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타는 폼나면서도 라면처럼 만들기가 쉽다는 미덕이 있다. 하지만 그럴듯하게 맛있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게 함정이다. 파스타 만들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 탓이다.
우리나라 파스타는 이탈리아 오리지널과 달리 국물이 많다. 오리지널 파스타는 국물이 아니라 약간의 눅진한 소스와 올리브오일에 면을 섞어 먹는다. 이탈리아 파스타가 간짜장이라면 우리나라 파스타는 국물 적은 짬뽕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현지화인데, 이유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감칠맛에 매우 민감한 밥상을 받기 때문이다. 감칠맛은 표고·조개·멸치·쇠고기·해조류 등에 포함된 아미노산에서 나온다. 인공조미료 글루탐산나트륨(MSG)도 다시마에서 나오는 아미노산을 화학적으로 합성하면서 시작됐다. 문제는 우리네 입맛이 이 값싼 인공조미료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정성이 깃든, 집 된장찌개가 회사 앞 식당 찌개보다 별로라고 느끼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감칠맛을 따지다 보니 한국식 파스타에는 국물이 조금 들어가는 것이다.
파스타를 맛있게 ‘말려면’ 육수가 필수다. 육수는 종류에 따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온몸이 감칠맛인 이 녀석만 안다면 별 수고 없이 육수를 만들 수 있다. 라면스프처럼 물 넣고 단 3분만 끓이면 유명한 음식점에서 먹는 것과 똑같은, 뼛속까지 시원한 맛을 낼 수 있다. 그 불꽃같은 녀석이 조개다.
조개는 인류의 오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들소·멧돼지 사냥처럼 목숨을 걸지 않아도 쉽게 잡히는 데다 맛도 좋다. 인류가 강과 바닷가에 모여 산 이유기도 하다. 조개는 호박산을 비롯해 여러 가지 아미노산이 풍부하다. 덕분에 감자나 당근과 같은 채소와 국수를 넣고 끓이면 누구나 손쉽게 맛난 조개칼국수를 만들 수 있다. 봉골레파스타도 똑같은 요령이다.
요즘 조개는 여름철 산란을 준비하면서 살이 통통하게 오를 시기다. 알이 굵은 모시조개와 백합이 추천 1순위다. 바지락은 가성비가 뛰어나다. 계절에 따라 굴이나 홍합 같은 것으로 변주를 해도 좋다. 물을 끓이고 조개와 마늘을 다져서 넣고 3분 정도 삶으면 조개가 입을 연다. 그걸로 육수(사진)는 끝이다. 소금도 필요없다. 이 간단한 육수로 파스타는 물론 된장국부터 클램차우더(서양식 조개수프)까지 수많은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맛도 탁월하다. 나는 모시조개를 넣고 끓인 쑥국이 가자미쑥국보다 향긋하다. 조개 육수에 쑥을 넣고 된장으로 간을 맞추면 끝이다. 값도 싸고 수고도 덜한데 맛은 더 낫다. 봄마다 우리 집에 쑥향기가 진동하는 이유다. 물론 조개는 뻘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에 몸속의 뻘을 토해내게 하는 ‘해감’이란 수고를 해 줘야 한다.
이제 육수를 넣고 파스타를 만들어 보라. 한끼 때우는 요리가 아니라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육수는 얼음틀에 얼려 놓고 필요할 때마다 쓰면 된다. 조개의 마성을 경험했다면, 멸치 육수·닭 육수·표고 육수에 도전해 보라. 간단하지만 그 맛은 간단하지 않다.
글·사진 권은중 <한겨레>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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