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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노인 돕기, 파티 즐기면서도 할 수 있어요”

젊은이의 자선단체 KLC 설립자 마이크 김

등록 : 2018-10-18 15:44 수정 : 2018-10-19 15:59
회계·홍보·금융 등 분야 젊은이 7명

노인 빈곤 심각성 널리 알리고

파티 통해 자선기금 만들어

올해 5천여만원 수익금 기부

젊은이들의 자선단체 KLC를 설립한 마이크 김이 강남구 대치2동에 있는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즐기는 자선 문화’를 설명했다.

“갈라 파티, 자선 파티, 봉사활동…. 다 정확하지 않아요. KLC의 일은 ‘무브먼트’(Movement·운동)를 만드는 일이에요.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하죠?”

지난 12일 점심,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만난 ‘코리아 레거시 커미티’(Korea Legacy Committee, 이하 KLC) 설립자 마이크 김(34)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KLC는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이 ‘한국 노인 빈곤 문제’를 고민하다가 2015년 결성한 단체다. 그대로 풀이하면 ‘한국유산위원회’다. 회계, 홍보, 금융 등 각 분야에서 일하는 젊은이 7명으로 구성됐다. 마이크 김은 “다양한 경험을 누리는 우리 세대는 노인 세대에게 받은 것이 많지만, 정작 한국 노인 빈곤율이 높아 놀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한국 노인의 자살률이 1위란 사실을 알리고, 젊은 세대가 자선기금을 마련해 서로 돕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즐기는 자선 문화 자체를 ‘유산’으로 물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에 4년째 머무는 마이크 김은 “작은 기업을 키우는 일에 줄곧 매력”을 느껴왔다고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정치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고, 10여 년 동안 ‘링크트인’(Linkedin) 등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4년 겨울, 국내 스타트업 ‘배달의 민족’(주식회사 우아한 형제들)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말도 통하지 않는 서울로 날아와 ‘신나게’ 일하다가 지난해 구글코리아로 이직했다.

자선단체 KLC를 설립하기 전, 비슷한 모델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선보였던 터라 자신 있었다. 마이크 김이 만든 ‘글라이드 레거시 커미티’(GLC)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큰 젊은 세대들의 자선 파티’로 통한다. 노숙인과 취약계층을 위한 9년차 자선단체로, 젊은이 10여 명의 기부파티로 시작해 해마다 1천여 명의 젊은이가 파티에 참여한다.

“서울에 오자마자 생각한 것이 ‘이제 나는 어디서 자선활동을 할까?’였어요. 한국에 건너와 이 도시, 이 자치구에 살게 된 이상, 저도 동네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으니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도 자연스러웠던 거죠. 그런데 한국에는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자선단체가 별로 없다는 거예요. 대기업이나 종교단체가 주도하는 모임 외에는 말이지요. 순간 이해가 안 됐어요. 우리가 당장 한국을 이끌어갈 다음 세대인데…. 왜 그걸 안 하지?”

직접 자선단체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나니, 정작 외국에서는 쉽게 설명할 수 있었던 ‘자선 파티’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일조차 부담이 되었다. KLC 상징인 연말 ‘갈라 파티’에 참여하려면 정장과 드레스를 갖춰 입고 기부금인 입장료를 내야 한다. 때문에 ‘노인 빈곤층을 돕는 일과 젊은이들 파티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왜 입장료를 받는가?’ 등 곱지 않은 시선이 따라왔다. 마이크 김은 “한국은 자산가들만 기부 활동을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고, 자선 문화를 엄숙하게 바라본다. 문화 차이를 이해하는 일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연예인과 자산가를 동경해요. 케이팝 스타들이 턱시도에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 밟는 모습을 티브이로 지켜보며, 기부 문화도 그들만이 이끌어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우리의 돈 1천원이 그들의 1천만원과 같은 가치가 같다고 보는 거예요. 기부는 삶의 한 의미이고 우리도 충분히 특별한 사람들이란 거지요. 친구랑 술 마시며 보내는 시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즐기고 관계를 맺고,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내자는 거예요. 파티요? 현장 분위기는 말로 설명이 안 돼요. 일종의 ‘마술’처럼 젊은이들이 만족스러워해요. 정장과 드레스가 ‘나도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멋진 사람이다’란 느낌을 줬던 거지요.”

뜻이 조금씩 통했다. 2015년 입소문에 의지해 이태원 한 칵테일 바에서 시작한 첫 자선 파티에서 50만원을 남긴 이들은, 올해 총 5110만원 수익금 전액을 서울노인복지센터에 기부했다. 3개월마다 여는 캐주얼(격식 없는) 파티, 격식 있는 연말의 갈라 파티 말고 정기 자원봉사에도 사람이 몰린다. 현재 KLC와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월 1회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지와 동시에 5분 안에 자리가 마감된다. 매달 60명이 넘는 젊은이가 2천여 명의 어르신에게 급식 봉사, 스마트 기기 사용 안내와 안경·구두를 닦아드린다. 마이크 김은 그 안에 “젊은이들의 친구 맺는” 문화가 숨어 있다고 귀띔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