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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봇’이 손짓하는 호기심 천국

세운상가 역사가 한눈에 전자박물관·다시 이어진 공중 보행다리·몽환 이국적인 중정

등록 : 2018-04-19 15:09
시간이 뒤죽박죽 흐르는 세운

안내 로봇 ‘세봇’이 상상력 자극

시대별 콘텐츠가 눈앞에 펼쳐져

지난 16일 세운상가 3층 세운전자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옛 전기·전자 제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세운상가의 시간은 뒤섞여 흐른다. 600년 전 조선 시대의 흔적과 1960~80년대의 전자기술, 21세기 4차산업의 꿈이 공존한다. 50년 만에 새 옷을 입으며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들도 풍성해졌다.

“신기해요. 트랜스포머 같아요.”

지난 15일 종묘 쪽 세운상가 입구 3층에 설치된 ‘세봇’ 앞에서 서울 버들초등학교 5학년 김아무개양이 탄성을 지른다. 세운상가의 ‘세’와 로봇의 ‘봇’이 더해진 세봇은 이곳을 오랜 시간 지켜온 장인들의 기술력과 젊은 예술가들의 상상력, 그리고 3D(3차원) 기술이 융합돼 탄생했다.

세봇은 손과 팔을 위아래로, 몸통을 좌우로 흔들며 말을 한다. “탱크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진 기술 장인들이 나를 만들었어. 이곳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야.” 세봇은 세운상가의 ‘마스코트’ 노릇을 하며 특히 아이들을 호기심과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세봇

세운전자박물관 세운상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지난 10일 문을 열었다. ‘청계천 메이커 3대기’라는 이름의 상설 전시가 12월31일까지 열린다. 1세대(1950~60년) 소리미디어 시대, 2세대(1970~90년) 멀티미디어 시대, 3세대(2000~현재) 네트워크미디어 시대로 나눠, 194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곳에서 만들어졌거나 조립·수리 등을 거친 전자제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1946년 미국에서 출시돼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에 사용된 원형 브라운관, 1984년 나온 삼보 8비트 컴퓨터 ‘트라이젬 20엑스티’(TRIGEM 20XT), 1990년대 인켈 오디오 컴포넌트 등이 추억을 불러낸다. 16일 오후 이곳을 관람한 이인숙(67)씨는 “맞아, 우리 어릴 적에 이런 걸 썼구나”라며 오래된 광석 라디오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세운상가에 새로 입주한 스타트업(새싹기업)들이 만든 전자의수(팔)나 3D(입체) 프린터 등은 미래를 향한 세운상가의 꿈을 보여준다.

박물관 안내를 담당하는 안지수씨는 “전시물 일부는 세운상가와 일대에서 일하는 장인·기술자들이 내놓은 것”이라며 “지난 토요일인 14일에는 150여 명이 관람했다고 밝혔다.

다시세운교 세운상가와 청계·대림상가가 공중 보행다리로 이어졌다. ‘다시세운교’라는 이름에서 역사가 짐작되듯 길이 58m의 이 다리는 서울시가 2005년 청계천을 복원하며 철거했다가 이번에 되살렸다. 흐름이 끊겼던 상가들이 이어져 다시 사람이 걷는 길이 된 것이다. 대림~삼풍의 공중길은 삼풍상가 리모델링 때 끊어졌다. 서울시는 오는 2020년까지 세운상가에서 진양상가에 이르는 7개 상가 전체와 남산순환로를 공중보행로로 연결할 예정이다.

다시세운교 아래로는 청계천이 길게 흐른다. 다리 계단에 앉아 청계천의 풍광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봄이 한복판으로 달려가는 4월 중순엔 나무들에서 짙어가는 초록의 생기가 활력을 더한다.

중정 뭐라 해도 세운상가의 여전한 ‘핫플레이스’는 5~8층의 ‘ㅁ’자 중정이다. 가장 높은 8층에서 중정을 바라보면 한순간에 ‘다른 세상’으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든다. 세운상가를 지을 당시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요즘 신축되는 건물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건축양식인데다, 반투명 천장으로 쏟아져 들어온 빛이 세월의 더께와 어울려 오렌지색의 몽환적 정취를 자아낸다. 이곳은 영화 <도둑들> <초능력자>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중정은 모양새를 조금 바꿔 청계상가에서도 계속된다.

중부 관아 터 세운상가의 종묘 쪽 입구 광장(옛 초록띠공원) 지하엔 600년이 넘는 서울 도심의 역사가 쌓여 있다. 바로 ‘중부 관아 터’다. 이곳에선 광장 공사를 하다 옛 서울의 5부 가운데 하나인 중부 관아 터와 유물들이 나와 그대로 전시관이 됐다.

지하 3m 깊이에서 임진왜란 때 소실된 조선 초기 중부 관아 터가 나왔고, 2m 깊이에선 18세기의 백자 유물을 포함한 집터가 발굴됐다. 서울시는 “공공기관으로서는 최초로 4대문 안 유적을 현지에 그대로 보존해 진정성을 살리면서 전시한 첫 사례”라고 설명한다.

세운상가에선 가을이면 다양한 축제도 마련된다. 서울시가 주최하는 ‘세운 메이커스 페스티벌’(9월), 서울문화재단이 마련하는 ‘서울 상상력발전소’(10월), 세운상가 일대의 청년 창작자들이 주도하는 ‘비둘기 오디오 & 비디오 페스티벌’(10월) 등 3대 축제가 열려 세운상가에 활력을 더하고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한다.

글·사진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