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고독사 직전 구조된 59살 임씨, 세상과 마주하다
골방에서 나온 중·장년 독거남들, 양천구 나비남 프로젝트 ‘효과’
등록 : 2018-06-07 14:52 수정 : 2018-06-07 16:31
홀로 사는 임명권(59·사진 가운데)씨는 지난 반년 새 큰 변화를 겪었다. 빈사 상태에서 발견된 임씨는 양천구 신월3동주민센터의 도움으로 건강도 되찾고 나무심기 등 나눔 활동도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65살 이상 노인 1인가구는 정부의 기초연금 지급 대상자로, 해마다 진행되는 정부의 조사 대상이어서 상대적으로 공적 안전망에 속해 있지만, 50~64살의 남성 1인가구는 오히려 고독사 위험도 크고 정부 지원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양천구가 다른 어느 구보다 일찍이 이에 주목한 것이다. 신월3동은 980여 명의 중·장년 1인가구 중 지원 대상자가 80여 명에 이를 만큼 나비남이 많이 산다. 이에 따라 신월3동주민센터는 골목길 입양사업(환경미화 활동), ‘오·행·시’(‘오늘도 행복한 시간’의 준말로 문화 체험 활동) 등 나비남들이 세상과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행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나비남들에게 물품 지원 활동을 펼쳤고, 올해부터는 나비남들의 문화 체험과 나눔 활동으로 폭을 넓히고 있다. 신월3동주민센터의 적극적 개입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된 임씨는 월 43만원을 지원받으면서 당장의 생활고와 우울증 증세에서도 벗어나자 열성적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5월15일 신월3동주민센터에서 ‘알록달록 문화체험’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최영근 강사의 강연에 참석해 앞에 앉아서 귀에 담을 만한 내용을 일일이 메모하는 등, 2시간 넘는 강연 동안 시종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5월29일 오전에는 영화 <독전>을 다른 나비남들과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알록달록 문화체험’ 강연 현장에서 만난 김두억(65)씨도 다리가 불편한 몸인데도 동주민센터의 관련 행사에 빠지지 않는 열성 나비남 중 한 명이다. 이날 행사에 늦게 참석한 김씨는 양천구청에서 마을변호사를 만나 아직 호적 정리가 되지 않은 아내와 이혼 소장을 작성하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1980년대 여러 차례 중동에 나가 열사의 공사 현장에서 피땀 흘려 번 억대의 큰돈을 아내가 탕진하고 가출하는 바람에 인생이 송두리째 틀어졌다고 한다. “이혼이 돼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임대주택 신청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일 처리하느라 늦었어요. 돈에 시달리다보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아요. 혈압도 높고 간 수치도 높은데, 한의원 가다가 쓰러진 일도 있어요.” 김씨는 애초 구청의 전수조사 때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될 정도로 자포자기 상태였다 한다. “인생이 추락해 술도 많이 먹고 지냈어요. 그러다보니 자꾸 아프고 건축일도 47년 해왔지만 전혀 하지도 못하고요….” 하지만 나비남 프로젝트와 만나면서 김씨도 기운을 차렸다. “(동주민센터에서 나비남 행사를 하면) 1순위로 불러주니까 별일 없는 한 꼭 참석해요. 지금은 옆집에 사는 나비남에게도 행사 참석하자고 권유할 정도예요.” 나비남 프로젝트의 특징 중 하나는 멘토제도를 운용한다는 점이다. 지난 5월15일 강연 행사와 5월24일 신월3동 거리 청소와 나무심기 행사에는 나비남들만 참석한 게 아니라, 절반 정도는 나비남과 1 대 1로 묶여 말벗도 돼주고 상담도 해주는 멘토들이 같이 어울렸다. “독거남들만 모아놓으면 힘들어하세요. 멋쩍어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행사할 때는 누가 멘토이고 멘티인지 알려주지 않아요. 부담스러워할까봐서요.” 김강우 신월3동주민센터 방문복지팀 주무관은 나비남 프로젝트 활성화의 요인 중 하나가 멘토·멘티제 덕분이라고 한다. 길거리 청소 행사 때 만난 멘토 김동주(60)씨는 새마을지도자와 적십자 활동을 통해 평소 홀몸 어르신을 돌보고 있었다 한다. “처음 멘토 제안이 왔을 때 (구와 동주민센터에서) 고독사를 염려해 묶어주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같은 동네에서 고독사가 생기면 마음이 안 좋잖아요.” 그러나 멘토 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신과 묶인 나비남이 김씨를 멘토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해 반찬 쿠폰을 전달하는 등 열심히 노력했는데, 상대가 마음을 열기까지 6~7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처음 멘티의 사정을 모른 채 찾아갔을 때, 너무나 화를 내 당황했어요. 상대방은 사생활을 침해당한 것으로 받아들여 자존심이 생한 것 같았어요. 이분들은 대개 술친구밖에 안 만나거든요. 그래서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 열기를 기다려 이제는 전화도 서로 자주 하는 편이에요.” 김씨는 자신의 멘티가 식사관리를 잘 못해 지병이 있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멘티들이 밖에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려 활발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게 무엇보다 보람이라고 한다. 한편 양천구 관계자는 “나비남 프로젝트를 시행한 뒤 고독사로 추정되는 주검은 한 건도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