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을 걷다

서쪽 하늘이 황금빛 노을에 물들 때…

서초구 신반포 올레길~동작대교까지 한강 둔치길 4.5㎞

등록 : 2018-08-16 14:53
한강 둔치에는 코스모스가 벌써 몇 송이

해 질 녘 강에서 바람이 인다

여의도 빌딩 숲 위로 피어나는 노을

선선한 바람이 가을을 재촉한다

동작대교 남단에서 바라본 해 질 녘 풍경.

가을은 강으로 먼저 오나보다. 한강 둔치에 코스모스가 몇 송이 꽃을 피웠다. 강가 억새밭에 잠자리들이 날아다니고, 하얀 구름 떠 있어 파란 하늘이 가벼워 보인다. 해 질 녘 강에서 바람이 인다. 여의도 빌딩 숲 위로 피어나는 노을과 황금색 빛기둥 드리운 한강을 바라보는 이곳은,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동작대교 남단 한강 둔치다. 서초구 신반포 올레길에 이어 동작대교까지 4.5㎞ 길을 천천히 걸었다.

반포3동 마을길 지나 한강 둔치로 나가다


신반포 올레길은 신잠원나들목에서 시작해서 아파트 옆 오솔길, 반포나들목, 반포한강공원 축구장을 지나 신잠원나들목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이 코스를 변경해, 일부 구간을 빼고 원래 코스에 없는 세빛섬과 서래섬을 지나 동작대교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걸었다.

신반포 올레길은 서초구 반포3동에서 마련한 길이다. 올레길이라고 해서 제주도의 그것처럼 빼어나게 아름다운 풍경과 돌담이 있는 옛 마을을 지나는 길은 아니다. 아파트 단지 옆 키 큰 나무가 있는 길을 걷거나, 담쟁이넝쿨 뒤덮인 올림픽도로 방음벽 옆 나무가 있는 오솔길을 걸어 신잠원나들목을 통해 한강 둔치로 나간다.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가 마을을 지나는 길인 셈이다.

아파트와 올림픽대교 방음벽 사이 오솔길.

신잠원나들목으로 나가면 푸른 풀밭에 여러 갈래 길이 흩어지고 모이는 한강 둔치다. 한강 건너 먼 풍경까지 바라볼 수 있는 한강 둔치에 난 길은 마을을 벗어나 자연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가을로 들어가는 문턱인 입추가 지났으니 겉으로 내세운 계절은 가을이다. 하지만 한여름 불볕더위는 가실 줄 모르니 몸으로 느끼는 계절은 여름이다. 해마다 그렇다. 여름 속에 가을 둔 옛사람들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고려 시대에 입추 때까지 조정에 얼음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도 이맘때까지 더웠다는 얘기다. 관리에게 입추 날 하루 휴가를 주기도 했다. 다가올 가을을 위해 마지막 더위를 잘 보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농사가 세상의 근본이었던 시절에 입추 더위와 가뭄에 기우제를 지내냐 마냐 하는 문제로 왕과 신하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느라 고심하기도 했다.

곡식을 영글게 하는 따가운 햇볕이 한강 둔치에 내리쬔다. 이곳에도 맺히고 영그는 생명들이 있으니, 어제 깊은 밤과 새벽 사이 울던 풀벌레와 귀뚜라미 소리를 떠올리며 한강 둔치길을 걷기 시작한다.

가을이 찾아오는 한강 둔치

신잠원나들목으로 나가서 바로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아스팔트 덮인 길이지만 자전거도 못 다니게 한, 오로지 걷는 길이다. 철탑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자전거길을 건너 한강과 가장 가까이 있는 길로 접어든다. 한강 가에 선다.

반포대교(잠수교)로 흘러가는 한강에 물결이 인다. 하얀 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어 파란 하늘이 가벼워 보인다. 강 건너 남산 꼭대기부터 눈앞 한강 위 하늘까지 흰 구름이 너울거린다.

억새밭 위로 잠자리들이 제 맘대로 날아다닌다. 살갗에 닿는 햇볕은 따가운데 바람은 한여름 같지 않다. 지난밤 귀뚜라미가 울더니 가을이 강가에 먼저 왔나보다.

강물이 흐르는 서쪽으로 걷는다. 되도록 한강과 가장 가까운 길로 걸어야 하는 이유는 수양버들과 억새가 자라난 풍경을 가까이 보기 위해서다. 너구리도 살고 있다는 안내판도 보인다.

정오를 넘기니 햇볕이 제법 뜨거워진다.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열기를 내뿜는다. 반포한강공원 편의점 그늘에서 쉬며 차가운 커피 한 잔으로 열기를 식힌다. 잠깐 쉬는 시간이 풍요롭다. 그늘 밖 뙤약볕을 보는 마음도 느긋해진다. 햇볕 아래로 나간다.

강가 쉼터에 수양버들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무가 만든 그늘로 들어가서 한강을 바라본다. 남산 줄기가 동쪽으로 잦아들며 이어지는 형국이 한눈에 보인다. 그 끝에 봄이면 개나리꽃으로 뒤덮이는 응봉산이 있다. 강 건너 아파트와 빌딩이 불볕에 힘겨워 보인다.

수양버들이 만든 그늘에서 늘어지게 쉬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자전거 운동복을 잘 차려입은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끌고 나무 그늘로 들어온다. 다시 햇볕 아래로 나간다. 반포대교(잠수교)를 건너 세빛섬으로 걸었다.

선선한 강바람 맞으며 노을 피어나는 한강을 바라보다

채빛섬, 솔빛섬, 가빛섬, 한강에 떠 있는 인공 시설물에 붙은 이름이다. 이를 하나로 이르는 이름이 ‘세빛섬’이다. 작은 섬처럼 떠 있는 인공 시설물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며 한강을 바라본다.

서래섬 수양버들.

세빛섬을 뒤로하고 서래섬으로 접어든다. 서래섬은 1982년에 만든 인공섬이다. 섬 안쪽 물가에 수양버들이 길을 따라 서 있다. 초록빛 사이에 붉고 흰 꽃 몇 송이가 눈에 띈다. 코스모스가 피었다. 수양버들 그늘로 걷는다. 길옆에 푸른 풀밭이 펼쳐지고 풀밭 가장자리 나무 그늘에 긴 나무의자가 휴식처럼 놓여 있다. 서래섬 안내판에 봄에는 유채꽃이 피고, 가을에는 메밀꽃이 피어 축제를 연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메밀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길도 걸어보고 싶다. 서래섬에서 나와 동작대교 방향으로 걷는다.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이 시작된다. 흙길은 태양의 열기를 머금는다. 사납게 열기를 내뿜는 포장도로 같지 않다. 짧은 구간이지만 푸른 풀과 나무 사이에 난 흙길을 걸어 동작대교 남단 다리 아래 그늘에 도착했다. 이곳이 도착지점이다.

동작대교 쪽으로 가는 흙길.

동작대교 노을카페는 공사 중이다. 노을카페는 한강의 서쪽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노을카페에서 바라보는 해 질 녘 풍경이 그럴듯하다. 아쉽지만 동작대교 남단 서쪽 반포수난구조대 건물 옆에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강에서 바람이 인다. 해는 여의도 빌딩 숲 뒤로 떨어진다. 서쪽 하늘을 수놓은 노을빛은 강 건너 용산의 빌딩 숲까지 뒤덮는다. 황금빛 햇빛 기둥이 넘실대는 한강 물결 위에서 출렁거린다. 새들이 노을 피어나는 하늘로 날아간다. 강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신바람 난 건 잠자리들이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