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1일 오후 관악구 삼성동 마을활력소 ‘행복나무’ 1층 카페에서 열린 ‘행복한 마마식당’의 아이들이 또래들과 즐겁게 저녁을 먹고 있다. ‘마마식당’의 봉사자들은 지난 4월10일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동네 초등생들이 밥을 먹고 놀 수 있게 돕는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관악구 서림동에 사는 은석이(초4)는 매주 화요일 저녁을 기다린다. ‘행복한 마마식당’(마을 엄마와 마을 아이들의 행복한 식당)에서 저녁도 먹고 친구들과 팽이놀이 ‘탑블레이드’도 맘껏 할 수 있다. 혼자 먹는 저녁과 달리 동네 친구, 형, 누나, 동생들과 함께 먹어서 밥도 더 맛있다.
7월31일 화요일 오후 5시 은석이는 집에서 5분을 걸어 마을활력소 ‘행복나무’ 1층 카페에 들어섰다.
삼성시장 맞은편에 있는 150㎡(45평)의 공간은 밝고 깔끔하다. 식사와 놀이활동 준비를 하는 ‘마마식당’의 봉사자 20여 명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한 봉사자가 은석이를 반갑게 맞아준다. 먼저 와서 놀고 있는 친구 준혁이 곁으로 달려간다. 머리카락이 땀에 젖을 정도로 정신없이 신나게 논다. 하나둘 모여든 30여 명의 아이가 삼삼오오 놀며 왁자지껄 떠든다.
“애들아! 밥 먹자.” 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얼른 팽이를 내려놓는다. 화장실에 가 손을 씻고 배식대 앞에 선다. 오늘의 메뉴는 오므라이스, 돼지불고기, 양배추샐러드, 깍두기, 콩나물국이다. 군고구마, 빙수가 후식으로 곁들여진다. 좋아하는 오므라이스와 불고기를 듬뿍 받아 자리에 앉아 준혁이와 맛있게 먹는다.
4월10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문을 여는 마마식당은 대학동, 삼성동, 서림동 3개 동에 사는 초등생 30명가량이 이용한다. 회원으로 등록한 아이들은 60여 명이다. 이용 대상자는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식사와 놀이가 필요한 아이들은 누구든 올 수 있게 해, 아이나 부모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했다. 주민이 참여하는 ‘마마봉사단’은 장보기와 조리와 배식을, 서울대 동아리 ‘다솜봉사단’은 놀이와 안전을 위한 활동을 조를 나눠 한다. 고등학생, 직장인 등 개인 봉사자들도 참여해 일손을 보탠다.
마마식당 아이디어는 관악구자원봉사센터에서 나왔다. 지난해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한 일본 연수단에 참가한 임현주 관악구자원봉사센터장은 혼자 저녁을 먹는 아이들에게 매주 한 번 친구들과 모여 밥을 먹게 해주는 신주쿠 사쿠라어린이식당을 보고 감동했다. 연수에서 돌아와 일본어린이식당을 교육복지투자 우선 지역인 신림권에서 해보자고 나섰다.
센터는 먼저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주민 자원봉사단을 꾸렸다. 공고가 나간 지 보름 만에 목표로 한 30명이 찼다. 4모둠으로 나눠 매달 1회 봉사를 기본으로 하고 한 주가 더 있는 달은 자원자들이 참여한다. 지역에서 공부방 봉사를 하는 다솜봉사단원들도 선뜻 나섰다.
관악구자원봉사센터와 마마봉사단이 지역 학교를 찾거나, 통장들과 동별 자원봉사 캠프장, 상담사들을 만나 마마식당을 알렸다. “아이들이 제대로 모일까 했는데, 첫날 17명이 와서 밥 먹고 놀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걱정을 덜었다”고 경선옥 마마봉사단장이 말했다.
초등생 아들 둘을 둔 김현숙씨네는 맞벌이라 아이들끼리 저녁을 챙겨 먹을 때가 많다. 지난 5월 작은아들 민수가 마마식당 신청서를 들고 와 가고 싶다고 졸랐다. 날을 잡아 일찍 퇴근해 마마식당을 가보니 널찍하고 깨끗해 걱정 없이 신청서를 내고 왔다. “자원봉사로 꾸려간다고 하니 봉사자들이 대단하고 고마울 따름이다”고 김씨는 말한다.
공간·예산문제 풀어야…자원봉사자 운영
공고 보름 만에 자봉 30명 모집
“힘들지만 뿌듯” “오래 했으면”
서울시자원봉사센터, 600만원 지원
마마봉사단 봉사자들이 7월31일에 열린 ‘행복한 마마식당’에서 정성껏 만든 오므라이스, 양배추샐러드 등을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정용일 기자
아이들만큼이나 봉사자들도 화요일 저녁을 기다린다. 중년의 여성들이 대부분인 봉사자들은 “힘들지만 뿌듯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마마식당 공간이 카페 하던 곳이라 조리하기 힘들고, 설거지하기도 불편하지만 애들이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절로 난다. 혈액암으로 투병하느라 일주일에 3번 투석하는 성창희씨는 봉사가 큰 즐거움이란다. 성씨는 “매주 아이들 밥해주는 게 너무 좋다”고 한다. 놀이활동을 돕는 다솜봉사단의 박민우씨는 “애들이 친구들과 편하게 노는 모습이 보기 좋고, 저 같은 자취생은 집밥 같은 식사를 할 수 있어 더 좋다”고 했다.
마마식당 운영에 드는 비용은 매회 20만~30만원가량의 식자재비와 보드게임 등 놀잇감 구입비 정도다. 올해는 서울시자원봉사센터의 혁신프로그램 지원금 600만원으로 꾸려간다. 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있어 적은 비용으로 이어갈 수 있다. 소상공인축산업협동조합 가게들, 관악구 중화요리봉사회, 식당 등 50여 곳에서 고기, 짜장 소스, 채소, 김치, 떡, 과일 등을 후원한다. 구청 소식지 <관악소리>를 보고 식자재 후원이나 재능기부를 하는 주민도 있다.
아이들은 마마식당이 계속되길 바란다. “여기가 재미있어 좋고 할아버지 될 때까지 다니고 싶어요.” 은석이와 준혁이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모아 말한다. 옆에 있던 재성(초5)이도 “여기가 아주 많이 좋다”며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이들의 바람처럼 마마식당이 이어질 수 있게 관악구와 자원봉사센터, 마마봉사단은 공간·예산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가려 한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후원자 모집에도 나설 계획이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아이들이 웃어야 마을이 행복하다”며 “큰돈 들지 않고 주민들이 봉사해 아이들에게 행복하게 웃을 기회를 만들어주는 게 마을 만들기의 모습”이라고 힘줘 말한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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