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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쌀로 만든 공덕동막걸리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죠”

마을막걸리 만드는 정원필 대흥동 양조장 대표

등록 : 2018-09-13 16:04
“40대엔 양조장 주인” 꿈꾸다 도전

공덕동 중심 하루 평균 400병 판매

지역 막걸리 이름 알리기 어렵지만

다양한 막걸리 맛 보급 자부심

정원필 대흥동 양조장 대표가 자신이 만든 공덕동막걸리를 들어 보인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마포구 대흥동에 있는 ‘대흥동 양조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달콤한 막걸리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10평 남짓한 양조장에는 발효탱크 15개가 벽 쪽으로 놓여 있었다. ‘공덕동막걸리’를 만드는 정원필(43) 대흥동 양조장 대표를 5일 양조장에서 만났다.

“공덕동막걸리는 은은한 단맛이 일품이다. 시원하고,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정 대표는 “공덕동막걸리는 막걸리 특유의 냄새라고 할 수 있는 ‘쉰내’가 나지 않아 여성들도 즐겨 찾는다”며 “어제는 한 아주머니가 영국으로 유학 떠나는 딸이 공덕동막걸리를 먹고 싶어 한다며 2병을 사갔다”고 했다.

정 대표는 2016년 11월부터 공덕동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배상면주가에서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배상면주가 영업본부장한테서 2016년 5월 ‘동네방네 양조장’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럼 나도 한번 해보겠다”며 자원했다. 정 대표는 “40대가 넘으면 양조장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자금이 적게 들어가는 소규모 양조장이라고 해서 선뜻 하게 됐다”고 했다.


대흥동 양조장을 만드는 데 건물 보증금과 시설비, 인테리어 비용을 합쳐 1억 조금 넘는 돈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신촌 근처에서 신촌막걸리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임대료 등이 만만치 않았다. 마포구에서 몇 곳을 다니며 적당한 곳을 물색하다 재개발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대흥동에 둥지를 틀었다.

정 대표는 마포구 공덕동, 대흥동, 염리동, 아현동 등을 중심으로 공덕동막걸리를 판다. 공덕시장의 족발 골목 등 음식점 130여 곳과 마트를 비롯해 마포구의 세븐일레븐 109곳 중 30곳에 공덕동막걸리를 공급한다. 처음 공덕동막걸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릴 때 어려움이 많았다 한다. “이름이라도 알아야 손님들이 찾을 텐데 있는지조차 모르니 처음 몇 달은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다”며 “거리에서 시음회도 열고 했지만 허가를 먼저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고 단속도 심해 홍보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 막걸리가 이렇게 천대받을 줄 몰랐다”는 정 대표는 “서울에서는 장수막걸리 외 다른 막걸리가 있다는 걸 잘 모르고, 손님들도 무조건 장수막걸리만 찾아서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지역 막걸리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정말 ‘공덕동막걸리를 만드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처음에는 시큰둥하다 한번 맛보고 난 뒤에는 괜찮다며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정 대표가 막걸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꽤 오래됐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그는 2001년 주류업체 배상면주가에 입사했다. 원래는 지인의 소개로 국순당에 들어가려고 찾아간 곳이 배상면주가였다. “당시 저도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인연이 되려니 그랬던 거겠죠.” 정 대표는 2006년부터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배상면주가 미국 법인에서 본부장으로 근무하다 2007년 말 그만뒀다. 잠시 한국으로 돌아와 있던 정 대표는 회계사가 되려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자격증은 얻지 못했다.

2013년 지인의 요청으로 한국에 돌아온 정 대표는 머루 와인을 만드는 ‘산들벗’에서 기획실장, 주류 유통을 담당하는 계열사 시엔엔(CNN)의 본부장을 겸했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오던 정 대표는 40살을 넘기자 사업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강했는데, 과거 몸담았던 배상면주가와 인연으로 다시 막걸리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공덕동막걸리는 배상면주가에서 공급받은 쌀과 누룩과 효소를 발효탱크에 넣은 뒤 물을 붓고 7일간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나면 물로 희석해 알코올 도수 맞추는 제성 작업을 거쳐 병에 담는다. 공덕동막걸리는 생쌀로 막걸리를 빚어서 유통기한이 30일로, 쌀을 쪄서 막걸리를 빚는 일반 막걸리의 유통기간 10일보다 훨씬 길다. 정 대표는 “유통기간이 길면 방부제를 넣어 몸에 안 좋다고 알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생쌀은 찐살보다 쉽게 변질되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방부제를 넣지 않아도 유통기한이 길다”고 설명했다.

다음달이면 공덕동막걸리를 만든 지 2년이 된다. 공덕동막걸리는 한 달 평균 20개 들이 상자로 500~600상자를 생산한다. 한 통에 1800원으로 월 15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 달에 1천 상자 정도 생산하면 좋겠다.”

정 대표는 망원동, 홍대, 합정, 서교동, 성산동, 상암동 등 마포구 서쪽 지역으로 판매 지역을 확장해갈 계획이다. 지금껏 혼자 일해오다 사람을 뽑아서 할 생각이지만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는 “몇 번 모집 공고를 냈지만 젊은이들은 전화만 한번씩 하고 안 온다”며 아쉬워했다.

“막걸리는 물맛이다. 정직하고 깨끗한 막걸리 맛을 선사하겠다. 공덕동막걸리는 생수만 사용해 맛이 깨끗하다”고 한다. 그는 요즘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공덕동막걸리의 단맛을 조금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만간 맛볼 수 있을 것이라 하니 기대가 된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