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새벽 3시
렘브란트의 추한 자화상, 자기다움의 멋
한국의 낮은 외모 자신감 어떻게 극복할까?
등록 : 2018-05-31 14:45
한국 여성 외모 자신감 하위권
그만큼 외모 불안감 높다는 증거
자기와의 대화 피하지 말자
거울을 보며 당당한 나와 만나자
‘글로생활자’로서 나의 삶을 정의한다면 ‘폐침망찬’(廢寢忘餐·침식을 잊고 일에 몰두함)이다. 마감에 쫓기다보면 잠을 거르고 식사도 잊은 채 일을 해야만 할 때가 많다. 그렇게 얼마 동안 몰입의 시간을 보낸 뒤 면도를 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거울에서 낯선 남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너는 도대체 누구냐?”
거울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도구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해서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카페에서 휴대전화기로 자기 얼굴을 찍거나 들여다보는 여성들을 본다. 그러다가 일행이 나타나면 이런 질문이 들려온다.
“내 얼굴 어때? 많이 망가졌지? 피곤해서 그런지 피부가 말이 아니야.” 이럴 때 눈치 없이 진실을 말하면 안 된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센스가 동료 관계에서는 중요하다. 다행히 옆자리의 상대는 펄쩍 뛰면서 이렇게 화답한다. “무슨 말이야? 시간을 역주행하나봐! 피부가 탱탱한데! 요즘 무슨 화장품 쓰는지 가르쳐줘!” 과연 우리는 스스로의 외모에 얼마나 만족하는 걸까? 몇 년 전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잡지에서 미국, 프랑스, 브라질 등 42개국 여성을 상대로 한 외모 만족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한국이 차지한 순위는 39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 여성이 상대적으로 외모 만족도가 낮았지만, 한국 여성들이 스스로 더 낮은 점수를 주었다. 조사 대상 3명 가운데 2명꼴로 외모 자신감이 낮다고 조사되었다. 한국인의 외모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되있는 걸까? 여성 자신에게 있는 걸까, 아니면 한국 사회에 있는 걸까? 정확한 답을 알기 어렵지만 타인이 그 사람에게 느끼는 것보다 자신의 평가가 현저히 낮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외모 자존감도 높지 않다. 최근 들어 나의 관심사는 자화상이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2000년 밀레니엄 특집에서 최고의 발견으로 ‘나’의 발견을 선정했다. 그것은 거울의 발명과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에 눈을 뜨면서 이뤄진 업적이다.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였다. 화려했던 시절과 달리 인생 말년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헌 옷 몇 벌과 화구가 전부였다. 그는 63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늙은 자화상을 남겼다.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그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아주 성실하게 관찰했다. 우리가 이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용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성실성 때문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여기에는 포즈를 취한 흔적도 없고 허영의 그림자도 없으며 다만 자신의 생김새를 샅샅이 훑어보는 탐구만이 있었을 뿐이다.” 저명한 미술사가 곰브리치의 말이다. 여기서 탐구란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하는 작업이다. 가장 익숙한 자기의 얼굴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다. 자화상이란 화가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다. “너는 누구냐?” 익숙한 자기 자신을 낯설게 만드는 질문이다. ‘빨강과 초록으로, 인간의 무서운 정념을 표현하고 싶다’던 고흐의 자화상,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화가 뒤러의 자화상은 그런 질문을 담았다. 조선시대에도 멋진 자화상을 남긴 화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윤두서. 고산 윤선조의 증손자이며,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였다. 그는 집안이 당쟁에서 밀려나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와 서화에 매진했다고 한다. 1710년 종이에 담채로 그린 자화상은 드물게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수염으로 가득한 중년 남자에게서 유독 눈빛만은 형안(빛나는 눈)이었다. 그는 왜 자화상을 세상에 남겼을까? 유명 영화인의 말을 패러디하면 이렇게 들린다. “내가 권력이 없고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여기서 ‘가오’란 얼굴 또는 표정을 뜻하는 일본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가오를 잡다’는 말로 변형되어 쓰였다. ‘가오를 잡는다’ 함은 자존심의 표출이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예술가들이 자화상에 집착하는 근본 이유다. 이 시대 우리는 다른 것에 탐구 작업을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자기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줄에 서 있기를 좋아한다. 낯선 ‘내’가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분야임에 틀림없다. 분명 내 몸이고 내 마음이지만 탐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행복 불감증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 많은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대라고 하면 누구나 10가지를 손쉽게 말한다. 반면에 행복한 이유를 대라고 하면 주저한다. 타인을 자꾸 공격하는 것은 내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만이 많을수록, 불안할수록 남을 헐뜯는다. 그것이 곧 자기를 증명하는 것이라 착각한다. 가끔은 ‘거울 리추얼(의식, 의례)’이 필요하다. 거울을 보면서 허세가 아닌 당당한 나를 만나는 의식이다. 남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남에게 없는 나만의 것들을 발견해보는 시간이다. 비교가 아닌 자기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이다. 자신이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 자기만 모르고 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 속에 남들에게 없는 색다른 스토리, 남다른 인생이 숨 쉬고 있다. 그게 진정한 ‘가오’고 진정한 섹시함 아닐까. 행복이든 뭐든 바로 여기서 출발할 테니까. 오래된 나 자신을 사랑하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내 얼굴 어때? 많이 망가졌지? 피곤해서 그런지 피부가 말이 아니야.” 이럴 때 눈치 없이 진실을 말하면 안 된다.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센스가 동료 관계에서는 중요하다. 다행히 옆자리의 상대는 펄쩍 뛰면서 이렇게 화답한다. “무슨 말이야? 시간을 역주행하나봐! 피부가 탱탱한데! 요즘 무슨 화장품 쓰는지 가르쳐줘!” 과연 우리는 스스로의 외모에 얼마나 만족하는 걸까? 몇 년 전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잡지에서 미국, 프랑스, 브라질 등 42개국 여성을 상대로 한 외모 만족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한국이 차지한 순위는 39위로 최하위권에 속했다.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 여성이 상대적으로 외모 만족도가 낮았지만, 한국 여성들이 스스로 더 낮은 점수를 주었다. 조사 대상 3명 가운데 2명꼴로 외모 자신감이 낮다고 조사되었다. 한국인의 외모 불안감은 어디서 비롯되있는 걸까? 여성 자신에게 있는 걸까, 아니면 한국 사회에 있는 걸까? 정확한 답을 알기 어렵지만 타인이 그 사람에게 느끼는 것보다 자신의 평가가 현저히 낮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외모 자존감도 높지 않다. 최근 들어 나의 관심사는 자화상이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2000년 밀레니엄 특집에서 최고의 발견으로 ‘나’의 발견을 선정했다. 그것은 거울의 발명과 르네상스 시대 원근법에 눈을 뜨면서 이뤄진 업적이다. 가장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는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였다. 화려했던 시절과 달리 인생 말년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헌 옷 몇 벌과 화구가 전부였다. 그는 63세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 늙은 자화상을 남겼다.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그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아주 성실하게 관찰했다. 우리가 이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용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성실성 때문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여기에는 포즈를 취한 흔적도 없고 허영의 그림자도 없으며 다만 자신의 생김새를 샅샅이 훑어보는 탐구만이 있었을 뿐이다.” 저명한 미술사가 곰브리치의 말이다. 여기서 탐구란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하는 작업이다. 가장 익숙한 자기의 얼굴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다. 자화상이란 화가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이다. “너는 누구냐?” 익숙한 자기 자신을 낯설게 만드는 질문이다. ‘빨강과 초록으로, 인간의 무서운 정념을 표현하고 싶다’던 고흐의 자화상,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화가 뒤러의 자화상은 그런 질문을 담았다. 조선시대에도 멋진 자화상을 남긴 화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윤두서. 고산 윤선조의 증손자이며,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였다. 그는 집안이 당쟁에서 밀려나자 벼슬을 포기하고 시와 서화에 매진했다고 한다. 1710년 종이에 담채로 그린 자화상은 드물게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수염으로 가득한 중년 남자에게서 유독 눈빛만은 형안(빛나는 눈)이었다. 그는 왜 자화상을 세상에 남겼을까? 유명 영화인의 말을 패러디하면 이렇게 들린다. “내가 권력이 없고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여기서 ‘가오’란 얼굴 또는 표정을 뜻하는 일본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에서는 ‘가오를 잡다’는 말로 변형되어 쓰였다. ‘가오를 잡는다’ 함은 자존심의 표출이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예술가들이 자화상에 집착하는 근본 이유다. 이 시대 우리는 다른 것에 탐구 작업을 열심히 하면서도 정작 자기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줄에 서 있기를 좋아한다. 낯선 ‘내’가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알지 못하는 미지의 분야임에 틀림없다. 분명 내 몸이고 내 마음이지만 탐구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행복 불감증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 많은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대라고 하면 누구나 10가지를 손쉽게 말한다. 반면에 행복한 이유를 대라고 하면 주저한다. 타인을 자꾸 공격하는 것은 내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만이 많을수록, 불안할수록 남을 헐뜯는다. 그것이 곧 자기를 증명하는 것이라 착각한다. 가끔은 ‘거울 리추얼(의식, 의례)’이 필요하다. 거울을 보면서 허세가 아닌 당당한 나를 만나는 의식이다. 남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남에게 없는 나만의 것들을 발견해보는 시간이다. 비교가 아닌 자기다움을 보여주겠다는 결심이다. 자신이 얼마나 멋져 보이는지 자기만 모르고 있다. 오래된 시간의 흔적 속에 남들에게 없는 색다른 스토리, 남다른 인생이 숨 쉬고 있다. 그게 진정한 ‘가오’고 진정한 섹시함 아닐까. 행복이든 뭐든 바로 여기서 출발할 테니까. 오래된 나 자신을 사랑하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