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조기 유학 실패 딛고 일어선 20살짜리 멘토

멘토 활동으로 서울청년상 수상한 송인준씨

등록 : 2018-07-19 15:17
인종차별·왕따로 자존감 상처

청년상담복지센터에서 용기 얻어

어려운 환경 후배들 멘토 역할 자처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꿈

후배들에게 멘토 활동을 하고 있는 송인준(20)씨가 13일 연세대 학생회관에 있는 영자 월간지 <연세 애널즈> 사무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멘토링을 할 때 무조건 상대방을 칭찬해줘요. 그렇게 하면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 있죠.”

마포구청년상담복지센터에서 멘토링 활동을 하는 송인준(20·연세대 언더우드학부 2학년)씨는 13일, 어떻게 하면 멘토 역할을 잘할 수 있는지 묻자 자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송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자신감 없는 청소년이었다. 그는 성산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8년 5월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인종차별과 왕따 등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스쿨버스를 타면 뒤에 있는 아이들이 이유 없이 책가방을 내 머리 위로 던졌고, 수련회에 가도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아 혼자 있기 일쑤였습니다.” 미국에 간 지 4년 만에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2012년 6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송씨는 한국에 돌아왔지만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데다 학력 인정도 안 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2013년 대안학교를 다니다 검정고시를 쳐 2014년 3월 중구에 있는 환일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또래보다 1년 늦은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송씨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마포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다니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센터의 상담 선생님은 그에게 좋은 말동무가 돼주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가 심리적 안정을 얻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송씨는 매주 1회씩 센터를 방문해 상담 선생님과 1시간 이상 상담했다. 그는 “상담 선생님이 ‘첫 친구’가 돼주었는데 일주일 동안 겪었던 일을 얘기하면 위로와 조언을 해줬고, 나는 다시 일주일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꾸준한 상담 등으로 자존감을 회복한 송씨는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돕기 시작했다. 학교나 교회 후배, 같은 학교 동아리나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 등 1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의 학업을 도와주기도 하고 때로는 친한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의 멘토링 활동은 수능이 끝난 2016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고등학교 후배인 조성헌 군에게는 2017년 11월까지 월 2회씩 만나 공부 방법 등을 알려줬다. 조군은 송씨의 도움으로 연세대(신학과 1학년)에 입학해 지금은 송씨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됐다.

케이팝그룹 트와이스를 좋아하는 송씨는 2017년 2월 트와이스 팬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낯을 심하게 가리는 박영수(가명) 군을 만났다. 박군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친한 친구도 없어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송씨는 매월 2~3회 정도 박군을 만나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찜질방에 가서 친구들이 만나면 흔히 하는 경험들을 같이했다. 꿈이 가수지만 노래방을 가본 적 없던 박군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함께 놀았다.

“이 친구를 보는 순간 친구가 돼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제대로 눈을 못 맞추고 말도 잘 못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이전에는 도와만 준 사이라면 지금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됐죠.” 집이 천안인 박군은 요즘도 매월 정기적으로 서울에 와서 송씨와 함께 교회에 다니며 더 친해지고 있다.

송씨는 고등학교 동아리 후배인 김민서 군이 영어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김군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6년 12월부터 영어 공부를 도와줬다. 김군은 현재 송씨와 같은 학과에 다니고 있다. 송씨가 이렇게 관심을 쏟고 도와준 후배들이 10여 명 정도인데, 하반기부터는 고등학교 후배 2명에게 멘토가 되어주기로 했다.

“어른들의 충고는 자신과 다른 세대이고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는 생각으로 거부감을 갖기 쉽죠. 하지만 저는 같은 또래라서 비슷한 것을 경험했고, 저만의 상처가 있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너도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게’라고 한 게 그들에게 용기를 준 것 같아요.”

송씨는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지난 5월 서울시에서 주는 서울청년상 희망성실부문 대상을 받았다. 연세대 영자 월간지 <연세 애널즈>에서 시사보도부 기자를 하고 있는 송씨는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그는 “사실을 말할 수 있고 삶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송씨는 “첫 멘토링 활동으로 성적이 오른 후배와 그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기분 좋았다”며 “앞으로도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후배들에게 계속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