 색깔의 카드를 이용해 불편한 점이나 요청사항을 표시한다. 졸릴 때 빨간카드를 들면 마사지 서비스가 제공되고, 목마를 때 파랑카드를 들면 물이 제공되는 식이다. 휴대전화 확인, 잡담, 시간 확인, 수면 등은 금지된다. 대회를 구경하는 시민들의 투표로 멍을 잘 때린 사람 10명을 먼저 고른 뒤, 이들 중에서 심박수를 가장 안정적이고 낮게 유지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 역대 우승자들이 적잖이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1등 수상자는 직장인 두 명과 취업준비생 한 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이들은 잠옷 차림으로 출전했는데, 수상 소감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회사에 가기 싫은 상황을 재현하려 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2016년의 제1회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선 래퍼 크러쉬가 1위를 했다.”
지난해 열린 한강멍때리기대회 모습. 서울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