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70~80년대 노동야학의 흔적

16일까지 ‘서울의 야학’ 전시회

등록 : 2018-11-08 15:45
천막야학부터 장애인야학까지

사진·기록물·구술 등 ‘야학’의 역사

노동야학은 민주화의 밑거름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은 10월31일부터 11월16일까지 서울자유시민대학 본부에서 ‘서울의 야학’ 전시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장애인야학 전시 모습.

“본인은 이번 노동교실에서 실시하는 봉제교실에 입학하여 수강하고져 신청하오니 허청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중구 청계천로 통일상가 B14호에 있었던 피복회사 영남사의 ‘견습생’(수습생)이었던 최아무개씨가 1976년 5월 ‘청계피복 새마을 노동교실’에 낸 수강신청서 내용의 일부분이다. 요즘 같으면 ‘허락’이라고 했을 것을 당시에는 ‘허청’이라고 쓴 것이 특이하다. 여기서 허청은 ‘청구를 허락하다’는의미로 쓰인 듯하다.

청계피복 새마을 노동교실은 1970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결성된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가 1973년에 만든 노동야학의 시초다. 노동자들은 70년대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렸다. 당시 청계천 평화시장, 동화시장, 통일상가 등 400여 피복제품 상가공장에서 일하던 1만5천여 명의 노동자의 80%는 여성이었다. 더욱이 18살 미만 노동자가 전체 40%를 차지했다. 이들 여성노동자는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스스로 지켜낼 여건을 갖추지 못했으나, 야학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삶을 변화시켜나갔다.

청계피복 새마을 노동교실 이후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관악구 신림동의 겨레터야학을 시작으로, 노동야학은 부산·광주·대구 등 전국으로 확산됐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선 들불야학도 겨레터야학의 영향으로 1978년 7월 만들어졌다.


“남북조절위원회와 적십자회담의 진행 등으로 예상되는 남북 교류와 장래의 통일에 대비하여 북한 쪽에서 인식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취약점으로서의 누명을 탈피하고, 주체적인 여건을 갖추기 위해서도 이들 영세근로자의 교양 교육이 절실한 당면 과제로 요청되고 있다.”

1972년 12월 청계피복 새마을 노동교실 설립추진위원회의 경과보고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야학을 만들어 노동자를 교육하는 것에서도 당시 남북 체제 경쟁의 수위를 어렴풋하게 엿볼 수 있다.

노동야학 전시 모습.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은 10월31일부터 종로구 신문로2가 서울자유시민대학 본부에서 야학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서울의 야학’ 전시회를 열고 있다. 11월16일까지인 이번 전시회는 50~60년대 천막야학, 70~80년대 노동 야학, 90년대 이후 장애인야학과 성인 문해교육 등 50년대 이후 사진과 기록물 등 총 64점을 전시하고 있다. 야학의 역사를 담은 사진과 영상을 비롯해 당시 학생들의 통지표, 생활기록부 등의 기록물을 통해 야학이 어떻게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성수재건학교(현 동부밑거름학교)와 일성학교(현 일성여자중·고등학교와 양원주부학교) 등 천막야학은 한국전쟁 이후 사회 재건과 문해율 증진이라는 사회적 필요로 시작됐다. 노동야학은 소외된 노동자의 대안적 학습으로 시작해 노동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야학은 9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또 다른 약자인 장애인에게 눈을 돌려 노들야학과 같은 장애인야학이 생겨났다. 성인 문해교육은 은밀한 의미에서 ‘야학’은 아니지만 그 뿌리가 야학과 닿아 있어 야학의 범주에 포함해 전시하고 있다. 성인 문해교육 학습자들이 만든 시화전도 함께 열린다.

서울의 야학 전시회는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이 시민들과 아카이브 기록물을 공유할 목적으로 마련했다.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은 평생학습을 위한 지식정보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2016년부터 기반 구축 작업을 해왔는데, 2020년께 아카이브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김나영 서울시 평생교육진흥원 정책사업팀 대리는 “내년 상반기에는 이번에 전시한 자료를 디지털화해 시민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앞으로 일제강점기나 미군정 당시 자료도 발굴해 전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