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천재일우의 기회

불비불명(不飛不鳴) 아닐 불, 날 비, 아닐 불, 울 명

등록 : 2018-05-24 14:35
원 문구는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이다.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품은 뜻을 감춘 채 훗날 크게 한번 웅비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을 비유할 때 곧잘 쓰인다. <여씨춘추> ‘심응람’편이 출전이다.

고대 중국 초나라 장왕 웅려는 춘추시대 다섯 패자의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출중한 군주였다. 그는 아버지 목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마자 이상한 명령을 내린다. “앞으로 나한테 직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 그러고는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색잡기에만 골몰한다. 그렇게 철부지 아이처럼 신나게 놀기를 3년. 보다 못한 충신 오거가 웅려를 찾아간다. 직간을 못 하게 하니 수수께끼 화법으로 말한다. “폐하, 여기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삼 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도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일까요?” 웅려가 대답한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날면 하늘까지 오를 것(一飛沖天)이고, 한번 울면 천하 사람들이 놀라 깰 것(一鳴驚人)이다.” 하지만 웅려는 놀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소종이라는 대부가 죽기를 각오하고 직간했다. 웅려는 약속대로 그를 죽이겠다고 칼을 빼 들고는 오히려 전광석화 같은 군사작전을 펴 왕권에 위협이 되는 호족들을 제거하거나 복종시켜 일거에 자신의 군주권을 확립하는 데 성공한다.

장왕의 아버지 목왕 때의 초나라는 대호족·문벌들이 왕실과 권세를 다툴 정도로 막강했다. 장왕은 이런 내부 기득권 세력을 먼저 제압하지 않으면 부국강병을 이룰 수 없다고 보고 3년 동안 ‘불비불명’의 ‘쇼’를 벌였던 것이다. 결국 장왕은 오거와 소종, 손숙오 같은 자기 사람들을 중용해 초나라 전성시대를 열고 자신은 패자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장왕이 주나라 천자의 상징인 구정(九鼎·아홉 개의 청동솥)의 무게를 물었다는 ‘문정경중’(問鼎輕重)의 고사는 그와 그의 나라가 얼마나 강성해졌는지 말해준다.

“불구대천의 원쑤 미국”과 건곤일척(乾坤一擲·운명을 걸고 단판 승부를 겨룸)의 협상에 나선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도 불비불명의 ‘지략’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개혁개방의 의지를 품어온 젊은 ‘지도자’가가 7년 동안 내부의 구신들과 근본주의자들을 아우르며 힘을 축적한 뒤, 남한의 문재인 정권과 미국의 ‘장사꾼’ 대통령 트럼프의 등장이라는 절묘한 조합을 만나 마침내 ‘일비충천, 일명경인’하려는 웅지를 드러내고 있으니. 그가 부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기만을 바란다.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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