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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회를 싣고 달리는 올빼미버스

서울시 심야버스 N61 노선 르포, 심야 노동자·대리기사의 발 노릇

등록 : 2018-06-28 15:21
시내버스와 지하철이 운행을 멈춘 지난 16일 새벽 1시께, 지하철 4호선 노원역 앞 버스정류소에서 시민들이 N61번 올빼미버스를 타고 있다.

“내려요. 내릴게요!”

올빼미버스(서울시에서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운행하는 심야 전용 버스)에서 내리려는 한 여성 승객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출입문 앞에 서 있는 승객들 때문에 내리기 어려울 것 같아서인지 다시 한번 “내릴 거예요!”를 외치며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올빼미버스가 정류소에 서자 간신히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려 총총히 사라졌다.

지난 16일 새벽 2시30분 강남역 버스 정류소. 승객들로 꽉 찬 올빼미버스에 또 손님들이 올라탔다. 버스를 탄 뒤 출입문 바로 앞에 자리를 잡은 30대 남성은 버스가 정류소에 멈춰 출입문을 여닫을 때마다 출입문 가장자리에 부딪히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심야버스인 올빼미버스는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 혼잡 노선의 ‘만원 버스’와 다르지 않았다.

16일 새벽 ‘엔(N)61번’ 올빼미버스를 타보았다. N61번은 양천구 신정동과 노원구 노원역 사이를 운행하는 심야버스로 신림역-강남역-영동대교-군자역 등을 지난다. 첫차는 밤 11시48분, 막차는 다음날 새벽 3시45분에 양천차고지와 상계주공7단지 앞에서 각각 출발하고, 배차 간격은 20~25분이다.

새벽 1시15분께 노원구 지하철 4·7호선 노원역 앞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탔다. 30분쯤 지나 면목동 신우아파트를 지날 때는 빈자리가 없었고 몇몇 서 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 승객은 50~60대 장년층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휴대폰을 자주 확인했다. 옆에 앉은 분에게 물었더니 대리기사들이라고 알려줬다. “도심에서 시 외곽으로 대리운전을 한 기사들이 다시 버스를 타고 대리운전 요청을 받은 장소로 이동하거나, 이동 중에 대리운전 요청을 계속 확인한다”고 했다. 자신도 대리기사라는 최정수씨는 “셔틀버스가 오면 셔틀을 타고, 심야버스가 있으면 심야버스를 탄다. 심야 이동 수단이 하나 더 생겨서 버리는 시간이 줄었다”고 한다.

2시께 광진구 능동사거리를 거쳐 건대입구역에 정차하자, 주로 20대 젊은 승객들이 우르르 탔다. 출발 직전에는 정류소 바로 앞 노래연습장에서 황급히 뛰쳐나온 여대생 2명이 버스에 탔다. 순식간에 차 안이 승객으로 가득 찼다. 한 남성은 이어폰을 낀 채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취기 섞인 음성으로 “미친 새끼”를 연발했다.

정류소를 출발한 버스는 속력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버스 기사는 도로변을 점령한 택시들 때문에 경적을 몇 번 울렸다.


올빼미버스는 영동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접어들어 무역센터와 역삼역 등에 차례로 섰다. 승객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30대 남성에게 물었더니 “역삼역 근처 호텔에 근무하는데, 새벽 2시 일이 끝나면 신림동 집까지 올빼미버스를 자주 타고 다닌다”고 했다. 올빼미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중에는 대리기사 외에도 자정 넘어 일이 끝나는 야간 노동자가 많았다.

올빼미버스가 선릉역에 도착하자 승객들은 더 늘어났고, 2시25분께 강남역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또다시 우르르 밀고 들어왔다. 심야버스는 어느새 ‘콩나물시루’로 변했다. 버스 운행 정보를 실시간 알려주는 버스정보시스템(BIT)에는 ‘혼잡’ 표시가 떴다. 옆 승객에게 눌려 기우뚱 불편하게 서 있던 승객이 “아~” 하는 짧은 신음을 뱉어냈다.

N61번은 시 외곽에서는 대리기사들이 많이 타고, 도심으로 들어와서는 야간 근무를 마친 직장인들이 많이 탔다. 흔히 심야버스 하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취객들이 비틀거리며 올라타서 좌석에 몸을 기댄 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그런 승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학회사에 다닌다는 한정원씨는 “일주일에 2~3회 심야버스를 타는데, 놀다가 귀가하는 사람들은 주로 택시를 탄다”고 귀띔해줬다. 성수에서 탄 30대 회사원은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일하는데, 주 4회 정도 올빼미버스를 탄다”며 “강남역에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타고, 대리운전기사나 아주머니들도 많이 탄다”고 한다.


“새벽 2시25분, 버스는 콩나물시루로 변했다”

운행 개시 4년 반 만에 승객 두 배

취객은 택시 많이 타 이용 적어

시 “8월 차량 2대 더 투입 계획”


운행 개시 4년 반 만에 이용 승객이 2배로 늘어난 올빼미버스는 새벽까지 일하는 대리기사와 심야 노동자의 ‘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3년 9월부터 운행을 시작한 올빼미버스는 2016년 11월 노선 통폐합과 신규 노선 신설 등을 거쳐 현재의 9개 노선 형태를 확정해 운행하고 있다. 올빼미버스는 노선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밤 11시40분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운행하고, 동대문에서 가장 많은 6개 노선을 환승할 수 있다. 요금은 성인 기준으로 교통카드 2150원, 현금 2250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운행을 시작한 2013년 9월부터 2018년 5월까지 총 이용 승객수는 1443만4천 명이다. 2018년 5월 일평균 이용객은 1만1206명으로, 2013년 9월 일평균 이용객 5160명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 이용 승객수가 가장 많은 버스는 N61번이다. 2013년 9월 운행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267만 명이 이용했는데, 첫 달 일평균 이용객 1만2576명에서 2018년 5월 일평균 6만4368명으로 5배나 늘어났다.

올빼미버스는 요일별로는 금요일, 시간대는 새벽 2시에 승객이 가장 많다. 요리사 박순옥(50)씨는 강남역 근처 주점에서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근무한다. 심야버스가 생긴 뒤로 퇴근할 때는 늘 심야버스를 타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요즘은 불편을 느낀다고 한다. 박씨는 “지금은 30분 정도 기다려야 버스가 오는데, 운행 간격을 20분 정도로 줄여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심야 시간대 이동인구의 교통편 증진과 안전한 이동권 보장을 위해 현재 운영 중인 심야버스를 지속적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N61번 노선 차량 대수를 늘릴 예정이다. 이형규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버스정책과 노선팀장은 “8월께 N61 노선에 차량 2대를 더 투입해 운행 간격을 현재 20~25분에서 15~20분으로 줄여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겠다”고 했다.

새벽에는 택시를 잡기도 어렵고 할증료까지 붙어, 올빼미버스 같은 수요대응형 버스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박상우 한국교통연구원 소외계층이동권연구팀장은 올빼미버스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용 승객이 늘어나는 것은 수요가 있다는 뜻인데, 앞으로 지금보다 안락하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운영 체계를 고도화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