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 출신의 사진작가 박귀섭(34)이 9일 서초동에 있는 스튜디오 에이아폴론에서 진행하는 <작업실을 얕보다>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찍은 작품들은 제목을 달지 않거나 ‘Shadow #2’(사진)와 같이 추상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미지를 보는 사람들이 다른데, 느끼는 것도 모두 다르지 않을까요? 특정한 제목이야말로 작가의 편협한 고정관념입니다.”
이런 신념은 그가 걸어왔던 길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국립발레단에서 촉망받는 솔리스트에서, 사진작가로 탈바꿈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1961~)의 소설책 <나무>의 러시아판 표지 계약을 할 만큼 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사진작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꽃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사진은 좋았는데, 전공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약 직전에 취소되는 일이 잦았다. 아마도 박 작가의 ‘무제’ 시리즈는 이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박 작가의 ‘고정관념 탈피’는 이어지는 전시의 곳곳에서 잘 드러난다. 전작 'WHITE' 전시장에서는 하얀 두상을 놓고 관객들에게 물감을 마음껏 뿌리게 했다. “모든 인간은 미색으로 태어나는데, 환경에 따라 색깔이 더할 뿐이죠.” 전시를 할 때마다 이렇게 ‘관객 참여’를 빼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이 작품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다”고 답했다.
“제 사진의 비결은 무용입니다. 몸을 가지고 표현해봤기 때문에 몸을 잘 담을 수 있는 거 같아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이 분명 있거든요.” 야구선수였다가 무용수를 담는 세계적 사진작가가 된 조던 매터(1966~ )가 떠오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 박귀섭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2006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2007년 뉴욕 국제 발레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룩북 화보 디자이너 사진(2010),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나무> 러시아판 커버 계약(2014), 뉴욕 소니뮤직 <리프 제닝스 5집> 커버(2015)를 작업했다. 개인전으로는 <몸짓: 찰나의 언어>(모즈 갤러리, 2017), <표현하다>(올리비아박 갤러리, 2017) 등이 있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미디어소통실 미디어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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