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행 전동차, 미어터졌어”…1950~70년대 서울 최고 피서지
3대 사진가 임인식·정의·준영의 한국사 80년 ⑤ 뚝섬의 여름
등록 : 2018-08-16 14:44 수정 : 2018-08-17 17:17
임정의, 아버지 사진 정리하다 탄식
“다양한 강변 풍경이 다 사라졌어”
하얀 모래 감촉도, 푸른 산세도 없어져
한강 경치를 돈 주고 사야 하는 시대
임준영, 드론 띄워 뚝섬 풍경 촬영
“변화에 아쉬움만 꼽기보단
미래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싶다”
공공재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 질문
“살이 익는다, 익어!”
10일 오후, 강변역 폭염에 짓눌려 여기저기서 한탄이 터져나왔다. 전국이 펄펄 끓더니 불볕더위는 입추를 지나서도 쉬이 가시지 않았다. 올해 서울은 39.6도를 기록했다. 멀리 떠나지 못한 도시인들에게 한강은 축복이었다. “잠이 너무 안 와서요.” 같은 날 저녁, 뚝섬유원지의 시민들은 다들 돗자리에 벌러덩 누워 강바람에 녹아들었다.
뚝섬행 전동차는 피서객들로 미어터져
1955년 서울의 여름. 난민촌이나 다름없던 도시에서도 서울 멋쟁이들은 수영복에 폐타이어로 만든 튜브를 끼고 강변을 거닐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먹고사는 일로만 시름겨워했을 것이란 예상은 어림없는 짐작이다. 광복과 휴전을 연달아 겪었으니 그 시절 ‘자유’는 남달랐을 터다. 한강은 응축된 기운을 터뜨리기 최적인 장소였다. 1958년 <대한늬우스>는 여름날 강변에 널린 텐트와 모터보트, 화려한 수영복을 입고 백사장을 누비는 젊은 남녀들을 화면에 담았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거예요. 그때 한강은 백사장이 참 아름답고 물도 굉장히 깨끗했어요. 최고의 피서지였죠.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물 반 사람 반이어서 목간통(목욕탕) 같았다니까요! ” 2대 임정의(73) 작가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그 문화가 지속됐어요. 한강 얼음으로 만든 냉차도 마시고, 뱃놀이하고, 나룻배 타고 봉은사에 가고.”
한강 백사장 가운데서도 뚝섬유원지 정경이 빼어났다. 여름날 주말마다 뚝섬 가는 전동차는 피서객들 인파로 늘 미어터졌다. 임정의는 1대 사진가인 아버지 임인식(1920~1998) 작가의 손을 잡고 뚝섬에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동대문과 뚝섬을 오갔던 단선 전동차가 있었어요. 동대문 이스턴호텔 앞에서 전동차를 타면 뚝섬까지 가는데, 사람이 많아서 한번 타기가 그렇게 힘들어요. 서울로 돌아올 때도 야단법석이었죠. 주말엔 창문으로 막 우겨 탈 정도예요. 놀 때는 좋지만, 통행금지 걸리지 않고 서로 먼저 귀가하려다보니 전쟁이에요, 전쟁!”
임정의는 지금도 뚝섬 가까운 동네에 산다. “아마 한강 상류 지역이라 더 깨끗했을 거예요. 더구나 포플러(미루나무)가 빼곡해 아름답기로 참 유명한 뚝섬이었어요. 서울 사람들이 먹는 채소를 뚝섬에서 다 키워 시장으로 보냈어요. 지금은 완전히 변했죠.”
한강 ‘조망권’을 둘러싼 희한한 경쟁
한순간이었다. 하얀 모래의 감촉도, 강변의 초록빛 산세도, 햇살 눈부신 물줄기가 맨살을 적시던 경험도, 일상에서 빠르게 사라져갔다. 아버지 임인식의 50년대 한강 물놀이 사진을 정리하는 임정의는 때마다 탄식했다. 그리움은 둘째 치고 다양성이 사라진 강변 풍경 때문이었다. “아파트, 이제 온통 아파트뿐이잖아요. 자연을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건설했다니까요. 지금은 한강이 아파트에 가려서 멀리서는 보이지도 않아요”
희한한 일이었다. 한강을 찾는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구경’이란 말 대신 ‘조망권’이란 말을 더 자주 썼다. 강물 속에서 한강을 체험하기보다 나 홀로 높이 올라 내려다보길 원했다. 한강 물과 강변 풍경은 오랫동안 ‘공공재’ 아니었던가. 경치를 누리려면 비싼 값을 주고 ‘권리’를 사야 하는 시대. 임정의는 ‘아이러니의 진행 과정’을 다시금 회상했다.
“5·16 군사쿠데타 후부터 80년대까지 정부 주도로 한강개발계획이 계속 이어졌잖아요. 어쩐지 개발이 진행될 때마다 소시민들은 한강에 가는 게 더 힘들어졌단 말이죠.” 1967년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의 하나로 한강 위로는 강변북로가, 아래로는 올림픽대로가 건설되던 때였다. 자동차 타고 동서 이동은 빨라졌지만, 진입금지선마냥 경계선이 생겨 한강으로 걸어가기가 쉽지 않다. 척척 건설된 한강 다리는 강북과 강남을 단숨에 이었지만, 정작 한강은 아파트 병풍 속으로 갇혀버린 모양새가 됐다. 나아가 당시 서울시는 ‘공유수면 매립에 의한 택지 조성' 목표를 세워 압구정, 잠실, 반포, 동부 이촌동, 서빙고동 지구 등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한강뷰’를 선점한 아파트 입주 경쟁은 차원이 달랐다. 거기 비교하니 전동차를 타기 위해 남보다 1~2시간 일찍 일어나던 시절은 경쟁이 아니라 향수였다.
“88서울올림픽 앞두고 한강종합개발계획이 대대적으로 시행됐어요. 환경 파괴가 심각한데, 땅값이 계속 오르는 거죠. 저는 올여름의 기록적 폭염도 당시 안목 없이 밀어붙인 한강 개발과 연관 있다고 봐요. 나무와 흙을 더 남겨뒀다면 도심 온도가 이렇게 올라가지 않았을 텐데. 개발논리를 들이밀어 강줄기를 막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처럼 무식한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공공재를 공공재답게 누리고 있을까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한강 뚝섬은 인간이 설계한 수영장이 가장 인기다. 선대가 나란히 지나갔던 뚝섬유원지를 찾은 3대 임준영(42) 작가는 드론을 띄워 한강 변 풍경을 폭넓게 담았다. 연일 고온을 웃도는 폭염 속에서도 수영장은 피서객들로 바글바글했다.
“건축 재료가 견고해지고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사람들의 인식 또한 천천히 바뀌고 있다고 보거든요. 아버지 세대와 많이 다르죠. 아쉬움만 꼽기보다 시간이 쌓인 현재의 아름다움이나 미래 발전의 가능성을 보고 싶었어요. 단, 비슷비슷한 아파트가 강변 따라 너무 많다는 점과 한강 뷰를 점점 한정된 이들만 누린다는 건 역시 문제라고 봤습니다.”
드론으로 본 한강은 확연히 아파트 천지였다. 현재 40층 이상 초고층 주상복합단지는 모조리 한강 변에 몰려 있다. 지난해 한강 변의 한 고가 아파트는 한강 조망 가능한 층수와 그러지 못한 층수 사이에 2억~10억이 왔다 갔다 하는 분양권 시세를 보였다. “뷰가 겹쳐 고층 건물 뒤에서는 강이 보이지 않으니 또 싸움과 문제가 생기고 말이죠. 다음 세대들과 ‘한강’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공공재를 공공재답게 누리고 있을까. 치솟은 수은주만큼 높아진 건물 사이에서, 머리를 맞댄 아득한 질문이었다.
기획·글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사진 청암사진연구소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1974년 여름, 2대 임정의 작가가 촬영한 뚝섬. 뚝섬은 ‘물 반 사람 반’이라고 할 정도로 해마다 수많은 사람이 몰리는 서울의 인기 피서지였다.
1957년 여름, 1대 임인식 작가가 촬영한 한강 백사장. 더위 속에서 냉차를 파는 여인이 아이를 등에 업고 손님들을 찾아 걸어가고 있다.
1955년 임인식 작가가 촬영한 한강 백사장 풍경과 피서를 즐기는 시민들.
1955년 임인식 작가가 촬영한 뚝섬 전동차 정거장. 해마다 여름이면 동대문과 뚝섬을 오가는 전동차는 사람들로 꽉 찼다.
1955년 임인식 작가가 촬영한 영동대교 근방의 뚝섬. 물놀이 하는 시민들.
2018년 여름, 3대 임준영 작가가 촬영한 뚝섬유원지. 역사상 최고온도를 기록한 서울이었지만, 뚝섬수영장은 내내 피서객들로 붐볐다. 인간과 어우러진 조형미를 탐색했다. (@juneyoung_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