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개발 정보 알았어도 촬영할 생각만 가득했다

3대 사진가 임인식·정의·준영, 한국사 80년 ⑨ 아파트 시대

등록 : 2018-10-18 14:58 수정 : 2018-10-18 15:16
1954년 1대 임인식 반포동 촬영

주 촬영지 아니어도 미래 위해서

전후·50년대 항공사진 50점

2대, “사진가가 돈 벌면 게을러져”

불만 품었던 아버지 어느새 닮아

“집은 투기 대상 아니라 삶의 터전”

3대, 롯데월드타워 올라 아파트 조망

십수 년 전 벌판의 변화무쌍 실감


“새로 짓지만 말고 유산으로…”

1973년 2대 임정의 사진가가 찍은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단지 공사 현장. 한강 너머로 남산과 옛 한남동 풍경이 아스라이 보인다. 동작동 언덕 위에서 촬영한 연작 중 1점이다.

1954년 6월6일. 대한사진통신사를 운영하던 1대 임인식 사진가(1920~98)는 출장 채비를 서두른다. 사무실이 있는 남대문로를 나서 신설동 비행장으로 향했다.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리는 현충일 기념행사 촬영에 나갈 참이었다. 정부 협조를 받은 터라 비행장에 도착했을 땐 엘나인틴(L-19) 경비행기가 시동을 걸고 있었다. 임인식은 조종사를 불러 기념사진부터 찍어주었다. “잘 보여야 했거든요” 2대 임정의(73) 사진가가 아버지 대신 웃었다.

1대 사진가의 ‘조감도’ 같은 항공촬영 사진

“그 시절 비행기 한번 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촬영이 끝나도 조종사에게 매번 부탁하시는 거죠. 그렇게 한강 따라 조금 더 비행하다가 반포동까지 날아가셨어요.” 반포동 전원 풍경은 그렇게 남았다. 임인식의 기록 방식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필름값을 쥐여준 것도 아니었다. 단지 “미래에 꼭 쓰임이 있을 거라 믿었다”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당시 ‘일 딱 부러지게 처리한다’는 평이 있었어요. 맡은 일은 끝났어도, 답십리니 마장동이니 날아가 다 촬영하는 습관이 있으셨죠. 광장동, 천호동, 청계천, 서대문, 동숭동…. 강북 구석구석 모두 촬영하셨다고 봐도 돼요.”

청암사진연구소에 남은 임인식 사진가의 전후 1950년대 서울 항공사진은 약 50점이다. 서울시 행정구역은 한강 경계선을 완전히 넘지 않았고, ‘강남’이란 말은 낯설던 때다. 지리부도나 조감도처럼 보이는 흑백사진 속에서 산천과 초가집들이 부둥켜안고 있다. 경복궁 옆을 흐르던 복개 전 강물(삼청동천)도, 잠실 뽕밭도, 손 타지 않은 땅의 기운 그대로다.

1954년 6월6일 1대 임인식 사진가가 경비행기를 타고 찍은 구반포 지역. 초가집과 구릉이 어우러진 전원 풍경의 오른쪽 위로 한강이 흘러간다.

아파트 개척이 곧 국가정책이던 시대

“지금은 다 아파트죠.” 사진을 정리하는 오늘날로 다시 돌아온 2대 임정의 사진가가 “반포동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그는 ‘부자 되는 길’을 요리조리 피해왔다. 70년대부터 활동한 건축 전문사진가로서, 경제개발계획과 도시개발 정책 실무자들과 가깝게 지냈다. 귀띔이 오간 것도 여러 번이었다. “곧 강 건너 땅값 오른다는 말들. 하지만 사진가가 돈 벌기 시작하면 게을러지거든요. ‘투기’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해.”

한국주택사업협회에서 1991년 ‘올바른 정리기록으로서의 역사서’를 목적으로 출간한 <한국의 아파트>는 임정의가 촬영을 책임졌던 건축사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1932년 충정로 유림아파트를 한국 공동주택의 효시로 본 책은 6·25전쟁 전후부터 1기 신도시 바람이 불던 1990년 초반까지 전국 아파트를 샅샅이 훑는데, 임정의는 당시 마포구 마포아파트, 종로구 동대문 아파트, 중구 회현시민아파트, 용산구 한강맨션아파트,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아파트, 용산구 남산 외인아파트, 반포와 잠실 아파트단지 등 전후 난민 수용과 집중된 도시 인구 수용 등 국가정책을 상징하는 아파트 수백 채를 촬영하면서도 “저기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처럼 하늘에서만 웃돌 뿐이었다.

“여의도나 김포공항에서 출장을 떠날 때, 강남 항공사진을 모두 남기고 싶었어요. 라이카 스리에프(Leica 3F)에 엘마 렌즈도 아버지에게 그대로 물려받아서. 어릴 땐 아버지한테 불만이 많았다고요. 조금만 타협하면 부유하게 살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내가 어느새 아버지처럼 살고 있는 거예요.”

임정의가 금호동 달동네에서 구의동 작은 집으로 이사한 때가 40년 전이다. 마당에 목련 나무를 심은 주택이었다. 세월이 흘러 집은 재건축됐지만 사는 데 큰 변화는 없다. “집은 투기 대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니까요. 요즘은 노동 없는 일확천금의 꿈이 다 아파트로 몰리고 있잖아요. 한참 잘못됐다 싶죠.”

서울 3대 ‘집 연대기’는 ‘아파트’에서 멈춤

2018년 가을, 임준영(42) 사진작가는 서울 아파트 전경을 담기 위해 롯데월드타워 123층(500m) 전망대에 올랐다. 아파트 수십만 채가 빼곡히 채운 서울. 첫인상은 어땠을까. “감탄과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어요. 십여 년 전만 해도 여기가 공터였거든요. 허허벌판에 포장마차가 있어 오랜 동네 친구들이랑 천진난만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곳이었죠. ‘여기 도대체 뭐가 생기는 거지?’ 그런 대화 하면서요. 초고층빌딩이 생긴 후 동네가 많이 변했죠.”

임준영은 “높은 아파트들이 서울에 이미 빼곡해지고 나서도 아파트에 들어가 살지를 못했다”며 “결혼을 하고서 아파트라는 곳에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첫째가 태어난 2009년 겨울이었다. 평북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막 시작한 1대 사진가의 가회동 초가집이 2대 사진가의 구의동 자택을 거쳐 3대 사진가의 송파동 아파트로 닿기까지, 세월은 60여 년이 흘러 있었다. 3대를 이은 ‘집의 연대기’는 ‘아파트’에 닿아 잠시 멈춰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서울의 아파트 생김새는 높이만 바뀔 뿐 새로운 디자인을 가진 건물은 보기 쉽지 않아요. 외국에는 정말 오래된 아파트를 증축이나 변형 없이 그 상태 그대로 보존·유지를 잘한 곳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60년대부터 짓기 시작한 영국 런던의 더 바비칸센터나 브런즈윅 센터 같은 곳은 제가 본 오래된 아파트 건물 중에서도 멋스럽고 인상 깊었어요. 저층에 문화 공간과 상업시설을 두었지만, 고층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며 오래된 건물과 어울립니다. 서울도 새 아파트만 짓지 말고, 오랜 아파트 유산을 남겨두면 좋을 텐데요.”

아파트에도 계급이 매겨지는 시대. 임준영은 격자무늬로 만들어진 고층 빌딩 창문 속에 강남의 네모난 아파트를 부지런히 채워나갔다. “행복과 불행 지수가 아파트 집값과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시대” 같다는 그에게 “첫째 아이가 미래에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한다면 어떨지?” 묻자, 선뜻 답하지 못했다.

2018년 3대 임준영 작가가 롯데타워 전망대에서 찍은 강남 아파트 전경. 물의 이미지를 덧입혀, 도시의 시간과 생명력을 전달하고자 했다. (@juneyoung_lim)

기획·글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사진 청암사진연구소, 임준영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