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3일, 상암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유기동물 입양 행사’에는 작년에 유기견을 입양한 김정이씨가 봉사자로 나섰다. 안겨 있는 강아지가 입양된 ‘호수’.
강동구 구청, 동 주민센터, 보건소 앞에는 네모난 나무상자가 놓여 있다. 지붕에는 고양이 그림이 있는데 이 상자가 ‘길고양이 급식소’다. 2013년 강동구 주민인 만화가 강풀과 미우캣보호협회가 구청에 제안한 뒤, 현재 관내 관공서를 중심으로 총 60개 급식소가 생겼다.
“급식소가 생기기 전에는 구청에 민원이 끊이질 않았어요.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뒤지니 잡아달라는 내용이었죠.”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이유는 간단하다. 배고파서다. 먹을 게 없으니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봉투를 뒤져 끼니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강동구는 고양이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길고양이는 더 이상 쓰레기봉투를 헤집지 않았다. 깨끗한 거리를 갖게 됐으니 민원도 눈의 띄게 줄었다.
통장 343명, 급식소 설치 긍정적 평가
구는 또 급식소를 찾는 2.5㎏ 이상의 고양이를 붙잡아 중성화 수술, 광견병 접종을 한 뒤 놓아준다.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살려면 개체수 조절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작년에 약 800마리 정도 출산 감소 효과가 났다고 강동구는 추정했다. 중성화 수술을 하고 붙잡았던 자리에 다시 놓아주는 티엔아르(TNR)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은 강동구와 서울시가 반씩 부담한다. 올해 강동구는 지난해보다 약 52% 늘린 7300만원의 예산을 티엔아르 사업에 편성했다.
개체수가 줄고 길거리는 깨끗해졌지만, 여전히 급식소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급식소 때문에 고양이가 모이는 거 아니냐며 따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편견’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만화가 강풀이 그린 강동구 길고양이 급식소 그림.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한번 정한 서식지는 잘 떠나지 않는다. 즉, 급식소가 있든 없든 길고양이는 그곳에 머문다. 실제 지난 4월 강동구가 통장 47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343명이 ‘급식소가 생긴 뒤, 더 이상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헤집지 않아 도시 미관이 좋아졌다’며 급식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자치단체장으로서 최초로 급식소 설치를 결정했던 이해식 강동구청장 역시 “길고양이 급식소는 동물도 존중하는 ‘생명존중도시 강동’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동물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거부감을 없애고자 마련한 프로그램도 있다. ‘찾아가는 동물학교’는 동물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생명 존중 문화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19일, 둔촌초 4학년3반에서 찾아가는 동물학교 수업이 열렸다. 아이들의 활발한 참여가 눈길을 끌었는데, ‘동물을 왜 보호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현묵(11)이는 “생명이 있으니까!” 하고 답했다. 보드게임, OX퀴즈는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동물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에 적격이었다. 교육을 한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최은서(45) 강사는 “사람보다 약한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면, 사회 약자인 어린이나 여성도 존중 받는 세상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유혜진(40) 담임선생님도 “생명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며 이 교육을 신청한 까닭을 설명했다. 강동구 슬로건인 ‘사람이 아름다운 강동’은 이렇게 완성되고 있었다.
재미난 문구가 있는 옷을 입은 유기견 12마리가 지난달 23일 상암 월드컵공원에 모였다. 서울시가 매월 둘째·넷째주 토요일, 유기견 입양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시는 2014년 5월 ‘서울 동물복지계획 2020’을 발표하고 유기견 입양 행사, 반려견 놀이터, 동물보호 문화 행사, 동물보호 시민의식 개선 사업, 자치구 동물복지 활성화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동물 보호, 생명 존중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려는 노력이다.
이날은 비영리민간단체 ‘팅커벨프로젝트’가 유기견 입양 행사에 참여했다. 말끔하게 미용을 하고, 새 옷을 입은 유기견들은 주인을 만날 기대에 부풀었는지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 봉사자로 나선 김정이(47)씨는 작년 바로 이곳에서 유기견 ‘호수’를 만나 입양했다. 경포호 둘레를 헤매다 구조된 유기견이라 이름도 호수가 되었다. “인간으로서 책임감과 미안함을 느껴요. 이렇게 예쁜 눈망울을 한 생명이 버려지다니….”
오른쪽 눈이 안 보이는 유기견 ‘희철이'(위)는 사람을 잘 따른다. 유기견 ‘학동이’가 입은 옷에 ‘나를 데려가라. 입양준비 완료’라는 말이 눈에 띈다.
305마리 평생 주인과 인연
행사 부스 한켠에서 어린이가 울고 있었다. 유기견을 당장 집으로 데려갈 수 없다는 말에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유기견 입양 행사에서는 마치 시장처럼 그 자리에서 돈을 주고 바로 유기견을 데려갈 수 없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신청서를 쓰고, 충동적인 입양이 되지 않도록 센터를 두세 차례 방문해 강아지와 교감해야 한다. 유기견을 키우기 알맞은 가정인지 방문 심사도 한다. 마지막으로 13명으로 구성된 입양심사위원회가 전원 동의를 하면 입양할 수 있다.
까다로운 입양 절차에 대해서 팅커벨프로젝트 황동열(50) 대표는 ‘한 생명이 평생을 함께할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이 빠른 입양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노력처럼 팅커벨프로젝트를 거쳐 입양 간 유기견 310마리 중 305마리가 평생 가족을 만나 ‘반려견’으로 살고 있다.
간혹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굶는 사람도 있는 세상에 길고양이 밥까지 챙겨 줘야 하나?’ 강동구 동물복지를 담당하고 있는 황창선 생활경제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소득층 복지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아요. 동물복지 역시 최소한의 보호를 원칙으로 합니다.”
복지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한 삶’이다. 강동구는 2013년 12월 전국 최초로 ‘강동구 동물복지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 조례’를 지정했는데, 동물에게까지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구민과 약속한 것이다. 동물이 행복한 세상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인 건 당연하다. 인종에 따라 사람의 우열을 나누지 않는 것처럼, 종(種)의 차이로 생명권의 우위를 따져서는 안 된다. 동물복지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 역시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힘없는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할 때,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글·사진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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