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새벽 3시
강렬한 쓴맛 가끔은 달콤함, 그것이 요즘 내 삶
에스프레소 마키아토와 글로생활자의 공통점
등록 : 2018-05-17 14:42
이탈리아 여행 때 알게 된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맛
강렬한 쓴맛과 우유의 달콤함
글로생활자인 내 삶과 비슷
글 쓰고 강연하는 ‘글로생활자’로서 내 하루는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시작된다. ‘크레마’라 하는 호랑이 가죽에서 볼 수 있는 헤이즐 브라운색이 보일 때쯤 진한 아로마 향이 함께 풍겨나온다. 불과 6.5g에 불과한 커피콩에서 뿜어나오는 진한 향기가 에스프레소의 매력이다.
“우리가 마시는 에스프레소의 약 70%는 아로마 향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30%가 혀로 느끼는 맛이지요.”
에스프레소 기법을 발견한 이탈리아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커피 한잔 달라고 하면 그것은 에스프레소를 의미한다. 내가 에스프레소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발자취를 따라가면서부터였다. 카페에서 별다른 주문 없이 커피 한잔 달라고 하면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세계 커피 시장에서 에스프레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특별히 관광지 입구가 아니라면 대부분 한국의 절반 이하 가격에 마실 수 있어 부담도 적다. 에스프레소는 설탕 없이 마시는 음료라는 착각이 한국에는 아직도 있지만 이탈리아의 바리스타들은 이렇게 말한다.
“설탕을 넣든 블랙으로 마시든 그것은 당신 마음이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누가 감히 설탕 없이 마시라고 할 수 있나요?”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의 카페들까지 모두 그러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작은 컵에 물 한 잔, 각설탕 하나, 그리고 작은 찻숟갈이 함께 딸려 나왔다. 커피는 창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생명수와 같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고, 독일 고전음악 작곡가 브람스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언제나 세 가지를 챙겼으니 악보 종이와 담뱃갑, 그리고 커피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커피 애호가는 프랑스 작가 발자크였다. 하루 40잔의 커피를 마시며 피곤과 졸음을 이겨냈다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커피의 힘으로 소설 <고리오 영감> 등 100여 편의 명작을 남긴 진정한 글로생활자였다. 보통 자정 넘어 일어나 새벽 1시부터 글을 썼다고 하니, 새벽 3시부터 글을 쓰는 나는 그 앞에서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다. 우상이었던 나폴레옹이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했던 데 반해 그는 펜으로 세상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큰 빚을 지게 되어 작품을 써서 빚을 갚아나가야 했다. 글 쓰는 동안 끼니는 대충 때우고, 원고를 넘긴 뒤 폭식하는 습관까지 겹쳐 결국 51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과로와 카페인 중독으로 심장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사망했을 것으로 연구가들은 짐작한다.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커피의 힘에 지나치게 의존해 에너지를 소진해버린 결과다. 비록 장르는 다르고 시대도 같지 않지만, 글을 써서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원조 글로생활자의 심정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독립은 이 시대를 사는 직장인들의 ‘시대정신’이다. 1인 기업, 프리랜서, 프리워커, 디지털 노마드, 이렇게 표현은 다르지만 주장하는 내용은 비슷하다.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고 나만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일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관계에 지치고 조직생활에 피곤해하는 것이다. 가끔 이런 하소연을 하는 이들을 만난다. “저도 정신노동하면서 자아를 우아하게 가꿔가고 싶습니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정신노동이라 하지만 이 일의 대부분은 육체노동에 가깝다. 아무리 심한 몸살감기에 걸렸다 해도 새벽에 일어나 일정량의 원고를 써내야 한다. 마감 시간은 이 직업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 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그의 말처럼 글로생활자로 산다는 것은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육체적) 업(직업)’이다. 육체노동자처럼 몸의 부담을 이겨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대 위에 선 강연자의 모습은 우아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실상은 교통체증을 뚫고 졸음을 쫓으며 이동하는 운전자의 삶이다. 자주 커피를 찾는 이유다. 주 7일 근무할 때도 많다. 가격으로 따지면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다. 가끔은 고립무원에 빠진 듯한 고독감도 느낀다. 그러한데도 왜 이런 삶을 사는가? 글로생활자란 가격이 아닌 가치를 선택한 인생이다. 영어의 ‘priceless’라는 낱말이 의미하듯 가격으로 절대 환산할 수 없는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 짜준 계획표와 다른 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남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여행이 싫기 때문이다. 편함 뒤에 오는 부자유가 싫은 것이다. 내 일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시간을 남이 아닌 내 주도로 쓰는 맛, 그 환상적인 달콤함이 일상의 쓴맛과 고단함을 이겨내게 한다. 어쩌면 이 생활은 에스프레소 마키아토의 맛과 비슷하다. 가끔은 달콤한 맛이 흘러들어오지만 강렬한 쓴맛이 대부분이니까. 이탈리아말로 마키아토(Macchiato)는 ‘얼룩진’ 혹은 ‘점을 찍다’는 뜻으로,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 거품을 살짝 올린 것이다. 정신이 확 들 정도로 쓴 에스프레소의 맛이 목줄기를 타고 들어오다가 어느 순간 우유의 달콤함으로 살짝 적셔준다. 달콤하면서도 쓴, 그 특유의 맛과 매력에 빠지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실로 치명적 유혹이다. 그래도 궁금한가? 일단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한잔 마셔보면 어떨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설탕을 넣든 블랙으로 마시든 그것은 당신 마음이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누가 감히 설탕 없이 마시라고 할 수 있나요?” 밀라노, 피렌체, 로마, 나폴리의 카페들까지 모두 그러했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작은 컵에 물 한 잔, 각설탕 하나, 그리고 작은 찻숟갈이 함께 딸려 나왔다. 커피는 창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생명수와 같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고, 독일 고전음악 작곡가 브람스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언제나 세 가지를 챙겼으니 악보 종이와 담뱃갑, 그리고 커피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커피 애호가는 프랑스 작가 발자크였다. 하루 40잔의 커피를 마시며 피곤과 졸음을 이겨냈다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커피의 힘으로 소설 <고리오 영감> 등 100여 편의 명작을 남긴 진정한 글로생활자였다. 보통 자정 넘어 일어나 새벽 1시부터 글을 썼다고 하니, 새벽 3시부터 글을 쓰는 나는 그 앞에서 명함조차 내밀기 힘들다. 우상이었던 나폴레옹이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했던 데 반해 그는 펜으로 세상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큰 빚을 지게 되어 작품을 써서 빚을 갚아나가야 했다. 글 쓰는 동안 끼니는 대충 때우고, 원고를 넘긴 뒤 폭식하는 습관까지 겹쳐 결국 51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과로와 카페인 중독으로 심장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사망했을 것으로 연구가들은 짐작한다.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커피의 힘에 지나치게 의존해 에너지를 소진해버린 결과다. 비록 장르는 다르고 시대도 같지 않지만, 글을 써서 경제를 책임져야 했던 원조 글로생활자의 심정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독립은 이 시대를 사는 직장인들의 ‘시대정신’이다. 1인 기업, 프리랜서, 프리워커, 디지털 노마드, 이렇게 표현은 다르지만 주장하는 내용은 비슷하다.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고 나만의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일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관계에 지치고 조직생활에 피곤해하는 것이다. 가끔 이런 하소연을 하는 이들을 만난다. “저도 정신노동하면서 자아를 우아하게 가꿔가고 싶습니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정신노동이라 하지만 이 일의 대부분은 육체노동에 가깝다. 아무리 심한 몸살감기에 걸렸다 해도 새벽에 일어나 일정량의 원고를 써내야 한다. 마감 시간은 이 직업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말하자면 자동차의 양쪽 두 개의 바퀴입니다. 그것이 번갈아 균형을 잡으며 제 기능을 다 할 때, 가장 올바른 방향성과 가장 효과적인 힘이 생겨납니다.” 그의 말처럼 글로생활자로 산다는 것은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육체적) 업(직업)’이다. 육체노동자처럼 몸의 부담을 이겨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무대 위에 선 강연자의 모습은 우아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실상은 교통체증을 뚫고 졸음을 쫓으며 이동하는 운전자의 삶이다. 자주 커피를 찾는 이유다. 주 7일 근무할 때도 많다. 가격으로 따지면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다. 가끔은 고립무원에 빠진 듯한 고독감도 느낀다. 그러한데도 왜 이런 삶을 사는가? 글로생활자란 가격이 아닌 가치를 선택한 인생이다. 영어의 ‘priceless’라는 낱말이 의미하듯 가격으로 절대 환산할 수 없는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 짜준 계획표와 다른 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남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여행이 싫기 때문이다. 편함 뒤에 오는 부자유가 싫은 것이다. 내 일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시간을 남이 아닌 내 주도로 쓰는 맛, 그 환상적인 달콤함이 일상의 쓴맛과 고단함을 이겨내게 한다. 어쩌면 이 생활은 에스프레소 마키아토의 맛과 비슷하다. 가끔은 달콤한 맛이 흘러들어오지만 강렬한 쓴맛이 대부분이니까. 이탈리아말로 마키아토(Macchiato)는 ‘얼룩진’ 혹은 ‘점을 찍다’는 뜻으로, 에스프레소 위에 우유 거품을 살짝 올린 것이다. 정신이 확 들 정도로 쓴 에스프레소의 맛이 목줄기를 타고 들어오다가 어느 순간 우유의 달콤함으로 살짝 적셔준다. 달콤하면서도 쓴, 그 특유의 맛과 매력에 빠지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실로 치명적 유혹이다. 그래도 궁금한가? 일단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한잔 마셔보면 어떨까?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