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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족보 꿰는 일 연구자에 충격, 일본 공부 자세 가다듬어”

<상징어와 떠나는 일본 역사문화 기행> 펴낸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조양욱씨

등록 : 2018-08-23 15:15 수정 : 2018-08-30 13:53
일본을 상징하는 키워드 99개로

일본 깊이 들여다보기 시도

일본이 우리를 깊이 파는 만큼

연구하자는 마음 91년 첫 출간

저서 20여 권과 번역서 60여 권

50년 가까운 세월, 일본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조양욱씨가 최근 출간한 을 들어 보인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700만 명을 돌파했다. 한국민 10명 중 1명 이상이 지난해 일본을 들른 셈이다. 일본에 대해 많은 한국인이 느꼈던 심리적 거리감은 적어도 방문객 수만 본다면 많이 좁혀졌다. 그렇지만 일본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지적 탐구심이 아직 높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조양욱(66)씨가 최근 출간한 <상징어와 떠나는 일본 역사문화 기행>은 주마간산식의 일본 관광 체험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일본의 본질에 어느 정도 다가서려 시도한 책으로 읽힌다. 역사·전통·풍습, 정치·경제·사회, 문화·생활·스포츠 등 3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묵은 된장과 같이 풍미가 있는 용어 99개를 키워드로 추려냈다.


오래 묵은 상징어처럼 작가 역시 50년 가까이 ‘일본’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씨름해온 일본 전문가이다. 한국 외국어대 일본어과, 교도통신 서울지국 기자, <국민일보> 초대 도쿄특파원을 지냈다. 이번 책이 몇 번째 일본 관련 책인가 묻자 “1991년 특파원 시절 첫 저서를 냈는데, 대략 20여 권, 번역서는 60권이 넘는다”며 정확한 저서의 수치도 잘 모르겠다며 웃는다.

조씨는 그러면서 “일본인들은 해외여행을 가기로 하면 가기 전에 공부를 하고 가고 현지에서도 열심히 들여다보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며 “저는 기자 출신이니까 저널리즘 차원에서 상징어로 접근했는데, 연구자들이 더 깊이 상징어를 파고든 연구서적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조씨의 상징어 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6년 처음 낸 뒤 증보판을 낸 데 이어, 10년 전 3판까지 냈다. 이번에도 내용 중 수치를 업데이트하고 상징어 상당수를 교체했다. 도쿠소부(특수부)도 새로 추가된 키워드다. “우리나라는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많은데, 일본은 어떻게 되느냐”는 지인의 물음이 단서가 됐다. 찾아보니 검사 출신과 판사 출신이 각 한 명밖에 없었다. 경력이 일천한 전략공천된 여성 검사 출신 한 명과 급서한 아버지 대신 출마한 판사 출신 한 명이 전부였다고 한다. “정객으로 둔갑하는 판·검사가 가뭄에 나는 콩보다 드문 까닭이 무엇일까? 모르긴 해도 현직 시절 정치인 눈치를 살피거나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법이 없었다는 반증이리라.” (‘도쿠소부’ 중에서)

출판사인 ‘이와나미분코’와 국어사전 중 하나인 ‘고지엥’ 상징어에서는 출판문화대국 일본의 맨얼굴이 서술돼 있다. “창간 80년을 맞은 2007년 여름까지 총 발간 타이틀이 무려 5400여 종에 발행 부수 3억5천만 부였다. 이와나미 편집부 공식 트위터에는 ‘2018년 4월 현재 약 6천 종’이라고 하니 그새 많이 불었다.”(‘이와나미분코’ 중에서)

“고지엥 4판이 발행되던 해(1991년) 당시 최고 스타였던 18세 영화배우 미야자와 리에 누드 사진집 <산타페>가 150만 부 팔렸다. 그 무렵 서점에 등장한 고지엥 4판. 따분하기 짝이 없을 국어사전 판매 실적이 220만 부. 도저히 믿어지 않는 숫자였다.”(‘고지엥’ 중에서)

조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고지엥의 서술 내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추적해 상징어 분석의 깊이를 더했다. 고지엥 1판(1955년)에서는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를 ‘전선의 부대를 따라서 위안하는 여성’으로 단순 기술했는데 4판(1991년)에서는 ‘일중전쟁,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 장병의 성적 위안을 위해 종군하도록 한 여성’으로 구체화 한 뒤, 5판(1998년)에서는 ‘대다수 강제 연행된 조선인 여성’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우익이 들고 일어서자 6판(2008년)에서는 ‘식민지, 점령지 출신 여성도 많이 포함되었다’고 살짝 표현이 누그러졌다고 이 책은 기록했다.

조씨는 일본을 공부하는 자세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큰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3공화국 말기인 1978년 교도통신 서울지국 기자가 된 조씨는 어느 날 지국장의 소개로 한 일본인과 명함을 교환했는데 자신은 ‘핫토리’라는 상대의 성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시아경제연구소라는 국책연구소에서 일한다는 상대는 (한자 이름이 적힌 조씨의 명함을 보고) ‘창녕 조씨군요’라고 정확하게 상대의 족보를 꿰고 있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 재벌을 연구하다보니 자연스레 한국 족보를 연구하게 됐다는 그의 설명을 들었다 한다.

“일본이 이렇게까지 한국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 하고 있는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