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해먹거나 사먹거나

생각만으로 침샘 자극하는 ‘구수계’

[김작가의 해먹거나 사먹거나] 구수계

등록 : 2016-05-12 16:59 수정 : 2016-05-18 17:38
이사한 뒤 시켜 먹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빠르고 저렴하며 어디서 시켜도 최소한 인간이 먹을 수준은 되는 음식, 중국요리의 이미지였다. 아주 오래전에는 생일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날에나 먹었다 하나 그런 아득한 과거를 살아 본 적 없으니, 만만한 게 중국요리였다. 어느 동네에나 중국집이 있듯 중국요리란 특별함과는 거리가 먼, 동네 착한 형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맛집이란 걸 찾아다니게 되면서 반성했다. 큰 착각이었던 것이다. 동네 중국집 메뉴판에선 본 적도 없는 진기한 요리들이 있었고, 동네 중국집에서는 느낄 수도 없는 심오하고 다양한 맛이 있었다. 동네 착한 형의 정체가 사실은 강호를 주름잡는 무림 고수임을 알게 된 뒤 눈을 깔고 다니게 된 격이랄까.  

언젠가부터 중국요리 붐이 일면서 더욱 많은 깨달음의 기회가 있었다. 풍문으로 움직이고, 인도 받아 다녔다. 미약하나마 결론이 났다. 중식 1번지로 새롭게 떠오른 연남동은 우리 입맛에 맞는 중식의 격전지요, 새로운 차이나타운이라 할 만한 대림동 등지는 중국 가정식 요리의 조차지(다른 나라에게 빌린 영토) 같았다. 물론 내 자금이 샘물처럼 솟는다면 시내 호텔에서 중화의 극치를 도모할 수도 있었겠으나 내 통장은 늘 누추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 갈구하는 이 앞에는 어쩌다 귀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폭포수 아래서 무공을 연마하는 고독한 수련가 앞에 홀연히 비급을 던져 주는 노거사처럼, 우연히 연을 맺게 된 귀인은 나를 삼성동의 한 청요릿집으로 이끌었다. 이름하여 차이린. 간간이 들어 봤으되 가 볼 엄두는 못 냈다. 거론되는 메뉴들이 한결같이 듣도 보도 못했던 탓이다. 메뉴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귀인의 영도에 따랐을 뿐이다.  

굽고, 볶고, 튀기고, 찌고, 볶아 졸이고, 삶고, 무치고, 국물을 내고…. 날로 먹는 걸 제외한 모든 요리법의 향연이 펼쳐졌다. 광둥, 산둥, 쓰촨, 후난 등 중국 각지의 음식들이 한 상에서 어우러지니 그것이 곧 중원이었다. 기름지되 느끼하지 않았다. 화끈하되 자극적이지 않았다. 배불리 먹었으되 곤혹스럽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고급진 중국요리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대부분의 음식들이 만족스럽지만 내 미뢰를 단숨에 홀린 건 구수계(口水鷄·사진)다. ‘입에 침이 돌게 하는 닭’이라니, 이것은 마치 ‘스님이 절간 담장을 뛰어넘을 맛’이라는 불도장(佛跳牆, 중국을 방문한 국가원수들에게 대접하는 최고급 요리)급 대륙의 허풍 아닌가 싶었다. 라유(고추기름)을 뿌린 닭 한점을 들어 입에 넣었다. 응? 뭐 이런 맛이? 기가 막혔다. 라유의 풍미, 땅콩의 고소함, 생강의 향 등이 어우러지고 휘몰아쳤다. 닭은 오직 야들야들했다. 초고속 촬영한 개화 장면처럼 입맛이 확 돌았다. 그 뒤로 이어지는 산해진미를 제대로 느껴 보라고 혀를 북돋아 주는 듯했다. 그 뒤로 차이린에 갈 때마다 구수계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점이 됐다. 구수계를 먹는다는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흥건해지곤 하니, 그 이름이 헛되지 않은 셈이다. 허풍이 아닌 진실인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구수계가 몹시 먹고 싶었다. 삼성동까지 갈 여건이 되지 않았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어찌어찌 대략의 조리법을 알아내어 흉내라도 내 봤다. 닭가슴살을 밥솥에 넣고 저온 조리했다. 기억을 짜내고 분석해 양념을 조합했다. 닭고기에 양념을 뿌려 무치고 고수를 흩뿌려 마무리했다. 긴 시간 만들고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본류의 모방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을 만큼 얼추 그 맛이 났다. 요리하면서 내내 침이 고인 건 물론이다. 구수계를 흉내내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된 것이다. 고백해야겠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이나 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이건 뭐, 파블로프의 개가 된 기분이다. 그 맛에 공감하게 될 이, 모두 함께 침을 흘리게 되리라.

글·사진 김작가 음악평론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