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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아이들 감성을 키워줘요”

성미산 마을합창단 10주년 공연 여는 민중가수 출신 김은희 지휘자

등록 : 2018-07-05 15:24 수정 : 2018-07-05 21:24
‘천리길’ 등 다양한 대중가요 레퍼토리

노찾사 출신, ‘애기똥풀’ 애칭으로 활동

감정 표현 기회 줄어든 아이들에게

노래 통해 감정 체험할 기회 부여

노찾사 출신의 민중가수 김은희씨가 지난 6월25일 저녁 7시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학교에서 지난 10년 동안 함께해온 ‘성미산 마을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 김 지휘자는 초등 2학년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있는 마을합창단원들이 “그동안 노래를 부르며 감성이 풍부해지는 등 합창을 통해 부쩍 성장했다”고 말한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어~, 노랫소리가 잘 안 들려요.”

지난달 25일 저녁 7시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학교 4층 음악실.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 출신인 김은희(49)씨가 웃음을 띤 채 노래하는 아이들에게 바짝 다가선다.

“노루 사슴 뛰어가네~, 머리 위엔 종달새~.”


‘성미산 마을합창단’ 단원 20여 명이 부르는 ‘천리길’(김민기 작사·작곡) 노랫소리가 다시 한 뼘쯤 커졌다. 성미산 마을합창단은 초등 2학년부터 고등학생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은 초등 6학년 이상 ‘언니·오빠반’ 연습날이다.

아이들이 부르는 ‘천리길’은 마을합창단이 오는 21일 오후 5시 성산동에 있는 마포중앙도서관 6층 마중홀에서 여는 ‘성미산 마을합창단 10주년 공연’의 주요 곡목 중 하나다. 아이들은 ‘천리길’ 외에도 권위주의적 학교 현실을 풍자한 ‘제발제발’, 더블V(송은이·김숙)의 ‘3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등 대중가요와 분단 현실을 노래한 ‘철망 앞에서’와 같은 노래를 선보인다.

“자, 이 부분에서 노래의 분위기가 경쾌하게 바뀌어야 해요.”

노래 중간중간 아이들에게 곡을 설명하는 김씨는 이 합창단의 지휘자다. 창단 때부터 10년 동안 이름보다는 별명인 ‘애기똥풀’로 아이들과 소통하며 함께했다.

사실 1980~90년대 민중가요를 즐겨 들었던 이들 중 ‘가수 김은희’를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1989년부터 노찾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노찾사 4집의 ‘사계-아카펠라 버전’과 4·19 혁명을 노래한 ‘진달래’ 등을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는 당시 “바람에 흔들려도 절대로 뽑히지 않는 풀잎 같은 목소리로 민중가요에 감수성을 얹는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 또한 “노찾사 활동이 내 젊은 날의 전부”라며 당시 활동과 불렀던 노래들에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김은희씨는 2004년을 끝으로 노찾사 활동을 마쳤다. 하지만 노찾사 활동 뒤에도 노래를 멈춘 것은 아니다. 그 뒤 각종 개인 콘서트 등을 통해 노래 부르기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동요에 관심을 가졌다. “노찾사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작곡가 겸 가수 백창우씨와 동요 음반 녹음 작업도 했고, 알바 목적으로 <카드캡터체리 극장판> 엔딩곡, 교육방송(EBS) 만화 <하얀물개> 타이틀곡 등을 부르기도 했어요.” 또 ‘김은희와 친구들’을 결성해 동요 공연도 했다.

합창단 설립은 그가 2006년 성미산마을에 만들어진 ‘마을학교 노래교실’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2007년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음악 강사가 된 뒤, 이를 확대해 그다음해인 2008년 마을합창단을 창단했다.

애기똥풀이 만든 이 합창단은 오디션을 보지 않는다. 같이 활동하고 싶은 초등학교 2학년생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는 또 아이들에게 악보를 잘 보라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악보를 못 보는 아이들도 합창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한 구절 한 구절 듣고 따라 부르는 연습 방식을 좋아한다. 화려한 화음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 있는 음색을 살려주려 노력한다.

그래도 이 독특한 합창단은 2010년 1집 음반을 내놓은 이래, 2015년과 2016년 2·3집 앨범을 잇달아 내놓는 등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10돌을 맞게 된 것이다. 그 짧지 않은 기간에 그가 마을합창단을 지휘하면서 느낀 것은 한마디로 “노래를 통해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이다.

합창단 아이들의 성장은 무엇보다 “조금씩 다른 음색과 에너지를 가진 친구들이 모여 목소리를 합하면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는 걸 느낄 때” 이루어진다. 이때 아이들은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애기똥풀은 더욱이 “노래가 아이들의 감성을 키운다”고 한다. “기계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 속에서 아이들이 점점 자기감정을 드러낼 기회를 잃고 있다”며 “노래는 가사와 선율을 통해 아이들에게 기쁘고 슬프고 즐겁고 화나는 감정들을 체험하고 표현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창단 이후 2009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1년에 한 번씩 해온 공연 때면 아이들은 부쩍 큰다. 하나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이상 매주 빠지지 않고 연습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공짜는 없다’는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다. 연습에 충실히 참여한 아이들은 많은 사람 앞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게 된다.

그런데 애기똥풀은 “‘성미산 마을합창단’ 아이들이 특별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여러분 마을의 아이들도 일정한 조건만 갖춘다면 똑같이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믿기지 않는다면 10주년 공연을 한번 보러 와보세요.”

그의 말대로 아이들은 누구나 ‘가능성 덩어리’다. 하지만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을 지닌 우리 들꽃 애기똥풀. 그 꽃의 꽃말 ‘엄마의 사랑과 정성’과 같은 그의 애정이 아이들을 조금은 더 빛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민중가수의 ‘은은한 사랑과 정성’이 아이들의 노래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갔을까? 2주 앞으로 다가온 공연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