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통일 기차표 나눠준 귀화인들 “우리도 코리언”
4월 결성한 귀화인 포함 단체 ‘우모코’
등록 : 2018-05-17 14:51
청량리역에서 열차 이용객에
개성, 신의주 등 경유·목적지
찍힌 통일 기차표 나눠줘
통일 과정서 남북 갈등 해소 기대
“이 기차표 진짜예요?”
지난 12일 오후 3시 경춘선 청량리역 3층 맞이방 입구.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역 밖으로 나서던 열차 이용객들은 뜻밖의 기차표를 건네받고는 이런 의문과 감탄의 말들을 던졌다. 시민들이 받은 표에는 출발역이 ‘청량리’와 ‘서울’로 표시돼 있었다. 그런데 경유지와 목적지에는 ‘개성·신의주·베이징·울란바토르·블라디보스토크’ 등지가 적혀 있었다.
‘여길 어떻게 기차로 간다는 거지?’라는 생각으로 표 뒷면을 넘기면 “당신이 참여하면 기차 타고 갈 수 있습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우모코’라는 단체 이름이 박혀 있다. 그 옆에는 우모코가 ‘우리 모두 코리언’(대표 김민석)이라는 단체명의 약자라는 사실도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모두가 코리언’이라고 했지만, 표를 열심히 나눠주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사람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난 이리나(43)씨와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태어난 왕신화(46)씨는 이국적인 생김새와 달리 유창한 한국말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두 사람 모두 태어난 모국은 다르지만, 이제 한국인으로 귀화해 대한민국이 조국이 된 사람들이다. 또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모달리예바 아셀라(44)씨는 외가 쪽이 고려인이다. 한국인 전남편과 사이에 딸 박현아(7)양을 둔 아셀라씨는 현재 한국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 우모코에서는 이들을 ‘해외이주민’이라고 한다. 김형덕(44)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처럼 북한에서 온 ‘북한이주민’까지 포함하면 지난 4월15일 발기인대회를 연 이 새내기 단체는 정말 다양한 ‘코리언’으로 구성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다양한 배경의 코리언들도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하나다. 우모코 회원들은 이런 마음을 서울 시내의 기차역 등지에서 통일 기차표를 나눠주는 캠페인으로 표현해오고 있다. 우모코 회원들은 먼저 4월22일 경의선 신촌역에서 통일기차표를 나눠준 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에는 광화문역 근처에서 캠페인을 이어갔다. 청량리역 캠페인은 우모코가 벌인 세 번째 캠페인인 셈이다. 2004년 결혼하면서 한국에 온 왕신화씨는 “남북한도 현재 중국과 대만처럼 자유롭게 왕래하고 유학과 결혼까지도 허용되는 관계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중국-대만인 부부’의 수는 2015년 이미 30만 쌍을 넘어섰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관악구에 있는 사회적 기업 ‘피플앤컴’에서 근무하는 왕씨는 “중국-대만 경험에 비춰볼 때, 조금은 다른 문화를 갖게 된 남과 북이 교류를 한다면 예전보다 더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리나씨는 “모국이었던 옛 소련은 미국과 함께 남북 분단의 책임이 있어 캠페인에 더욱 열심히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며 “사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기차로 고향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씨가 보여준 ‘서울-평양-블라디보스토크’ 기차표의 요금은 11만8600원이었다. 우모코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도균(50) (주)이노빌 대표는 “케이티엑스 운행 거리를 운임으로 나누었을 때 나온 ㎞당 요금 150원을 서울~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에 적용한 금액”이라며 “멀게만 느껴지는 블라디보스토크가 북한을 경유해가면 사실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86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했던 김 대변인은 오랫동안 의류 유통업체 이노빌을 운영하면서도 통일운동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평창겨울올림픽 때 20대들의 남북 단일팀 비판 여론을 보면서 뭔가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생각했다”며 우모코의 출범 배경을 설명한다. 김 대변인은 “이제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접근은 구식이 됐다”며 “앞으로 남북통일은 해외이주민이든 북한이주민이든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주인으로서 차별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19살 때 북한을 떠나온 북한이주민 김형덕 소장은 “앞으로 남북이 통일돼나가는 과정에서 남북 사이에 많은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우모코의 활동은 그런 갈등들을 사전 연습하고 해소하는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우모코는 이런 목표 아래 앞으로도 통일 기차표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계속해나가는 한편, 현재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는 활동을 지역으로도 확산해나가는 등 조직을 전국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북한의 가볼 만한 지역들을 소개하고, 남북 교류와 화해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남북이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도 힘쓸 계획도 갖고 있다. 청량리역 캠페인 막바지에 이리나씨가 “통일기차표를 받은 사람 중에는 ‘남북관계가 더 좋아지면 이것을 실제 기차표로 바꿔주느냐’고 묻는 분들도 많다”고 하자, 옆에 선 왕신화씨는 “‘우리 모두가 남북 화해와 통일을 바라는 코리언’이 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라며 밝은 웃음으로 답했다. 글·사진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해외이주민인 왕신화(왼쪽 4번째)씨와 이리나(왼쪽 6번째)씨가 지난 12일 오후 경춘선 청량리역 3층 맞이방 앞에서 통일기차표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마친 뒤, ‘우리모두코리언’ 회원들과 함께 팻말과 기차표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키르기스탄에서 온 모달리예바 아셀라(왼쪽 첫 번째)씨, 김도균 우모코 대변인(오른쪽 3번째), 북한이주민인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오른쪽 첫 번째)을 비롯해 모든 우모코 회원들은 출생지와 인종은 달라도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다.
‘모두가 코리언’이라고 했지만, 표를 열심히 나눠주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처럼 생기지 않은 사람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난 이리나(43)씨와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에서 태어난 왕신화(46)씨는 이국적인 생김새와 달리 유창한 한국말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두 사람 모두 태어난 모국은 다르지만, 이제 한국인으로 귀화해 대한민국이 조국이 된 사람들이다. 또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모달리예바 아셀라(44)씨는 외가 쪽이 고려인이다. 한국인 전남편과 사이에 딸 박현아(7)양을 둔 아셀라씨는 현재 한국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 우모코에서는 이들을 ‘해외이주민’이라고 한다. 김형덕(44)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처럼 북한에서 온 ‘북한이주민’까지 포함하면 지난 4월15일 발기인대회를 연 이 새내기 단체는 정말 다양한 ‘코리언’으로 구성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다양한 배경의 코리언들도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바라는 마음만큼은 하나다. 우모코 회원들은 이런 마음을 서울 시내의 기차역 등지에서 통일 기차표를 나눠주는 캠페인으로 표현해오고 있다. 우모코 회원들은 먼저 4월22일 경의선 신촌역에서 통일기차표를 나눠준 뒤,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에는 광화문역 근처에서 캠페인을 이어갔다. 청량리역 캠페인은 우모코가 벌인 세 번째 캠페인인 셈이다. 2004년 결혼하면서 한국에 온 왕신화씨는 “남북한도 현재 중국과 대만처럼 자유롭게 왕래하고 유학과 결혼까지도 허용되는 관계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중국-대만인 부부’의 수는 2015년 이미 30만 쌍을 넘어섰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 관악구에 있는 사회적 기업 ‘피플앤컴’에서 근무하는 왕씨는 “중국-대만 경험에 비춰볼 때, 조금은 다른 문화를 갖게 된 남과 북이 교류를 한다면 예전보다 더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리나씨는 “모국이었던 옛 소련은 미국과 함께 남북 분단의 책임이 있어 캠페인에 더욱 열심히 참여하게 되는 것 같다”며 “사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기차로 고향인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씨가 보여준 ‘서울-평양-블라디보스토크’ 기차표의 요금은 11만8600원이었다. 우모코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도균(50) (주)이노빌 대표는 “케이티엑스 운행 거리를 운임으로 나누었을 때 나온 ㎞당 요금 150원을 서울~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에 적용한 금액”이라며 “멀게만 느껴지는 블라디보스토크가 북한을 경유해가면 사실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86학번으로 학생운동을 했던 김 대변인은 오랫동안 의류 유통업체 이노빌을 운영하면서도 통일운동에 관심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김 대변인은 “평창겨울올림픽 때 20대들의 남북 단일팀 비판 여론을 보면서 뭔가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생각했다”며 우모코의 출범 배경을 설명한다. 김 대변인은 “이제 ‘우리는 한 민족’이라는 접근은 구식이 됐다”며 “앞으로 남북통일은 해외이주민이든 북한이주민이든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주인으로서 차별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19살 때 북한을 떠나온 북한이주민 김형덕 소장은 “앞으로 남북이 통일돼나가는 과정에서 남북 사이에 많은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우모코의 활동은 그런 갈등들을 사전 연습하고 해소하는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우모코는 이런 목표 아래 앞으로도 통일 기차표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계속해나가는 한편, 현재 서울 중심으로 진행되는 활동을 지역으로도 확산해나가는 등 조직을 전국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북한의 가볼 만한 지역들을 소개하고, 남북 교류와 화해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남북이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 개발에도 힘쓸 계획도 갖고 있다. 청량리역 캠페인 막바지에 이리나씨가 “통일기차표를 받은 사람 중에는 ‘남북관계가 더 좋아지면 이것을 실제 기차표로 바꿔주느냐’고 묻는 분들도 많다”고 하자, 옆에 선 왕신화씨는 “‘우리 모두가 남북 화해와 통일을 바라는 코리언’이 된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라며 밝은 웃음으로 답했다. 글·사진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