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한글 깨친 김에 방송 리포터까지…할머니의 종횡무진
남영자·소태도 할머니의 라디오 방송 도전기
등록 : 2018-06-28 15:30
관악FM방송의 ‘관악은빛라디오’에
나이 70 넘어서 한글 배우고
새 세상 만난 이야기 전달 예정
‘한 명이라도 감동받으면 좋은 일’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 있어 좋을 것 같다.”(남영자)
“죽기 전에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소태도)
예순 살이 넘어 한글을 깨치고 라디오 리포터까지 도전하는 남영자(78·서원동), 소태도(83·신림5동) 할머니를 18일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지역라디오방송사 ‘관악에프엠(FM)’ 에서 만났다.
두 할머니는 관악에프엠의 <관악은빛라디오>를 통해 글을 모르고 세상을 살아온 노인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이야기를 직접 기획해 제작하고 있다. 현재 준비 과정을 거쳐 8월께 첫 라디오 프로그램이 전파를 탈 예정이다. <관악은빛라디오>는 글을 몰라 세상과 소통하는 데 두려움이 있는 문해학습자(한글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라디오로 방송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5월21일부터 10월8일까지 20주 동안 매주 월요일 오후 4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방송연습과 방송을 한다. 전반기 10주 동안은 방송에 필요한 기획, 대본 쓰기, 제작 등과 관련해 교육받으며 방송 연습을 하고, 후반기 10주 동안은 할머니들이 기획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해교육 현장, 문해학습자의 삶 등을 이야기로 구성해 방송한다. 성북구 미아리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남영자 할머니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하던 공장이 망해 학교를 더 다닐 수 없었다. 남 할머니는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지만,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는 것이 항상 생활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할머니는 한글 받침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어서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고, 남들에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것이 알려질까봐 두려웠다. 어린 시절 목소리가 좋아 주위에서 성우를 해보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얼마 전에는 어머니합창단에서 단원으로 활동도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든 활동을 하려면 이력서 제출을 요구했고, 학력을 써야 했다. 남 할머니는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고 그렇다고 안 쓰자니 창피하고, 정말 못 배운 한이 평생 내 삶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문해교실이 남 할머니의 삶을 바꿨다. 2013년 1월 관악구평생학습관 관악세종글방(문해교실)에 입학해 2년 만인 2015년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남 할머니는 “졸업장을 받고는 남 앞에 떳떳하게 가슴 펴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눈물이 났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대구광역시가 고향인 소태도 할머니는 어려운 집안 사정과 여자들은 배울 필요 없다는 당시 사회 분위기 탓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소 할머니는 글을 몰라서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동네 사람들이 글도 모른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두려워서 배우지 못한 것을 내내 숨기고 살았다. 소 할머니는 글을 몰랐지만 성격이 워낙 활달하고 적극적이다보니 주위에서 통장을 하라고 해서 동네 통장을 하기도 했다. 소 할머니는 “그때는 집집마다 돈을 걷는 일도 있고 여러 가지 글로 써야 할 일이 많았는데, 글을 모르니 밖에서 들은 내용을 얼른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남편이 공책에 대신 적어주곤 했다”며 웃었다. 기독교 신자인 소 할머니는 교회에서도 남들 다 읽는 성경책과 찬송가를 읽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늦은 나이에 한글 공부를 시작한 소 할머니는 폐암 수술을 하면서 몇 년 쉬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뒤 지금은 관악구평생학습관 중학반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소 할머니는 “지금은 너무 힘들게 살았던 그때 이야기를 글로 써서 상을 받을 만큼 마음대로 한글을 읽고 쓰게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두 할머니는 얼마 전 <관악은빛라디오>라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해보라는 문해학교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방송을 준비하게 됐다. 남 할머니는 “최근 우리들의 이야기를 라디오 방송으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고, 예전부터 내가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참여하게 됐다”고 했고, 소 할머니도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우리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는다면 좋은 일이라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두 할머니의 종횡무진 라디오 방송, 과연 어떤 모습인지 기대된다. 글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사진 류유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소태도(83·왼쪽)·남영자(78) 할머니가 지역라디오방송사 관악에프엠(FM)에서 <관악은빛라디오> 방송 연습을 하고 있다.
두 할머니는 관악에프엠의 <관악은빛라디오>를 통해 글을 모르고 세상을 살아온 노인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이야기를 직접 기획해 제작하고 있다. 현재 준비 과정을 거쳐 8월께 첫 라디오 프로그램이 전파를 탈 예정이다. <관악은빛라디오>는 글을 몰라 세상과 소통하는 데 두려움이 있는 문해학습자(한글학교 학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라디오로 방송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5월21일부터 10월8일까지 20주 동안 매주 월요일 오후 4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방송연습과 방송을 한다. 전반기 10주 동안은 방송에 필요한 기획, 대본 쓰기, 제작 등과 관련해 교육받으며 방송 연습을 하고, 후반기 10주 동안은 할머니들이 기획한 내용을 바탕으로 문해교육 현장, 문해학습자의 삶 등을 이야기로 구성해 방송한다. 성북구 미아리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남영자 할머니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하던 공장이 망해 학교를 더 다닐 수 없었다. 남 할머니는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지만,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는 것이 항상 생활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할머니는 한글 받침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어서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고, 남들에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것이 알려질까봐 두려웠다. 어린 시절 목소리가 좋아 주위에서 성우를 해보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얼마 전에는 어머니합창단에서 단원으로 활동도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든 활동을 하려면 이력서 제출을 요구했고, 학력을 써야 했다. 남 할머니는 “거짓말을 하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고 그렇다고 안 쓰자니 창피하고, 정말 못 배운 한이 평생 내 삶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문해교실이 남 할머니의 삶을 바꿨다. 2013년 1월 관악구평생학습관 관악세종글방(문해교실)에 입학해 2년 만인 2015년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남 할머니는 “졸업장을 받고는 남 앞에 떳떳하게 가슴 펴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눈물이 났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대구광역시가 고향인 소태도 할머니는 어려운 집안 사정과 여자들은 배울 필요 없다는 당시 사회 분위기 탓에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소 할머니는 글을 몰라서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동네 사람들이 글도 모른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두려워서 배우지 못한 것을 내내 숨기고 살았다. 소 할머니는 글을 몰랐지만 성격이 워낙 활달하고 적극적이다보니 주위에서 통장을 하라고 해서 동네 통장을 하기도 했다. 소 할머니는 “그때는 집집마다 돈을 걷는 일도 있고 여러 가지 글로 써야 할 일이 많았는데, 글을 모르니 밖에서 들은 내용을 얼른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남편이 공책에 대신 적어주곤 했다”며 웃었다. 기독교 신자인 소 할머니는 교회에서도 남들 다 읽는 성경책과 찬송가를 읽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늦은 나이에 한글 공부를 시작한 소 할머니는 폐암 수술을 하면서 몇 년 쉬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뒤 지금은 관악구평생학습관 중학반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소 할머니는 “지금은 너무 힘들게 살았던 그때 이야기를 글로 써서 상을 받을 만큼 마음대로 한글을 읽고 쓰게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두 할머니는 얼마 전 <관악은빛라디오>라는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해보라는 문해학교 선생님의 권유를 받고 방송을 준비하게 됐다. 남 할머니는 “최근 우리들의 이야기를 라디오 방송으로 들려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고, 예전부터 내가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참여하게 됐다”고 했고, 소 할머니도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우리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는다면 좋은 일이라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두 할머니의 종횡무진 라디오 방송, 과연 어떤 모습인지 기대된다. 글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사진 류유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