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에서도 덤덤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무관심 속엔 수십 년 축적된 공포가 숨어 있다.”
소설가 한강이 2017년 미국의 일간신문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한 구절이다. 실제로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이산가족이 돼버린 이들은 “살아생전에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며 자신의 불안한 심정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이념 대립에서 생긴 ‘공포, 무기력, 초조, 외로움’을 작가 유비호(49)가 11월30일~12월16일 마포구에 있는 ‘공간41’에서 진행하는 전시 ‘꽹과리 은하수 편지’에 담았다.
전시는 오랜 분단에 내재된 개인의 심리 요인을 파악해 사진과 영상, 음향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개인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의 심정에 빗대 설명했다. “죽음의 세계에서 연인의 손을 잡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마음이 오르페우스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작가는 어두운 공간에서 햇빛을 꽹과리로 반사해 관람객에게 비추는 미디어 작품인 <꽹그랑꽹꽹꽹>(사진)을 전시의 백미로 꼽았다. “원래 농악에서 꽹과리가 리드 구실을 하잖아요? 이 소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빛을 깨지게 하거든요.” 꽹과리가 전시 제목으로 선정된 이유도 이데올로기에 갇힌 비극적 상황에서 뚫고 나오고 싶은 개인의 마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란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공간-미장센’을 활용했다고 한다. 미장센은 무대 위 배치를 통해 상징을 극대화하는 것을 뜻하는 연극·영화 용어다. 그런데 그는 왜 이를 전시에 활용했을까.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부에 초점을 맞춘 것이죠.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뉘앙스에 주목했어요.” 그는 결국 이것이 관람객에게 ‘느림과 비움을 통한 성찰’에 이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유비호는 동시대 예술가, 기획자, 미디어 연구자와 함께 예술과 사회 그리고 미디어 연구모임인 ‘해킹을 통한 미술행위’(2001), ‘Parasite-Tactical MediaNetworks’(2004~2006) 등을 공동 조직했다. 예술과 사회에 대한 미적 질문을 던지는 <유연한 풍경>(2008·2009), <극사적 실천>(2010), <공조 탈출>(2010), <트윈픽스>(2011)를 발표했다. 2013년에는 ‘성곡 내일의 작가상’을 받았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미디어소통실 미디어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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