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고 싶게 하고 풍경을 이루는 마을

서울 도심의 가볼 만한 한옥마을들

등록 : 2018-06-21 14:34
한옥은 집 안 풍경을 밖에 내주고

밖의 풍경을 안으로 받아들여

한옥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져

은평 한옥마을. 사진 가운데 위에 중광 이외수 천상병 등 문인의 흔적을 보며 쉴 수 있는 셋이서문학관이 보인다.

한옥을 보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차분해진다. 한옥은 풍경과 어울려 사람을 머물게 한다. 한옥 마루에 앉아 처마에 든 하늘과 숲을 보거나, 한옥마을 숲길을 걷다 본 기와지붕들에서 산 능선을 느끼거나, 도심 한옥 골목길에서 만난 세월의 더께에 눈길이 머물던 하루.

북한산이 품은 한옥마을

한옥은 집 안의 풍경을 밖에 내주고 밖의 풍경을 안으로 들인다. 처마는 곧추선 여름 땡볕은 막고 길게 드리우는 겨울 햇볕은 받아들인다. 대청마루 뒤에 문을 만들어 바람에게 길을 내주기도 한다. 한지는 빛을 걸러 들게 한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바뀌는 햇볕의 질감을 여과하여 안을 밝힌다. 흙벽은 습기를 머금어 발산한다. 햇볕의 열기를 온기로 바꾸어 내뿜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틈으로 공기가 통한다. 한옥은 살아 있다.


자연과 어울린 한옥마을을 보려면 은평구 진관동 은평 한옥마을을 찾아가야 한다. 북한산이 한옥마을을 품고 있다. 첩첩 겹친 한옥 기와지붕의 선들이 보는 방향과 높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감기는가 하면, 날카롭게 하늘로 솟구치기도 한다. 날렵한 제비 날개를 닮았거나 너울거리는 나비 날갯짓 같기도 하다.

은평 한옥마을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등성이와 한옥 기와지붕의 선들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그렇게 어울린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어떻게 밀려오는지,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전망대에 오르면 북한산과 어울린 은평 한옥마을을 한눈에 넣을 수 있다.

전망대에서 풍경을 즐기고 은평 한옥마을로 내려간다. 은평 한옥마을 너나들이센터 2층 창문으로 북한산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창문이 만든 액자에 자연이 그림이 된다. 천상병 시인, 중광 스님, 이외수 작가 등의 작품과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셋이서 문학관’은 은평 한옥마을을 찾은 사람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하늘을 배경으로 춤사위를 펼치는 기와지붕을 보며 마을을 돌아다니다 주민의 초대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전통한옥 양식과 현대건축이 어울렸지만 한옥의 운치는 살아 있었다. 2층 거실 창밖에 북한산 능선이 수려하게 펼쳐졌다. 다른 창문을 통해 마을 안 푸른 숲의 기운이 거실로 들어온다. 집주인은 그 공간에서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려 마신다.

은평 한옥마을 일반 가정집 생활공간

은평 한옥마을의 또 다른 운치는 마을 안 작은 숲에 있다. 150~250여 년 된 느티나무 네 그루가 있는 작은 숲에 도랑이 흐른다. 숲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 걷다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조선시대 한옥의 풍경

은평 한옥마을이 현대에 꾸민 한옥마을이라면 남산골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전통한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한양에 있던 한옥 다섯 채를 남산 기슭에 옮겨 꾸민 곳이다. 옛 한옥과 함께 남산의 계곡을 살려 물이 흐르게 했으며 연못과 타임캡슐도 만들었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1860년대 경복궁 중건 공사에 참여했던 도편수 이승업이 지은 집이다. 청계천 부근인 중구 삼각동 36-2에 있었다.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낮은 담이 있어 남녀의 공간을 구분했는데 이곳에서는 볼 수 없다.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1890년에 지은 것이다. 원래는 종로구 삼청동 125-1에 있었다. 관훈동 민씨 가옥은 종로구 관훈동 30-1에 있던 집이다. 원래는 넓은 터에 여러 채의 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중 안채를 옮겨 지었다. 사랑채와 별당채는 새로 지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처마를 통해 하늘과 남산을 볼 수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에 있는 관훈동 민씨 가옥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집은 순종 임금의 장인인 해풍부원군이 그의 딸 순정황후가 창덕궁에 들어갈 때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반 주택이 아니라 순종이 제사하러 올 때 불편을 덜기 위해 만든 재실(齋室·능이나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이었다고 한다.

옥인동 윤씨 가옥은 1910년에 지었는데, 집이 낡아 집에 쓰인 부재를 그대로 살리지 못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본떠서 지었다.

다시 태어난 골목길에 옛이야기는 흐르고

마을이 생기고 사라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된다. 2010년대 초반까지 사람들 발길이 이어졌던 도심 속 한옥 골목이 사라지고, 그곳에 돈의문 박물관마을이 들어서서 어젯밤 꿈 같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양도성 서대문인 돈의문 안 첫 마을이 새문안 동네였다. 돈의문은 여러 차례 옮겨 지었는데, 그중 현재 강북삼성병원 앞 돈의문 터가 마지막 돈의문 자리였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새로 지은 문이라고 그곳을 ‘새문’이라 했고, 훗날 그 마을 이름이 새문안 동네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돈의문 전시관 자료에 따르면 1920~30년대 익선동, 가회동 등이 개발됐다. 넓은 한옥 터를 쪼개서 도시 한옥을 지은 것이다. 그 무렵 새문안 동네에도 도시 한옥이 들어서게 된다. 넓은 터가 쪼개지고 다닥다닥 붙은 한옥이 들어서면서 골목도 새로 생겼다.

익선동 한옥길 골목

1960년대 새문안 동네에는 과외방이 생기기 시작했다. 1980년 과외금지법이 시행되면서 과외방이 사라지고 일반 주택가가 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서울시교육청 인근 도로가에 주변 직장인들이 드나드는 식당이 들어섰다. 1990년 전후로 새문안 동네 골목에도 식당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마을 집의 90%가 식당이었다.

골목에 들어선 식당들은 식사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한옥 방에 앉아 받는 한 끼 밥상은 인상적이었다. 창밖 푸른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빗소리를 들으며 파전에 막걸리, 국수를 먹던 문화칼국수의 점심 한때는 녹록지 않은 직장생활에서 작은 쉼표가 돼주었다.

새문안 동네와 주변 마을이 2003년 돈의문 뉴타운으로 지정되었고 2014년에는 많은 식당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람들이 떠난 곳에 새롭게 들어선 한옥골목은 불과 몇 년 전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한옥 식당 골목이었다. 그 골목 한쪽에 사라진 마을, 새롭게 태어난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돈의문 전시관이 있다.

한옥이 골목을 이룬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역사를 현재에 이어가는 곳이 익선동 한옥길이다. 세월의 더께 묻은 한옥과 골목이 만드는 풍경을 찾아 모인 사람들이 새로운 역사의 한 장을 쓰고 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