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후회했던 것에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미술 작가 차승언(45)은 오는 15일~1월5일까지 종로구 온그라운드 지상소에서 진행하는 전시 <+ebony+ivory+>에서 ‘직조’를 회화에 접목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대학에서 섬유미술을 전공했는데, “한때는 섬유보다 회화를 동경했다”고 한다. 그는 직조, 즉 천을 만드는 과정에서 씨실과 날실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를 그때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 고백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총 26점의 캔버스가 종이가 아닌 직물이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직조를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이유를 “남들에겐 캔버스가 그림을 그리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제겐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작업”이라 답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동대문시장에서 여러 종류의 실을 사는 것에서 시작된다. 붓과 물감이 아니라 조선 시대의 풍속화에서나 볼법한 베틀로 천을 짜며 추상화를 그린다. 그는 스스로 이를 ‘직조회화’라 이른다.
<+ebony+ivory+>는 차 작가에게 영감을 줬던 세 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직조 추상화의 어머니로 알려진 ‘애니 앨버스’(1899~1994)를 비롯해 2007~2008년까지 이중섭 미술상을 연이어 받은 서양화가 홍승혜(60, 서울산업대 교수)와 섬유미술가 정경연(64, 홍익대 교수)이다. “작가의 작업실에는 오색실로 가득 찬 베틀이 석 대 놓여 있다. 직조기에 앉아 한 올의 씨실과 날실을 촘촘하게 맞물리는 인고의 노동을 굳이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동안 미술 안에서 충분히 얘기되지 못한 주제입니다. 분명히 더 오래 두고 봐야 할 것인데, 순간 지나쳐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한때 다른 장르를 연모했던 한 예술가의 ‘혼돈’이 하이브리드(혼합·공존) 시대인 지금, 사라져갈 수도 있는 한 장르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정체성’으로 변화됐다.
■ 차승언은 홍익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섬유미술을, 시카고예술대학에서 회화와 드로잉을 공부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시카고 설리번 갤러리 등에서 그룹전을 열었고, <아그네스와 승환스>(2014), <성자 헬렌>(2017) 등 개인전 7번을 열었다. 난지 미술창작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했으며, 현재는 금천예술공장 9기 입주 작가로 활동한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미디어소통실 미디어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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