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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의 거리를 걸어보자

이태원 퀴논거리

등록 : 2018-05-03 14:51

지난 4월15일 오후 이태원 퀴논거리(사진). 미세먼지 ‘나쁨’이 떴음에도 이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인끼리,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채운 한국의 젊은이들, 동남아 관광객으로 보이는 무리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미군 부대가 이전한 뒤의 이태원 상권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우라는 생각이 든다.

15년 전 이태원을 찾았을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용산구청 공무원으로서 나름 그 이유를 찾자면 이태원지구촌축제의 성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계 속의 작은 지구촌’이라는 이태원만의 매력을 잘 살린 지구촌축제에 해마다 100여만 명의 관광객이 온다. ‘위험한 동네’에서 세계 각국 색다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활기찬 동네’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관광객의 발길이 늘어날 수밖에.

출퇴근길 오갔던 퀴논거리를 작정하고 걸었다. “퀴논거리가 어디야?”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아주머니들께 먼저 다가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예요”라고 답하며 오지랖도 넓혀봤다. 그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언제 생겨났는지 모를 아기자기한 음식점과 커피숍, 옷가게들…. 하나둘씩 늘어난 베트남 음식점도 눈에 띈다. 퀴논거리 메인을 살짝 벗어난 골목골목에도 사람 흔적이 가득했다. 그렇게, 퀴논거리를 잘 알고 있다는 내 오만이 깨지는 데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홍보담당관 직원으로서 퀴논거리가 만들어진 배경과 어디에 어떤 조형물이 들어섰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 때문에 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그동안 무심했던 것이다.

이태원을, 용산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용산구청 공무원의 직업병일까. 문득 이들이 퀴논거리의 의미를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베트남전쟁 때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꾸이년(퀴논)시, 그리고 그 맹호부대를 창설한 용산구. 악연에서 만난 두 도시가 지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형제의 도시가 됐다. 2016년 용산구와 베트남 꾸이년시는 자매결연 20주년을 기념하며 각각의 도시에 ‘퀴논거리’와 ‘용산거리’를 만들었다. 용산구는 이태원대로 뒷길을 퀴논거리로 명명하고 도로 정비와 함께 곳곳에 베트남의 흔적을 새겼다.

거리 중간쯤 가다 보면 2시20분40초에 멈춰 서 있는 시계 조형물이 보인다. 용산구와 꾸이년시 두(2시) 도시가 20년간(20분) 쌓은 우정을 40년(40초)이 지나도 함께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베트남 모자 ‘논’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있다. 퀴논거리 바닥은 베트남 국화인 연꽃으로 장식했다. 곳곳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우정을 상징하는 벽화도 찾아볼 수 있다. 작지만 퀴논 정원도 만들었다.

‘세계의 중심도시, 이제는 용산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건 용산구. 용산구는 라이따이한(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과 꾸이년시 저소득 주민들을 위한 사랑의 집 지어주기, 자외선이 강해 시력을 잃어가는 꾸이년시 주민들을 위한 백내장센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알리는 세종학당까지 다양한 사업으로 베트남과 한국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베트남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는 데서 다른 어떤 명예도로보다도 퀴논거리의 의미가 크다. 날씨 좋은 어느 날, 친구들과 또는 연인과 함께 이태원 맛집 탐방도 좋지만 퀴논거리를 걸으며 용산구와 꾸이년시 우정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임지원 용산구청 언론팀 주무관

사진 용산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