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은 천사’ 85년 전 묘비, 오늘의 우리를 깨운다

장태동의 서울 문학기행

등록 : 2016-05-12 18:20
어린이의 친구, 이야기꾼 방정환의 흔적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방정환의 동상.

‘삼십년 사십년 뒤진 옛사람이 삼십년 사십년 앞사람을 잡아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을 위하고 떠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만 밝은 데로 나아갈 수 있고 새로워질 수 있다.’ 1930년 방정환이 남긴 글이다. 어린이의 영원한 친구, 방정환은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 앞날이 어린이들에게 있다며 어린이를 위해 생을 바친다.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88번지에서 방정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천도교, 손병희 그리고 방정환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 어린이를 위해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던 사람, 어린이에게 읽어 줄 동화를 짓는 사람, 방정환.

 방정환은 이야기꾼이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 동화가 됐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이지만 어른들을 위한 글이기도 했다. 함박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야기 속에 마음에 새길 만한 골자가 들어 있다. 옆집 이야기 앞동네 이야기,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에 녹여내므로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인 듯 쉽게 공감했다.

 그는 글을 통해 어린이를 위한 삶을 산다. ‘어린이는 인간으로 존중 받아야 할 인격이고 민족의 앞날을 이끌어갈 사람’이라는 그의 생각의 뿌리는 천도교의 인내천(사람이 곧 한울이다) 사상에 닿아 있다.


 보국안민(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과 광제창생(널리 백성을 구제한다)의 뜻으로 일어선 동학이 1905년 천도교로 이름을 바꾼다. 당시 천도교 교조는 손병희였다. 손병희의 사위가 방정환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을 방정환은 어린이운동에 적용한다. 1921년 5월1일 천도교소년회를 만들고 전국 순회강연을 한다.

 1922년 5월1일,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그는 ‘어린이날’을 선포한다. 1920년 <개벽>지를 발행한 ‘개벽사’에서 1923년 어린이용 잡지 <어린이>를 월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방정환은 <개벽> <어린이> <별건곤> <청춘> <조선농민> <신여성> <학생> 등에 여러 필명으로 글을 발표한다. 그가 발표한 글은 수백편이다. 요즘도 그의 글을 모아 책을 만든다. 1922년에 낸 번안동화집 <사랑의 선물>은 당시 베스트셀러였으며 지금도 출판된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 5번 출구에서 약 140m 거리에 있는 수운회관 정문 옆에 비석이 하나 있다. 세계어린이운동 발상지 비석이다. 수운회관 정문 기둥에는 개벽사가 있었던 곳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고, 수운회관 옆에는 천도교소년회 사무소 터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수운회관 옆에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있다. 1921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1918년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건축비를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는 바람에 공사가 늦어졌다.

 수운회관을 나와 안국역 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직진하면 길 왼쪽에 헌법재판소가 있다. 헌법재판소 안에는 600년 된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이 있다. 정문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고 들어가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를 나와 가던 방향으로 직진하면 가회동주민센터가 나온다. 가회동주민센터 옆에 방정환의 장인인 손병희가 살던 집터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보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가회동 백인제 가옥이 나온다. 옛 한옥 건물의 운치가 살아 있다.

(시계방향으로) 방정환 문학기행 지도. 손병희 선생 집터. 천도교 중앙대교당. 방정환의 묘비.

 망우리공원에 잠들다

 골목에서 나와 도로를 만나면 우회전, 재동초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죽 가면 정독도서관이 나온다. 정독도서관 뜰 한쪽에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중등학교로 세워진 경기고등학교 건물이 남아 있다. 등록문화재 제2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현재는 서울교육박물관이다.

 정독도서관을 지나 경복궁 돌담길을 만나면 돌담길을 따라간다. 세종문화회관 뒤 ‘로얄빌딩’에 도착한다. 방정환은 당주동에서 태어났다. 로얄빌딩 근처에 그가 태어난 집이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1931년 세상을 뜬 방정환은 망우리공원에 묻힌다. 망우리공원 순환도로(사색의 길)를 걷다 보면 방정환 묘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보인다. 길에서 숲으로 조금 들어가면 방정환의 묘가 있다. 묘비에 ‘童心如仙(동심여선)’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어린이 마음은 천사와 같다는 뜻이다.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 상’이 있다. 어린이의 어깨를 감싸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동상은 애초 1971년 남산에 세웠다. 남산에 있던 어린이회관이 1974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방정환 동상도 이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일었다. 그리고 1987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된다. 어린이가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동상을 옮기고자 했으며 그 자리가 어린이대공원이었던 것이다.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 마음에 새겨야

소파 방정환 선생 동상 주변에는 여러 글귀를 새긴 비석이 있는데, 그중 방정환 선생이 쓴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그대로 옮겨 본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어린이를 가까이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럽게 하여 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가끔가끔 시켜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 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