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기억다방’ 의 도우미로 나선 치매 노인들

서울시, 치매 예방 ‘기억다방’ 캠페인 현장

등록 : 2018-07-19 15:21
6월 말부터 7월까지 지자체 한 바퀴

바리스타 보조로 자원봉사 온 할머니

“기억 사라지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죠”

가장 지키고 싶은 것, “가족 얼굴” 1위

김동춘(트럭 위 가운데) 할머니가 5일 종로구 경운동 서울노인복지센터에 마련된 기억다방에서 어르신들에게 주문한 커피를 전달하고 있다.

김동춘(82·평창동) 할머니가 트럭으로 만든 ‘기억다방’(‘기억을 지키는 다양한 방법’의 준말·서울시의 치매예방 캠페인)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 할머니는 청년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와 음료를 길게 줄 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에게 차례차례 전달했다. 김 할머니는 “음료수를 받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니 나도 기분이 좋다”며 “한가하고 할 일도 없었는데, 할 만한 일이라 생각해 자원했다”고 말했다. 경도성 인지장애를 앓는 김 할머니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종로구 치매안심센터에 다니는데,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는 등 여러 가지 치매예방 활동을 한다.

“시간이 더 지나면 못할 것 같아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어서 지원했죠.” 송정숙(71·숭인동) 할머니는 기억다방에서 음료와 팝콘을 나눠주며 즐거워했다. 송 할머니는 올해 3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종로구 치매안심센터에 다니고 있다. 그는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왔는데, 여러 노인에게 커피를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종로구는 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경운동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기억다방’ 캠페인을 열었다. 서울시는 제약회사인 한독과 함께 지난달 20일부터 기억다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데, 자치구를 차례로 방문해 치매 정보와 예방법을 알리고 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시가 서울광장에서 시작한 기억다방 캠페인은 영등포구, 양천구, 서초구 등에 이어 이날 열 번째로 종로구에서 열렸다. 이날 500여 명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기억다방을 찾았다. 서울시는 7월 말까지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에서 기억다방 캠페인을 열 계획이다.


기억다방에서는 심한 건망증과 함께 사고·판단력에 문제를 보이는 경도성 인지장애나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바리스타를 보조해 주문을 받고 음료를 전달해준다. 이날은 김 할머니와 송 할머니 등 4명의 어르신이 오전과 오후로 나눠 바리스타를 보조했다. 그래서인지 주문한 것과 다른 음료가 나오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기억다방의 ‘규칙’이다.

기억다방은 아메리카노, 녹차, 매실차, 쌍화차 등 일반 메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기억 커피’와 ‘기억의 오로라’ 등 특별 메뉴로 나뉘어 있다. 기억 커피는 카페라테에 테라큐민을 넣어 만든 음료이고, 기억의 오로라는 블루 레모네이드에 테라큐민을 섞어 만든 음료다. 테라큐민은 생강과 식물 울금에 들어 있는 커큐민의 체내 흡수율을 높인 것으로, 기억력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기억다방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데, 그중에서 ‘긴 이름 메뉴 외워서 주문하기’는 치매 환자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간접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음료를 마시려면 “기억다방에서 나의 소중한 기억, 행복한 기억, 따뜻한 기억을 지킬 수 있도록 따뜻한(또는 차가운) ○○○을 주세요!”라고 주문해야 한다. 이는 치매 환자들은 음료 주문과 같이 간단한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 불편을 겪을 수 있어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반인들이 간접 체험하게끔 한 것이다. 실제 이날 긴 이름을 제대로 외워서 주문하는 어르신은 많지 않았다.

기억다방에서 사용하는 컵에는 결혼의 기억, 학창 시절의 기억, 출산의 기억 등 인생에서 의미를 갖는 소중한 추억이 그려져 있는데, 스스로 지키고 싶은 소중한 기억을 선택해 ‘기억주머니 컵홀더’를 채워 해당 그림을 보면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했다.

기억다방 캠페인으로 제한 시간 안에 같은 그림을 맞추는 게임인 같은 기억 친구 찾기, 치매 바로 알기, 치매 상담, 주머니 안에 향초를 넣고 끈을 잡아당겨 향기주머니 만들기 등도 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 치매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 5월 치매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7 중앙치매센터 연차보고서’를 보면, 2017년 국내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은 70만 명으로 제주도 인구 68만 명보다 많다. 2030년에는 두 배인 127만여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이날 기억다방 캠페인 현장에서는 ‘당신이 가장 지키고 싶은 기억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있었다. ‘추억’ ‘전화번호’라는 답변도 있었지만 ‘가족 얼굴’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김보영 서울광역치매지원센터 기억다방 담당자는 “치매 예방만이 노인들의 소중한 기억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기억다방 캠페인을 통해 시민들에게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고, 올바른 정보 제공으로 예방의 중요성을 알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