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캠핑장행…무서운 중2 딸과 정겨운 시간

이충신 기자의 경북 ‘봉화 솔향가득 서울캠핑장’ 1박2일 체험기

등록 : 2018-07-26 14:20
서울시의 폐교 캠핑장 7곳 중 1곳

텐트·테이블·놀이시설 ‘준비된 캠핑장’

땅거미 지자 시냇가에서 찬바람이 솔솔

아침 햇살과 시냇물 소리가 잠을 깨웠다

서울시가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 있는 옛 황평분교를 손봐서 완성한 봉화 솔향가득 서울캠핑장 모습.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도 자취를 감췄다. 달빛과 별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숲속에서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그동안 꿈만 꾸던 가족 캠핑 풍경이 10년 만에야 현실이 됐다. ‘경북 봉화 솔향가득 서울캠핑장’에서 보낸 하룻밤은 새삼스럽게 가족의 정겨움을 일깨워줬다.

불볕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21일 오후 4시 반께 캠핑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한여름 열기가 턱밑에까지 차올랐지만 숲속 캠핑장 모습은 아늑했다.

관리소에 들러 체크인을 하려는데, 마을 주민인 관리소장이 먼저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미 텐트는 쳐져 있어, 바닥 매트를 받아 텐트 안에 깔았다. 어른 4명은 충분히 잘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가족과 함께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옛 학교 건물 1층에 관리사무실과 탁구장, 당구장, 북카페 등 편의시설이 있었다. 포켓볼과 쿠션볼을 칠 수 있는 당구대가 각 1대씩 있어, 아내와 중학교 2학년 딸과 포켓볼을 치면서 실력을 자랑했다. 오목을 두자는 딸의 말에 바둑판 앞에 앉았다. 딸이 갑자기 종목을 십목으로 바꿨다. 바둑돌 10개가 직선이나 대각선으로 놓이면 이기는 경기인데 웬만큼 바보가 아니면 승부가 잘 나지 않는다. 결과가 뻔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제일 무서운 ‘중2’의 요청에 못 이겨 한판 겨뤘으나 역시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탁구대와 당구대

바둑과 장기판

점점 날이 어두워져 서둘러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저녁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지만, 숯불을 피우는 토치를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 캠핑장에는 매점이 없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현동리까지 나가서 토치를 사왔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먼저 밥을 짓고 삼겹살을 숯그릴 위에 얹어 구웠다. 아뿔싸! 삼겹살을 뒤집어야 하는데, 집게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나무젓가락으로 뒤집으려 했지만 열기에 제대로 뒤집기가 힘들었다. 차에 있던 장갑까지 끼고 나서야 삼겹살 굽기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밥과 김치찌개, 삼겹살에 회까지 테이블에 차려놓으니 푸짐했다. 해가 지자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바로 앞 황평천에서 찬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도심과는 딴세상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아내와 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는 이불을 덮지 않으면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물 흐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캠핑장 앞을 흐르는 황평천 물소리가 청량했다. 야영한 다음 날은 아침 습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많은데, 봉화 솔향가득 서울캠핑장은 나무데크가 텐트 밑에 깔려 있어서인지 습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습기가 걱정되면 제습기를 챙겨 가도 된다. 데크 바로 옆에는 전기 콘센트 박스가 연결돼 있어 간단한 전열기구를 사용하거나 휴대폰 충전을 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려서인지 선풍기를 챙겨온 준비성 뛰어난 캠핑족도 눈에 띄었다.

봉화 솔향가득 서울캠핑장 앞에 있는 황평천.

관리사무실에 공용으로 쓸 수 있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마련돼 있어 편리했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산골짜기 물은 손이 시릴 만큼 차갑다. 무엇보다 샤워장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게 좋았다.

캠핑을 가려고 이것저것 챙기다보면 평소 쓰지 않던 물건들까지 필요할 듯해 하나둘 넣다 짐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짐을 한가득 싣고 캠핑을 떠나보면 무척 부담된다. 하지만 봉화 솔향가득 서울캠핑장은 이것저것 싸갈 필요가 없다. 텐트와 테이블을 무료로 쓸 수 있어 짐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좋았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경북 봉화 소천면에 있는 옛 황평분교 자리에 봉화 솔향가득 서울캠핑장을 개장했다. 솔숲으로 둘러싸인 캠핑장 바로 앞을 황평천이 흘러 운치를 더한다. 2016년 만들어진 전남 함평 나비마을 서울캠핑장과 같은 오토캠핑장으로, 20개동(1개동 4인용)이 조성돼 있어 1일 최대 80명이 이용할 수 있다. 캠핑장은 탁구장, 당구장, 바둑·장기판, 북카페, 시청각실, 놀이방 등과 샤워장, 취사·세척장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텐트, 화덕, 테이블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요금은 4인 가족 기준 1박에 2만5300원이다.

봉화는 예로부터 산이 많아 나무가 많고, 나무가 많아 물이 좋고 공기가 맑은 곳이다. 봉화 솔향가득 서울캠핑장에서 야영하면서 봉화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즐거울 듯하다. 유명한 봉화 은어잡이 축제가 28일부터 8월4일까지 8일간 봉화읍 체육공원이 있는 내성천에서 열린다.

봉화군 춘양면에는 지난 5월 문을 연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있다. 27개의 다양한 산림 생태계 전시원이 꾸며져 있고, 축구장 7개 크기로 조성된 호랑이 숲에는 수컷인 두만과 우리, 암컷인 한청 등 백두산 호랑이 3마리가 방사돼 있다. 지하 46m 깊이에 만들어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야생 식물 종자 보관소 시드볼트에는 3203종 4만6675점의 종자가 보관돼 있다.

서울시가 폐교를 손봐서 만든 서울캠핑장은 2013년 강원도 횡성을 시작으로 경기도 포천, 충북 제천, 강원 철원, 충남 서천, 전남 함평에 이어 경북 봉화가 일곱 번째다. 가족 자연체험 시설인 가족 캠핑장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시민들이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공기가 맑고 깨끗한 농촌의 폐교를 활용해 만들었다.

캠핑장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탁구장, 텃밭, 효소 만들기, 동식물 체험 등 어린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샤워장, 취사장, 주차장, 매점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편안히 쉴 수 있다.

강원도 횡성 별빛마을은 나무블럭 체험실이 있고, 충남 서천 금빛노을은 밤하늘 별빛이 아름답다. 경기 포천 자연마을에는 영화 감상실, 충북 제천 하늘뜨레에는 텃밭이 있는 게 특색이다. 강원도 철원 평화마을은 민통선 안에 있어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 전남 함평 나비마을은 사슴 2마리를 키우고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듯싶다. 캠핑장 예약은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yeyak.seoul.go.kr) 사이트에 가서 하면 된다.

글·사진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