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전국 최초 공공임대상가에 노점 상인 입점

지난 9월 신촌역 맞은편 신촌 박스퀘어에 41명 입점

등록 : 2018-11-22 15:17
일부는 입점 거부, 계속 영업 불씨 남겨

갈등 빚던 창동 노점은 매대 재설치

서울시 가이드라인 제정 합법화 길 터

영등포구도 내년 상반기 ‘상생 거리가게’

서대문구가 9월15일 거리가게 상인과 청년 상인을 입점시켜 문을 연 공공임대상가 신촌 박스퀘어에 손님들이 오가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신촌 박스퀘어에 입점하면 장사가 잘될지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

14일 만난 닭강정 가게 ‘88쌈닭’을 운영하는 김종규(58)씨의 표정은 밝았다. 김씨는 두 달 전만 해도 이화여대길에서 달걀빵을 파는 거리가게(노점)를 했는데, 신촌 박스퀘어에 입점하면서 품목을 바꿔 닭강정을 판다. 김씨는 “월평균 2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리는데, 노점을 할 때나 지금이나 매출은 엇비슷하지만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흔히 ‘적자는 안 난다’는 말의 속뜻을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상황인 듯했다.

“무엇보다 몸이 편해졌다.” 쌀국수 가게 ‘코쿤캅’을 운영하는 박경옥(56)씨도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박씨는 “포장마차를 끄는 게 너무 힘들어서 박스퀘어에 입점했는데, 마차를 펴고 접고 옮기는 고생을 안 해서 좋다”고 했다. 그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괜찮다”며 “노점을 할 때보다 1.5배 정도 수익이 늘었다”고 했다.


주요 고객인 이화여대생들도 신촌 박스퀘어가 생긴 것을 반겼다. 3학년 남예원(21)씨는 “무엇보다 위생적이고 깨끗해진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신촌 박스퀘어는 서대문구가 지난 9월15일 경의중앙선 신촌역 맞은편에 문을 연 공공임대상가다. 이화여대길에서 영업하던 거리가게 상인 23명과 공모로 선정된 청년 상인 18명이 입점했다. 34억원을 들여 지은 신촌 박스퀘어는 연면적 745.46㎡(226평)의 지상 3층 컨테이너형 건물로, 1층에 점포 32개, 2층에 27개, 3층에 1개와 옥상공원이 들어섰다. 조한수 신촌 박스퀘어 운영지원실장은 “공공임대상가에 노점 상인을 입점시킨 것은 신촌 박스퀘어가 전국 최초”라고 한다.

서대문구는 거리가게 상인들에게는 매점을 영구임대해주고, 청년 상인들에게는 기본 2년에 1년 더 연장해 쓸 수 있도록 했다. 점포 크기에 따라 월 7만~10만원 정도의 임대료만 내면 되는데, 올해는 거리가게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면제해줬다.

지하철 2호선 이대역에서 이화여대 정문에 이르는 이화여대길 230m 거리는 거리가게 때문에 정비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고 안전을 위협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서대문구는 해결 방안으로 2016년 12월 노점 상생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신촌역 앞 쉼터에 신촌 박스퀘어를 만들어 거리가게 상인들을 입주시키기로 하고, 2017년 초 설계를 시작해 지난 5월에 완공했다. 서대문구는 거리가게 상인들에게 40여 차례 설명회와 간담회를 열어 신촌 박스퀘어를 꾸준히 알려왔다.

서대문구는 8월30일 거리상인들을 모두 신촌 박스퀘어에 입점시킨 뒤 개소식을 열기로 했으나, 일부 거리가게 상인들이 입점하지 않겠다고 해 개소식이 미뤄졌다. 장정식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서부지역노점상연합 이대지부장은 “나를 포함해 22명은 장사가 잘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입점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여전히 이화여대길에서 노점 영업을 하고 있다. 18년 동안 어묵과 닭꼬치를 팔고 있는 장 지부장은 “이대거리 중간쯤에 있는 대영공원 앞길에 노점거리를 만들어 장사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서대문구는 남아 있는 거리가게를 강제로 철거하지는 않고, 상인들과 꾸준히 대화해 신촌 박스퀘어에 입점시킬 방침이다.

도봉구 창동역 서편(2번 출입구) 거리가게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철거한 지 1년여 만인 11월 중순에 영업을 재개한다. 도봉구는 총 55개 거리가게 가운데 이마트 쪽 19개, 공영주차장 쪽 10개, 창동역 외 지역 등 총 32개에 도로점용허가를 내줬다. 황인성 도봉구 가로관리과장은 16일 “일부 전기시설이 설치된 매대(포장마차)는 영업을 하고 있고 다음주 정도면 전부 영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역사 하부에 있던 노점 11개 중에서 보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3~4개를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 과장은 도로점용료는 면적에 따라 연 15만~30만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했다.

창동역 거리가게의 역사는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지하철 4호선 창동역이 생기면서 역사 하부에 하나둘 거리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봉구는 창동역 주변 거리가게로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자, 지난해 8월 도봉구와 전국노점상총연합 사이에 ‘창동역 거리가게 개선사업 업무협약’을 맺었다.

거리가게 상인의 재산 실태 조사를 거쳐 재산 3억원(공시 가격) 미만인 거리가게 상인에게는 도로점용료를 받는 대신 거리가게를 허가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이 협약에 따라 거리가게 상인들은 지난해 10월 포장마차를 자진 철거했고, 도봉구는 환경개선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11월부터 주민들이 거리가게 재설치 반대 집회를 시작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도봉구는 주민과 거리가게 상인 양쪽을 따로따로 만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매대 재설치는 1년이나 늦어졌다. 거리가게 상인들은 매대를 철거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 8월30일 노원구청 상황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청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9월7일 전국노점상총연합,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등 노점상조직 회원 2천여 명은 기습적으로 매대를 이마트, 공영주차장, 신원빌딩, 케이비(KEB)하나은행 창동지점 앞과 창동역사 아래에 설치했다. 10월29일에도 매대를 설치하려는 상인들과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충돌했다.

김진학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북동부지역장은 “원래 자리는 아니지만 일단 자리를 잡은 것으로 만족한다”면서도 “14개가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못해 아쉽고, 바뀐 장소에서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매출이 나올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7월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지침)을 발표해 단속과 규제 위주의 거리가게 정책을 허가제로 전환했다. 거리가게 지침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는 거리가게 상인에게 도로 점용을 허가하고 거리가게 상인은 지자체에 도로점용료를 내야 한다. 거리가게 최대 점용 면적은 가로 3m 세로 2.5m 이하로 2.5m의 보도 여유 폭이 있어야 하고, 도로점용허가는 1년 단위로 갱신해야 한다.

서울시 통계 자료를 보면, 시내 거리가게 수는 2014년 8662개에서 2018년 7203개로 4년 전과 비교하면 1459개가 줄었다. 이 가운데 창동역 거리가게에 도로점용허가를 내준 도봉구와 거리가게 실명제를 시행하는 중구 명동과 남대문시장, 특화거리로 지정된 동작구 노량진 컵밥거리 등 ‘합법 노점’은 아주 적다.

서울시의 거리가게 지침은 그동안 불법으로 이뤄졌던 거리가게 영업을 광역지자체 차원에서 합법화한 조처로, 거리가게 허가제를 시행하는 기초지자체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영등포구는 19일 내년 상반기 거리가게 허가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영중로 일대를 시민이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기 위해 거리가게 허가제 시범사업을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영등포역 삼거리에서 영등포시장 사거리까지 약 390m로 도로 양쪽에 거리가게를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주민, 노점 관계자,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상생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운영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