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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감성 폴폴” 그림공책, 5년간 8만5천 권 팔려
‘서울 여행 저널’ 기획 제작한 권윤상 대표와 한우란 작가
등록 : 2018-11-29 15:47 수정 : 2018-11-30 14:30
10년 동안 16개국 유명 도시 여행
파리 봉마르셰, 뉴욕 모마 입점한
실력 바탕으로 엄지손가락 사람이
인터넷 정보로는 없는 감상 담은 공책
현재 서울 주요 관광기념품 상점에서, 지난 5년 동안 스테디셀러 자리를 고수한 여행·관광 기념상품이 있다. ‘서울 여행 저널’이란 그림공책이다. 누적 판매 약 8만5천여 권. 디지털 시대에 소박한 아날로그 제품치고 판매 성적이 높다. 공책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팬지데이지(주)의 권윤상(45) 대표와 한우란(37) 작가, 두 사람을 지난 21일 오후 마포구 합정동에서 만났다.
“그림에 ‘서울 감성’이 있다고, 해외 바이어들이 평하더라고요.” 권 대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수입이 점점 좋아져서 실감하죠. 사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여행하고 그림만 그리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어요….” 한 작가가 수줍게 말을 받는다.
만듦새가 담담하다. 첫 장을 넘기면, 손그림 스케치에 알록달록 수채 잉크로 채운 엄지손톱만 한 사람들이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만세를 부르고 커피를 마신다. 여백에는 여행자가 간단한 소감과 메모를 할 수 있게 꾸며져 있다. 남대문에선 1만원 하는 신발을 고르고, 경의선 숲길에선 반려견과 산책하고, 한양도성 산책길을 따라 홀로 부지런히 달리고, 재즈카페 ‘원스인어 블루문’에서 밴드 음악에 취한다.
“이 그림풍으로 2008년 ‘파리 여행 저널’을 먼저 만들어 2010년 파리 메종 드 오브제 박람회에 출품했어요. 다들 ‘한국에서 온 듣도 보도 못한 회사’로 대할 때였는데, 루이비통이 직영하는 봉마르셰 백화점 바이어가 덜커덕 계약을 맺은 거예요. 프랑스는 여행·관광 상품 하나하나가 그 도시와 나라를 상징한다고 여겨서, 국가에서 전반적인 관리를 할 정도로 심사가 까다로워요. 봉마르셰 입점 후 다른 외국 도시 바이어들은 한 수 접고 저희를 대했어요.” 권 대표가 설명한다. ‘파리 여행 저널’은 현지에서 약 10만여 권 팔렸다. 10주년을 기념해, 2019년에 ‘다시 찾은 파리-랑데뷰’ 편으로 업그레이드해 출시하려고 준비 중이다. 직원 열 명인 작은 회사로서 값진 성취였다. 파리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10년의 여정을 함께하며 16권의 도시 여행 상품 시리즈를 냈다. 무엇보다 16개 도시(파리1·2, 서울, 빈, 리스본, 두바이, 베네치아, 시드니, 뮌헨, 로마, 바르셀로나, 도쿄, 스톡홀름, 런던, 베를린, 뉴욕)마다 판매망을 짠 일이 성과였다. 지금은 프랑스 리옹·몽셸미셸섬, 홍콩, 싱가포르 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2015년에는 뉴욕 현대 미술관 ‘모마’(MoMA) 수석 바이어가 ‘뉴욕 버전’을 해달라며 제작을 의뢰, 입점에 성공했다. ‘서울 여행’ 편도 외국의 바이어들이 먼저 권해 탄생했을 정도다. 그림풍을 살린 ‘서울 마그넷(자석) 세트’와 ‘서울 여행 저널’은 2013년 ‘제1회 서울 상징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각각 금상과 입선에 당선됐다. 바이어들을 사로잡은 비결이 뭘까. “현장감과 여유로운 감성” “회사와 아티스트의 오랜 호흡” 덕이라고 두 사람은 분석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로는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믿는다. “파리 골목의 한 군데라도 이 각도 저 각도 사진 자료를 쌓아 입체적으로 기억을 구성해요. 스토리보드를 먼저 그리면서, 준비가 되면 붓을 들고요. 누군가 이 그림을 봤을 때, ‘아, 나도 여행할 때 이랬는데’ 하는 마음이 거기서 오지 않을까 싶어요.” 한 작가의 설명이다. 또한 “바이어들은 시간이 쌓인 결과물에 점수를 준다”고 권 대표는 말한다. 상품에 대한 일종의 신뢰다. “대기업도 아닌 작은 디자인회사에서, 이처럼 직원들과 긴 근속연수를 유지해가는 일이 쉽지 않거든요. 저희는 아티스트를 먼저 발굴하고 그 사람에게 맞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지원해요. ‘사람’에게 ‘일’을 맞춰요. 사람이 기계가 아니더라고요.” 두 사람은 2008년 만났다. 당시 콘텐츠회사를 운영하던 권 대표는 캐릭터 산업에서 성과를 올렸지만 “2008년 금융위기, 작가 사망과 이탈, 한국 시장의 고질적인 ‘불법 복제’ 문제” 등 악재가 겹쳐 “사실상 부도” 상태로 회사를 지탱해야 했다. 마지막 돌파구로 ‘여행·관광 기념상품’ 분야에서 회생 가능성을 타진할 때였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막 졸업한 한 작가는 입사원서를 내고 있었고, 권 대표가 한 작가의 블로그에서 “그림 한 장을 본 것이 인연”이 됐다. 특유의 전원적인 감성에 매료돼 삽화를 그려보라 제안했다. “바로 프랑스 파리로 한 달 동안 보내버린 거예요” 한 작가는 자전거 한 대를 빌려 꼼꼼히 도시를 탐색해 노트 한 권을 채웠고, 시작하는 회사의 버팀목이 됐다. 한 작가는 지금도 평균 한 해 2~4개 도시를 여행한다. 올해 1월에는 사내 ‘이사’로 승진했다. “사내 직원들도 부러워하는 꿈같은 생활”을 누리면서도, 한 작가는 그 부담과 고충이 컸다고 한다. 여행 5년차 무렵 “모두 그만두고 싶어 회사를 탈출한” 그는 1년 동안 방황을 실컷 했다고 한다. “삼십 대에 들어서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보였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그림’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 팔려야 하는 그림’ 사이에서 충돌이 있었던 거예요. 한 해 쉬고 돌아와서는 균형을 맞추며 작업하고 있어요. 조금 더 원숙해졌죠.” 올해는 도시 여행 프로젝트가 확장돼 두바이 왕족에게서 개별 연락까지 왔다. “궁전 일부를 사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대요. 비공개 방까지 열어줄 테니 그려달라는 주문이었죠. 박물관에서 팔겠다고요. 그래서 내년엔 두바이로 먼저 스케치 갑니다. 한우란 이사가 부디 건강해야 하는데….” 권 대표가 한 작가의 눈치를 보며 웃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10년’도 지금처럼 가고 싶다고 했다. “전 세계 도시가 얼마나 많아요? 도시마다 서울에서 작업한 도시 노트 시리즈로 채워가는 일이 꿈이죠.” 권 대표의 말이다. 한 작가가 말했다. “스무 살, 강원도 인제에 살다가 대학에 입학하려고 서울에 막 왔을 때 ‘꿈의 도시’에 온 기분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도시 생활에 너무 지쳐서 ‘이곳을 떠날까?’ 싶다가도, 특유의 속도와 새로움, 이곳이야말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는 걸 상기하면 떠날 수가 없어요. 자전거 타고 한강을 산책할 때 가장 좋죠. 모든 영감의 원천이 되는 장소거든요.”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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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지데이지(주)의 권윤상 대표와 한우란 작가가 프로젝트 브랜드 라프레미디에서 만든 ‘여행 저널’ 시리즈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16개 도시를 여행하며 만든 그림공책으로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 입점하고 각 도시에 판매망을 마련했다.
“이 그림풍으로 2008년 ‘파리 여행 저널’을 먼저 만들어 2010년 파리 메종 드 오브제 박람회에 출품했어요. 다들 ‘한국에서 온 듣도 보도 못한 회사’로 대할 때였는데, 루이비통이 직영하는 봉마르셰 백화점 바이어가 덜커덕 계약을 맺은 거예요. 프랑스는 여행·관광 상품 하나하나가 그 도시와 나라를 상징한다고 여겨서, 국가에서 전반적인 관리를 할 정도로 심사가 까다로워요. 봉마르셰 입점 후 다른 외국 도시 바이어들은 한 수 접고 저희를 대했어요.” 권 대표가 설명한다. ‘파리 여행 저널’은 현지에서 약 10만여 권 팔렸다. 10주년을 기념해, 2019년에 ‘다시 찾은 파리-랑데뷰’ 편으로 업그레이드해 출시하려고 준비 중이다. 직원 열 명인 작은 회사로서 값진 성취였다. 파리를 시작으로 두 사람은 10년의 여정을 함께하며 16권의 도시 여행 상품 시리즈를 냈다. 무엇보다 16개 도시(파리1·2, 서울, 빈, 리스본, 두바이, 베네치아, 시드니, 뮌헨, 로마, 바르셀로나, 도쿄, 스톡홀름, 런던, 베를린, 뉴욕)마다 판매망을 짠 일이 성과였다. 지금은 프랑스 리옹·몽셸미셸섬, 홍콩, 싱가포르 편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2015년에는 뉴욕 현대 미술관 ‘모마’(MoMA) 수석 바이어가 ‘뉴욕 버전’을 해달라며 제작을 의뢰, 입점에 성공했다. ‘서울 여행’ 편도 외국의 바이어들이 먼저 권해 탄생했을 정도다. 그림풍을 살린 ‘서울 마그넷(자석) 세트’와 ‘서울 여행 저널’은 2013년 ‘제1회 서울 상징 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각각 금상과 입선에 당선됐다. 바이어들을 사로잡은 비결이 뭘까. “현장감과 여유로운 감성” “회사와 아티스트의 오랜 호흡” 덕이라고 두 사람은 분석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로는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믿는다. “파리 골목의 한 군데라도 이 각도 저 각도 사진 자료를 쌓아 입체적으로 기억을 구성해요. 스토리보드를 먼저 그리면서, 준비가 되면 붓을 들고요. 누군가 이 그림을 봤을 때, ‘아, 나도 여행할 때 이랬는데’ 하는 마음이 거기서 오지 않을까 싶어요.” 한 작가의 설명이다. 또한 “바이어들은 시간이 쌓인 결과물에 점수를 준다”고 권 대표는 말한다. 상품에 대한 일종의 신뢰다. “대기업도 아닌 작은 디자인회사에서, 이처럼 직원들과 긴 근속연수를 유지해가는 일이 쉽지 않거든요. 저희는 아티스트를 먼저 발굴하고 그 사람에게 맞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지원해요. ‘사람’에게 ‘일’을 맞춰요. 사람이 기계가 아니더라고요.” 두 사람은 2008년 만났다. 당시 콘텐츠회사를 운영하던 권 대표는 캐릭터 산업에서 성과를 올렸지만 “2008년 금융위기, 작가 사망과 이탈, 한국 시장의 고질적인 ‘불법 복제’ 문제” 등 악재가 겹쳐 “사실상 부도” 상태로 회사를 지탱해야 했다. 마지막 돌파구로 ‘여행·관광 기념상품’ 분야에서 회생 가능성을 타진할 때였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막 졸업한 한 작가는 입사원서를 내고 있었고, 권 대표가 한 작가의 블로그에서 “그림 한 장을 본 것이 인연”이 됐다. 특유의 전원적인 감성에 매료돼 삽화를 그려보라 제안했다. “바로 프랑스 파리로 한 달 동안 보내버린 거예요” 한 작가는 자전거 한 대를 빌려 꼼꼼히 도시를 탐색해 노트 한 권을 채웠고, 시작하는 회사의 버팀목이 됐다. 한 작가는 지금도 평균 한 해 2~4개 도시를 여행한다. 올해 1월에는 사내 ‘이사’로 승진했다. “사내 직원들도 부러워하는 꿈같은 생활”을 누리면서도, 한 작가는 그 부담과 고충이 컸다고 한다. 여행 5년차 무렵 “모두 그만두고 싶어 회사를 탈출한” 그는 1년 동안 방황을 실컷 했다고 한다. “삼십 대에 들어서니 현실적인 문제들이 보였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그림’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 팔려야 하는 그림’ 사이에서 충돌이 있었던 거예요. 한 해 쉬고 돌아와서는 균형을 맞추며 작업하고 있어요. 조금 더 원숙해졌죠.” 올해는 도시 여행 프로젝트가 확장돼 두바이 왕족에게서 개별 연락까지 왔다. “궁전 일부를 사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대요. 비공개 방까지 열어줄 테니 그려달라는 주문이었죠. 박물관에서 팔겠다고요. 그래서 내년엔 두바이로 먼저 스케치 갑니다. 한우란 이사가 부디 건강해야 하는데….” 권 대표가 한 작가의 눈치를 보며 웃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10년’도 지금처럼 가고 싶다고 했다. “전 세계 도시가 얼마나 많아요? 도시마다 서울에서 작업한 도시 노트 시리즈로 채워가는 일이 꿈이죠.” 권 대표의 말이다. 한 작가가 말했다. “스무 살, 강원도 인제에 살다가 대학에 입학하려고 서울에 막 왔을 때 ‘꿈의 도시’에 온 기분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도시 생활에 너무 지쳐서 ‘이곳을 떠날까?’ 싶다가도, 특유의 속도와 새로움, 이곳이야말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는 걸 상기하면 떠날 수가 없어요. 자전거 타고 한강을 산책할 때 가장 좋죠. 모든 영감의 원천이 되는 장소거든요.”
한우란 작가가 그린 ‘경복궁의 왕과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