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3천원짜리 김치찌개, 힘든 청년에게 따뜻한 한 끼

‘청년식당 문간’의 이문수 신부

등록 : 2018-05-10 15:20
최고은 사건에 충격받은 수녀 제안

5개월 만에 적자 면해…재료 실해

옥상 공간에 청년 쉼터 만들 계획

“문간 더 생기도록 도울 계획”

지난 3일 오후 정릉시장 안 ‘청년식당 문간’의 옥상에서 이문수(왼쪽 두 번째) 신부와 식당 이용 청년들이 ‘동행공방’의 안덕진(왼쪽 첫 번째) 대표와 회원들이 기증한 폐가구 활용 의자와 테이블을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옥상은 청년 쉼터가 될 예정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성북구 정릉시장 안에는 ‘청년식당 문간’(문간)이 있다. 3천원에 맛있는 김치찌개와 밥을 무한리필해주는 식당이다. 지난 3일 오후, 문간의 옥상에서 작은 행사가 열렸다. 지역 아파트 주민 목공동아리가 의자와 테이블 등 30개를 문간에 기증했다. ‘동행공방’ 회원 10여 명이 보름 가까이 걸려 폐가구로 만든 것들이다. 동행공방의 안덕진(57) 대표가 집기를 문간 대표인 이문수(44) 신부에게 전달했다. 동행 기부함도 함께 전했다. 문간에 더 많은 후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신부는 지난해 12월 힘든 청년들이 한 끼 든든하게 먹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문간을 열었다. 청년들 가운데는 여러 가지 노력도 하고 시도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부닥치는 경우가 적잖기 때문이다. “힘든 청년들과 세상 사이를 이어주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문간’이라 이름을 붙였어요. 주머니가 가벼워도 걱정 없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문간은 2년 전 한 수녀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잘 알고 지내던 수녀님이 청년을 위한 식당을 열어보면 어떻겠냐고 얘기했는데, 저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어요.” 그 수녀는 생활고와 지병으로 세상을 등진 작가 최고은씨의 사연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고민 끝에 힘든 청년을 위한 식당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녀회에서는 추진이 어렵다고 해서 그에게 제안한 것이다. 이 신부는 자신이 소속된 글라렛선교수도회에 조심스레 청년식당 얘기를 꺼냈는데, 의외로 쉽게 ‘해보자’는 답이 나왔다. 2016년 4월이었다.


수도회에서 후원회 업무를 하면서 개업을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사전 조사도 해보고 추진팀(심리상담사, 청년문화기획자, 식당운영 경험자)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몇 차례 계획이 바뀌었다. 끝까지 그의 마음속에 청년밥집이 남았다. “머리로는 내 성향에 무슨 밥집이냐는 생각이 드는데도, 마음이 끌려 결국 청년식당 만들기에 다시 나섰어요.”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어갈 수 있게 조리사 한 명이 주방을, 그가 홀을 맡기로 했다. 메뉴도 단출하게 김치찌개로 정했다.

장소는 이 신부가 사는 동네로 잡았는데, 적당한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신부는 지난해 이맘때 수녀회가 운영하는 정릉시장 안 카페에 들렀다. 2층 카페 창 너머로 보인 건너편 건물에 불이 꺼져 있었다. 신시장사업단이 얼마 전 나가 비었다는 말을 들었다. 바로 연락해 건물주를 만났다. 옥상에 올라가보니 북한산이 코앞에 보였다. “청년들이 위로받고 기분 좋아지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간의 손님 가운데 점심때는 주변 직장인들이 많다. 저녁에는 청년과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3천원이지만 김치찌개 재료는 실하다. 돼지고기, 두부, 파 등이 들어간다. 양배추샐러드가 곁들여진다. 맛은 대체로 좋다고들 한단다. 이 신부는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기에 조미료를 아예 안 쓰기는 어렵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하루 20㎏쯤 쓰는 김치는 국내기업이 중국에서 만든 걸 쓴다. 돼지고기는 국내산으로 인근 정육점에서 산다. 후원자들이 쌀, 김치, 돼지고기를 보내주기도 한단다.

문간이 문을 연 지 5개월 만에 적자에서 벗어났다. 월세, 운영비 등을 메우려면 하루 매출이 30만원은 넘어야 한다. 단골도 생기고 입소문도 나면서 하루 손님이 어느덧 100명을 넘어섰다. 손님이나 지인이 ‘술을 팔면 어떠냐? 사람 수대로 주문하게 해야 한다’ 등을 조언했지만 이 신부는 따르지 않았다. “매 순간 이 일을 왜 하는지를 잊지 않으려 했어요. 무엇이 이곳을 찾는 청년들을 위한 건지 생각했지요. 돌이켜보면 잘한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식당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 신부는 다음에 할 일들을 손꼽는다. 달걀프라이를 하나씩 얹어 영양을 더해주고,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게 적절한 때에 주방 보조인력 1명을 충원하려 한다. 현재 임시로 문을 연 식당 공간과 이어진 북카페와 옥상 공간을 청년 쉼터로 만들었으면 한다. 3천원도 부담스러운 청년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게 쿠폰을 만드는 방법도 궁리 중이다. 나중엔 소액대출, 청년주거 지원도 해보려 한다.

이 신부는 청년식당 같은 곳이 더는 열리지 않는 게 좋은 사회인데, 현실적으로 아직은 필요하기에 되도록 더 생겼으면 한다. “문간이 계속 퍼져가도록 도우려 해요. 2호점은 목사님 한 분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요. 3호점은 스님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요.” (웃음) 무엇보다 그가 가장 바라는 일은 힘든 상황에 부닥친 청년들이 조금만 더 용기를 내 손 내미는 것이다. “자신의 어려움을 알려주면 기꺼이 함께해줄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청년들이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