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도시재생, 마을공동체 기반…주민 주체적 활동 시간 걸릴 듯”
‘도시재생 1호 지역 창신동’의 30년 봉제인 김선숙씨
등록 : 2018-08-02 15:19
봉제교실 강사하며 글쓰기 교실 수강
팟캐스트 ‘덤’에서 방송 진행
도시재생 시범사업 지난해 끝나
지원 없이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
“재봉틀(미싱) 속도에 자신을 잘 맞춰야 해요. 아니면 박음질이 산으로 가지요.” (웃음)
종로구 창신동 돌산마을 꼭대기에 ‘창신소통공작소’가 있다. 이곳에서 7월27일 손수건 만들기 강좌가 열렸다. 강사인 김선숙(50)씨는 30년 베테랑 봉제인이다. 참여자들에게 재봉틀을 켜 작업을 준비하는 것부터 바늘과 노루발 사이에 실을 끼우는 방법을 숙련된 솜씨로 시범을 보여준다. 처음 재봉틀을 써본 한 참여자의 박음질이 비뚤비뚤해지자 세세히 알려준다.
김씨는 1인 다역을 소화하는 재주꾼이다. 날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자신의 공방에서 봉제를 하고, 매달 창신소통공작소에서 봉제교실 강사로 나선다. 올해는 수요일마다 전태일재단의 글쓰기 교육 수강도 하며 동네를 알리는 글도 쓴다. 소통공작소의 주민협의체 ‘씨앗’ 회원으로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창신동 마을라디오(팟캐스트 방송) ‘덤’에서 여행 방송과 봉제인 방송도 한다.
4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봉제 일과 집안일만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봉제인들처럼 작업 때는 늘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덤’ 팟캐스트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됐다. 조은형 ‘덤’의 국장이 목소리가 참 좋다며 아예 방송을 진행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방송에서 나오는 내 목소리를 들으니 어색하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심장이 쿵쿵 뛰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자신에게 그런 ‘끼’가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여행 방송을 시작했고, 곧 봉제인을 위한 방송을 이어받아 진행했다. 자부심 갖는 봉제인을 위한 방송, 봉제인들이 참여하는 방송을 만들고 싶었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배운 봉제 일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는 이들도 있지만, 요즘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기술이라며 자부심을 갖는 봉제인도 늘고 있어요.” 그는 봉제인들을 불쌍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도 바꾸고 싶었다. “봉제인도 어엿한 기술인이고, 열심히 일하면서 재미나게 살려 애쓰는 이들도 많다는 걸 보여주려 해요.” ‘도시재생 1호 지역’ 창신동의 시범사업들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그의 마을활동 범위도 자연스레 넓어졌다. 창신소통공작소를 지역주민이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는 생활창작예술 거점 공간이 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방송에서 소통공작소의 프로그램을 알리고, 봉제인들이 강사로 적극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마을장터 ‘꼭대기 축제’와 봉제인 음악회 등 마을축제 현장에서 사회자로도 나섰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 진화하는 열린 사람’이라는 평도 듣는다. 김씨는 ‘재생’이란 말을 좋아한다. 주민들이 머물러 살 수 있게 하고,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을 마련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신동은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들어 생긴 동네다. 셋집살이하며 힘겹게 사는 사람이 적잖다. 도시재생사업은 이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동네를 떠나지 않고, 마을살이를 하며 살 수 있게 해준다고 그는 믿는다. “도시재생 시범사업으로 저처럼 주민들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아쉬운 점도 있다. 도시재생 시범사업이 지난해로 끝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적잖다. 지원예산 없이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 활동을 이어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싶다. “재봉틀 속도 맞추듯, 주민 변화의 속도도 맞춰가야 할 것 같아요.” 임대료가 들썩거리는 데에도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아 보인다. 그의 작은 봉제공방 임대료도 1년 새 25%나 올랐다. 무엇보다 그가 안타까워하는 건 많은 주민이 도시재생이 어떤 걸 하려는 건지 관심조차도 없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도시재생에 대해 스스로 알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마을 활동하면서 김씨가 깨달은 것은 성장은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일하느라 자신도 몰랐던 호기심과 열정이 샘솟고 있는 걸 스스로 느낀다. “때로는 아는 게 없다는 생각에 주눅 들기도 하지만 열심히 일하며 인생 공부를 해왔기에 당당해져요. 모르는 건 배우면 되잖아요.” 김선숙씨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마을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계기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봉제인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을 마련해 더 많은 사람에게 봉제 기술도 알려주고 싶어요.”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7월27일 종로구 창신소통공작소에서 30년 봉제인 김선숙씨가 손수건 만들기 참여자들에게 레이스 접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4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봉제 일과 집안일만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봉제인들처럼 작업 때는 늘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덤’ 팟캐스트 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됐다. 조은형 ‘덤’의 국장이 목소리가 참 좋다며 아예 방송을 진행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방송에서 나오는 내 목소리를 들으니 어색하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심장이 쿵쿵 뛰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자신에게 그런 ‘끼’가 있는지는 미처 몰랐다. 여행 방송을 시작했고, 곧 봉제인을 위한 방송을 이어받아 진행했다. 자부심 갖는 봉제인을 위한 방송, 봉제인들이 참여하는 방송을 만들고 싶었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배운 봉제 일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는 이들도 있지만, 요즘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기술이라며 자부심을 갖는 봉제인도 늘고 있어요.” 그는 봉제인들을 불쌍하게 보는 사회적 시선도 바꾸고 싶었다. “봉제인도 어엿한 기술인이고, 열심히 일하면서 재미나게 살려 애쓰는 이들도 많다는 걸 보여주려 해요.” ‘도시재생 1호 지역’ 창신동의 시범사업들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그의 마을활동 범위도 자연스레 넓어졌다. 창신소통공작소를 지역주민이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는 생활창작예술 거점 공간이 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방송에서 소통공작소의 프로그램을 알리고, 봉제인들이 강사로 적극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마을장터 ‘꼭대기 축제’와 봉제인 음악회 등 마을축제 현장에서 사회자로도 나섰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 진화하는 열린 사람’이라는 평도 듣는다. 김씨는 ‘재생’이란 말을 좋아한다. 주민들이 머물러 살 수 있게 하고,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을 마련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창신동은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들어 생긴 동네다. 셋집살이하며 힘겹게 사는 사람이 적잖다. 도시재생사업은 이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으로 동네를 떠나지 않고, 마을살이를 하며 살 수 있게 해준다고 그는 믿는다. “도시재생 시범사업으로 저처럼 주민들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아쉬운 점도 있다. 도시재생 시범사업이 지난해로 끝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적잖다. 지원예산 없이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 활동을 이어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싶다. “재봉틀 속도 맞추듯, 주민 변화의 속도도 맞춰가야 할 것 같아요.” 임대료가 들썩거리는 데에도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아 보인다. 그의 작은 봉제공방 임대료도 1년 새 25%나 올랐다. 무엇보다 그가 안타까워하는 건 많은 주민이 도시재생이 어떤 걸 하려는 건지 관심조차도 없다는 점이다. “주민들이 도시재생에 대해 스스로 알려고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해요.” 마을 활동하면서 김씨가 깨달은 것은 성장은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일하느라 자신도 몰랐던 호기심과 열정이 샘솟고 있는 걸 스스로 느낀다. “때로는 아는 게 없다는 생각에 주눅 들기도 하지만 열심히 일하며 인생 공부를 해왔기에 당당해져요. 모르는 건 배우면 되잖아요.” 김선숙씨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마을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계기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봉제인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을 마련해 더 많은 사람에게 봉제 기술도 알려주고 싶어요.”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