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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못잖은 동네정치”…초선 구의원의 매콤한 100일

진선미·양기열·주이삭·이기중 등 4당 30대 의원, <서울&> 주최 좌담회 “구의회에서도 정당 논리가 횡행”…민원 해결 어려움과 중요성 실감

등록 : 2018-11-01 15:25
10월25일 오후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좌담회를 하기 앞서, 4당의 30대 초선 구의원 4명이 6·13 지방선거 운동 때 입었던 옷을 다시 입고,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주이삭 서대문구의원, 양기열 은평구의원, 이기중 관악구의원, 진선미 강동구의원.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외로움, 막막함, 매몰.”

지난 7월1일 지방의회 업무 개시 이후 의정 활동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느낀 점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해달라는 요구에 이기중(38·정의당) 관악구의원은 의외로 부정적 답변을 내놓았다.

“민주당 의원을 빼곤 다 그럴 거다. 서울 구의회 전체 정의당 소속 의원은 5명이고, 관악구에서는 혼자다. 그때그때 상황에 혼자 대처해야 해 외로움을 느낀다. 구의원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의정 활동을 펼쳐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또한 주어진 일에 매몰되다보면 임기 4년이 의미 없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 의원만큼 적나라하고 솔직한 심정 토로는 아니었지만, 10월25일 <서울&> 주최 초선 구의원 좌담회에 참석한 각 당의 30대 의원 3명도 만만찮은 동네정치 현실에 대해 소감을 털어놓았다.

양기열(33·자유한국당) 은평구의원은 “좋은 취지의 발언이나 제안이라도 다수 의원이 반대하면 넘기 어려운 ‘벽’을 느낀다”면서 ‘소수 야당’의 설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역 구민이 응원 문자나 인사를 건네올 때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양 의원은 행정감사나 예산과 결산 업무, 구정 질문까지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소통’의 중요성을 꺼낸다.

참석자 중 가장 어린 주이삭(30·바른미래당) 서대문구의원은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 (동네정치에도) 사람의 ‘감정’이 들어간다는 것을 느꼈다”며 ‘감정’이란 단어를 제시했다. ‘동네를 위한 정치’를 하려고 구의원이 되었는데, 정당 관점에서 사안을 감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50~60대가 다수인 중·장년층 의원 틈바구니에서 “어린 나이가 부담은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출세했네”라는 반응 앞에서 겸손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고 했다.

참석자 중 유일하게 여성 의원인 진선미(35·더불어민주당) 강동구의원은 ‘관례·소통·공인’을 100일 키워드로 꼽았다. “지난 100일 동안 선배 의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관례적’이라는 말이다. 예컨대 다선, 연장자가 무조건 우선시되고, 자신은 ‘어린, 초선, 여성’으로만 거론되는 게 답답했다. 그럴 때마다 세월에서 얻은 경험은 모자라지만 다양한 경험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씀드리곤 한다.”


그래도 진 의원은 주눅 들지 않고 “남녀 불문, 연령 불문 먼저 다가가 악수하고 소통한 결과 주민들이 많이 알아본다”고 했다. “휴일에 친구들과 밥 먹으러 나갔는데 주민이 알아보고 인사해 당황해서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구의원이란 정체성을 가장 실감한 순간은 언제일까?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민원 처리 문제를 꼽았다.

양 의원은 백팩에 양복을 구겨넣고 자전거를 타고 의회에 출퇴근한다. 만나는 주민들에게 “급할 때 언제든 연락 달라”고 하는데, 간혹 새벽에 술자리에 나오라는 전화도 걸려온다고 한다. 그리고 폐회로텔레비전(CCTV·시시티브이) 설치 민원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러나 설치비 부담 때문에 모두 설치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어서 이미테이션 시시티브이를 혼용하자고 구청 쪽에 제안한다고 했다. 지난여름 폭우 때 건설 현장 옆 담벼락이 무너졌다고 민원을 받았을 때 구청의 건축과, 토목과, 파출소, 민원인을 모아 회의 자리를 만들어 해결했을 때는 구의원으로서 뿌듯했다 한다.

“쓰레기 처리와 CCTV 설치 민원 많아”…“스트레스로 병원행”

구의원이 해결 어려운 민원도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다니며 주민들과 접촉하는 주 의원은 재개발 재건축 지역이 많은 동네 특성상 무단투기된 쓰레기 처리 민원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쓰레기 문제만 잘 처리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어려운 문제다. 저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의회 내 연구모임을 만들려 한다. 얼마 전 서대문구 충현동 통장님이 골목 깊숙한 빈집 앞에 쌓인 쓰레기를 알려왔다. 바로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구청에 말해 해결하고 민원인에게 답변을 줬더니 고마워했다.”

여당 의원인 진 의원은 구의원으로서는 해결하기 힘든 대형 민원을 감당하지 못해 잠깐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욕부터 시작하는 민원 문자가 한때 300개 이상 오기도 했다. 서울~세종 간 고속도로 건설, 행복주택 강일동 3만8천 가구 건립 등을 반대하는 의견이다.” 그래도 진 의원은 민원인들을 의회로 모셔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자 분위기가 좋아졌다며 “들어주고 피드백(반응)을 해주니 소통이 이뤄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기중 의원은 밤늦게 오는 전화가 많은 편인데, 지역 단체 회원 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민원 전화보다는 술 먹자는 전화가 많다고 한다. 민원과 관련해서는 일단 귀담아들으려 노력하는데, 간혹 억지 민원도 많아 어렵다고 했다.

김도형·이현숙 선임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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