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LP 이야기
첫 정상회담 방북 취재…‘휘파람’ 등 북한 LP도 수집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기념하며
등록 : 2018-04-26 14:42 수정 : 2018-04-26 17:37
당시 고려호텔서 음악 자료 구매
‘휘파람’ 싱글 LP는 유일하게 보유
김정일 애창곡, 이수미의 ‘두고 온 고향’
72년 첫 적십자회담서 ‘사랑해’ 합창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뜻깊은 날에 실릴 칼럼을 쓰다 보니 제1차 김대중 김정일 남북 정상회담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나는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사진 풀기자단(공동취재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갔다. 북한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89년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찾았던 북측 통일각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기록을 중시해 무언가를 수집하는 천성은 평양에서도 여전했다. 2박3일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정상회담 소식을 알린 <로동신문>을 비롯해 모든 일정의 기록물을 포함해 회담 후에 제작된 사진집, 한정판 시계, 우표, 전화카드 등등까지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 쇼핑센터에서 산 보천보전자악단 시디(CD), 전혜영·이분희·이경숙 등 북한 유명 여가수들의 시디와 비디오 같은 음악 자료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 음악 자료들은 체제 찬양 일색인지라 기관에 정식 등록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친 뒤에야 돌려받았다. 최근 북한 가수들의 음반은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비싼 값에 팔리고 있고 외화벌이용으로 해외 판매에도 적극적이다. 심지어 해외 유명 경매사이트에는 북한의 유성기 음반까지 심심찮게 등장한다.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거친 북한 가수들과 악단의 연주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한 찬양가요 일변도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미국과 서양의 유명 팝송까지 선곡에 포함할 정도로 레퍼토리가 변화하고 있다.
2000년 당시 남측 수행원들이 묵었던 숙소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왔던 노래는 익숙한 ‘반갑습니다’나 ‘휘파람’이 아닌, 찬양가 ‘그 품 떠나 못살아’였다. 온종일 같은 노래만 반복해서 들려주어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지만 멜로디가 꽤 수려해 중독성이 강했다.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문화 공간이나 축하공연 일정은 무조건 자청해 취재를 맡았다. 당시 만찬장에서 함께 식사했던 김책공대 총장에게 북한에서도 LP를 듣는지 물었더니 “예전에는 많이 들었지만 이제 북한은 LP가 아닌 시디로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그 뒤 이런저런 경로로 북한 노래가 담긴 LP를 여러 장 구했다. 그중 북한 가요 ‘휘파람’의 오리지널 싱글 LP를 남한에서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전혜영이 노래한 ‘휘파람’은 1991년 북한 유일의 보천보전자악단에서 조기천이 작사하고, 리종오가 작곡했다. 북한의 젊은 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휘파람’은 찬양가요들과 달리 한 젊은이의 짝사랑을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부른 드문 노래이다. 북한 인기 여가수 전혜영의 낭랑한 음색은 남한의 휴대폰 컬러링으로도 서비스된 지라 ‘반갑습니다’와 더불어 ‘휘파람’은 가장 많이 알려진 북한 가요일 것이다.
‘휘파람’은 1992년 6월8일자 <조선일보> ‘색연필’ 꼭지에서 <내외통신>의 6월4일자 798호 기사에 근거하여 “혁명성이 없어 민심을 동요시키고 사상해이를 초래하여 인민들을 바보로 만들 뿐만 아니라 조직의 기강과 규율을 깨고 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금지되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북에서 명곡으로 평가받는 ‘휘파람’은 금지 보도가 나간 뒤인 <평양신문> 6월19일자 TV 노래 프로그램 소개에 버젓이 등장했다. 또한 1993년 북한 노인들의 재혼 문제를 다뤘던 영화 <대동강에서 만난 사람들>에서 주인공인 홀아비 강 선달이 대동강 유람선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많은 승객 앞에서 ‘휘파람’을 유쾌하게 부르는 장면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봄이 온다’ 무대에서 최진희는 남매 듀오 현이와 덕이의 ‘뒤늦은 후회’를 불렀다. 공연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진희와 악수하며 “그 노래 불러줘서 고맙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한 ‘뒤늦은 후회’가 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이었다는 해석에 음원 사용량이 123배나 폭등하는 화제를 모았다. 사실 ‘뒤늦은 후회’는 현이와 덕이의 히트곡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나 ‘꼬마 인형’에 비해 널리 알려진 곡은 아니다. 최진희도 몰랐던 노래를 북측에서 콕 짚어 부탁한 것은 북한에서 우리 가요를 꽤 깊숙이 듣고 있다는 증명이다.
남한의 대중가요를 북한 주민들도 즐겨 부른다는 사실이 1990년대에 언론이 보도하면서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최진희는 북한에서 인기 많은 남한 가수 중 한 명이다. 실제로 1996년 6월 국내 대중가요 중에서 북한에서 애창되는 남한 가요 1위가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랑의 미로’는 평양에서 발간한 <외국 민요집>에도 실렸고, 북한의 음대생들이 졸업 실기시험 때 주로 부르는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처럼 북한에서 인기가 많은 남한 가수 최진희에게 김정일 위원장의 애창곡 ‘뒤늦은 후회’를 불러달라고 요청한 것은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특별하기보단 당연한 일로 보인다.
고 김정일 위원장은 대중문화 애호가로 유명했다. 남한의 영화와 가요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고 알려졌다.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현이와 덕이의 ‘뒤늦은 후회’보다 훨씬 이전인 1972년 이수미의 ‘두고 온 고향’은 고 김정일 위원장의 애창곡으로 가장 먼저 알려졌다. 이 노래의 가사는 실제로 실향민인 유명 디제이(DJ) 고 이종환이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사모곡이다.
다시금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금처럼, 화해 무드를 만드는 데 일조한 대중가요는 과거에도 많았다. 1971년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이산가족 찾기를 추진하느라 북측에 회담을 제의했다. 이에 북측이 응하면서 1972년 8월30일 제1회 남북적십자회담이 처음으로 평양 대동강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당시 남측 이범석 수석대표와 북측 김태희 대표단장은 회담 후 함께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당시 내외신 기자들은 이들이 ‘우리의 소원’이나 ‘아리랑’을 부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남한의 젊은 층에 인기가 많았던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를 불러 화제가 되었다. 핵미사일로 남과 북이 대치하던 상황에서 벗어나 모처럼 찾아온 남북 화해 분위기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전쟁 종식이라는 알찬 열매를 맺길 소망한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남한에도 널리 알려진 북한 가요 ‘휘파람’이 실린 LP.
2000년 당시 남측 수행원들이 묵었던 숙소에서 가장 많이 흘러나왔던 노래는 익숙한 ‘반갑습니다’나 ‘휘파람’이 아닌, 찬양가 ‘그 품 떠나 못살아’였다. 온종일 같은 노래만 반복해서 들려주어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지만 멜로디가 꽤 수려해 중독성이 강했다.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는 문화 공간이나 축하공연 일정은 무조건 자청해 취재를 맡았다. 당시 만찬장에서 함께 식사했던 김책공대 총장에게 북한에서도 LP를 듣는지 물었더니 “예전에는 많이 들었지만 이제 북한은 LP가 아닌 시디로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그 뒤 이런저런 경로로 북한 노래가 담긴 LP를 여러 장 구했다. 그중 북한 가요 ‘휘파람’의 오리지널 싱글 LP를 남한에서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전혜영이 노래한 ‘휘파람’은 1991년 북한 유일의 보천보전자악단에서 조기천이 작사하고, 리종오가 작곡했다. 북한의 젊은 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휘파람’은 찬양가요들과 달리 한 젊은이의 짝사랑을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부른 드문 노래이다. 북한 인기 여가수 전혜영의 낭랑한 음색은 남한의 휴대폰 컬러링으로도 서비스된 지라 ‘반갑습니다’와 더불어 ‘휘파람’은 가장 많이 알려진 북한 가요일 것이다.
‘휘파람’의 가수 전혜영의 북한 제작 비디오.
북한에서 좋아하는 남한 대중가요 ‘사랑해’ ‘두고온 고향’ ‘뒤늦은 후회’ ‘사랑의 미로’(시계 방향)가 실린 LP.
1970~ 80년대 제작된 북한 대중가요와 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