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1모둠 학생들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녹음하고 있다. 하자센터 제공
목공방 2모둠 학생들이 자기들이 만든 나무 의자에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4월28일, 문성중학교 1학년 학생 154명이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서울시립 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를 찾았다. 일일 직업체험을 하려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기가 바라는 미래를 위해 영상, 요리, 춤 마임, 게임 등 총 10개 분야 프로그램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담당 강사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쑥스러워하다가 어느새 적극 동참해
“혼자 씩씩하게 하기보다는 팀을 꾸려 서로의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사람은 무조건 뒤처지는 게 아니다. 하다 보면 청소년들끼리 협력하고 타협하며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다.” 하자센터에서 ‘일일 직업체험’을 담당하고 있는 한민정(39)씨의 말이다. 함께 만들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모든 과정은 두명 이상 모둠을 이뤄 하도록 만들었다. 낙오하는 친구가 없도록 강사들이 독려한다. 신기한 점은 청소년의 변화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다가도 모이면 힘을 발휘한다. 여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좌 ‘싱어송라이터 하자’의 강의 시간에 이런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신윤형(33) 강사가 강의를 진행하지만 학생들이 모둠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모아 가사를 만들고 곡을 붙인다. 다 함께 가사를 만들 때는 모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노래를 한 소절씩 맡아 마이크에 대고 녹음하는 시간에는 달랐다. 함께할 때와 달리 영 쑥스럽기 때문이다. 곱지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혜령이는 풀죽은 소리로 “내가 싫어졌어”라고 중얼거렸다. 친구들은 한목소리로 “혜령이, 파이팅”, “잘 안 들려, 더 크게!” 하며 기운을 북돋았다. 신 강사도 “혼자 못하겠어? 그럼 다 같이!” 하고 친구들의 참여와 독려를 이끌어냈다.
‘라디오 만들자’라는 프로그램을 선택한 학생 스무명도 마찬가지였다. 18개 체험 프로그램 중 손꼽히는 인기 반인 라디오 반에는 라디오 피디와 방송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섯 모둠으로 나뉜 학생들은 고민 상담 코너를 만들기 위해 토론하고 진행 순서를 짜서 대본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반에서 온 친구들끼리 한 모둠이 되어 어색한 침묵의 시간도 흘렀지만 대본을 완성하며 조금씩 친해졌다. 모둠장을 따로 뽑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모둠을 이끌어 나가는 친구도 생겼다. “이 대사는 지은이가 하자. 경험담이니까”라고 말하는 재연이 같은 경우다. 지은이는 녹음을 앞둔 다른 모둠 친구들이 긴장하자 “재미있게 즐기는 거야”라며 그 친구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혼자만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게
남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생활자전거 타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선수처럼 자전거를 잘 타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모둠별로 안전하게 타는 방법을 배운다. 잘하는 친구는 맨 뒤에서 탄다. 혼자 앞서 나가지 않고, 혹시나 뒤처지는 친구가 없도록 뒤에서 격려하며 함께 움직인다.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청소년을 격려하며 참여를 이끌어내는 강사진은 하자센터 졸업생, 디자이너, 가수 등 다양한 이력을 자랑한다. 이들은 효과적으로 강의 내용을 전달하고, 청소년이 더 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여 의논한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일일 직업체험을 한 학생들은 강사진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체험을 끝내고 활동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는데, 청소년들은 ‘강사가 자신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해 준다’며 ‘신뢰감을 준다’는 소감을 남겼다.
세 시간의 짧은 직업체험이 청소년들에게 큰 효과가 있을까? 친구들을 응원하며 라디오 녹음을 마친 지애는 “원래 라디오 피디가 꿈이었는데, 직접 해 보니 더욱 피디가 되고 싶어졌다”고 전했다. 자투리 천을 엮어 직조 장식물을 만든 지애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잘 못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면 이런 경험을 활용해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친구들과 함께 꿈 이야기를 나눴다.
구슬이 인턴기자 s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