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오히려 남다른 성과로 ‘나쁜 혀’를 물리쳐 보세요

동료보다 이른 승진 “험담에 가슴앓이하고 있어요”

등록 : 2016-05-19 14:34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얼마 전 회식 장소의 화장실에 들어서려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뒷걸음쳤습니다. 저를 둘러싼 황당한 험담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 이번에 어떻게 팀장 된 줄 알아? 사장의 먼 친척이라는군. 어쩐지…!” 저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 선배들보다 앞서 승진한 탓인지 요즘 저를 둘러싸고 전혀 사실과 다른 소문들이 돌고 있어 무척 속상합니다. 저는 사장님과 성만 같을 뿐 어떤 혈연관계도 없습니다. 특히 가까웠던 직장동료들조차 소원해지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가슴앓이만 하고 있습니다.

A. 흔히 ‘뒷담화’라 하는 부정적인 소문의 피해를 겪고 계시는군요. 담화(談話)와 우리말의 뒤(後)가 합쳐져 생긴, 재미있는 말이지만,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분한 마음에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촌철살인의 위트로 유명한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빨리 다치게 하려면 당신의 적과 친구만 있으면 된다. 즉 당신을 비방하는 적과 그 비방을 당신에게 전하는 친구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를 모함하고 비방하는 라이벌과 적대 세력도 문제지만, 그 말을 나에게 빨리 전해 줘서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상심한 내 모습에 희열을 느끼려는 내 주변 사람들의 행태를 신랄하게 꼬집은 것이지요.

‘뒷담화’는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의 아이들부터 청소년들에게는 ‘왕따’, 군대생활에서는 심각한 총기 사고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나이 지긋한 장년층과 노년층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험담 때문에 간혹 분쟁이 일어납니다. 언론의 사회면 기사에서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표현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뒷담화에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뒷담화가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심각한 형태로 일어나는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회식 자리는 뒷담화가 벌어지는 주된 현장이기에 빠지면 안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화장실에 갈 때면 으레 이런 농담이 오갑니다.

“아휴, 남 얘기 실컷 했더니 이제는 내 차례가 되었네. 화장실 빨리 갔다 올 테니 뒷담화 짧게 하라고!”

외모, 고약한 별명, 출신 환경, 특이한 표정, 생활 습관, 은밀한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쑥덕거림의 소재는 실로 다양하고 집요합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뒷담화야말로 직장생활의 활력소입니다. 억눌린 감정을 분출시키는 최고의 카타르시스 아니겠습니까? 핫핫!”


이렇게 관대한 척 말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뒷담화에는 더 목청을 높이고 더 흥분하기 마련입니다. 감정의 이중성이지요.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을 가리켜 ‘라손 하라’(lashon hara)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나쁜 혀’라는 뜻입니다. 뜻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설화’(舌禍)라고 하는 단어로 방정맞은 입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나쁜 혀의 해독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반드시 몽둥이로 때려야만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입에서 입으로 근거 없는 소문을 옮기는 것이 때로는 흉기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씨에스피(Csp)라는 국내 뮤지션이 부른 ‘뒷담화’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앞에선 같이 웃던 애들/ 돌아서면 들려 내 이름 / 어렸던 내가 쉬워 보였나”

타블로가 소속된 ‘에픽하이’는 같은 제목의 노래에서 뒷담화 때문에 상처 받은 마음을 지면에 옮기기 어려운, 훨씬 더 직설적인 랩으로 노래 부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타인을 비방하고 헐뜯는 것은 인류가 생긴 이래, 어느 나라에서나 존재합니다. 앞서 소개한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토라’와 같은 율법과 <탈무드> 같은 오랜 가르침을 존중하는 민족인데, 그들조차 “다른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을 금한다”는 율법이 가장 지키기 어렵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지키기 어려운 인간의 약점이 아닌가 합니다.

상담을 요청한 분이 지금 겪고 계신 악성 소문을 저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사회생활의 비좁은 사다리를 오르다 보면 한두번씩 찾아오곤 하는 불청객이지요. 흔히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승진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감정 분출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심리적 보상이기도 하고요. 제가 대표이사 임기를 마치고 무직의 신분이 되었을 때, 환송 자리에서 제 입사 동기 중 한명이 했던 말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자네가 가장 먼저 임원이 되었을 때,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내가 축하해 줘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어. 그런데 이제 자네가 그만둔다고 하니 진심으로 위로를 하게 돼. 미안했어. 그리고 앞으로 잘될 거야. 내가 응원할게. 진심이야!”

콧날이 시큰했습니다.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진심으로 축하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나와 비교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은 악감정 없이 단순한 마음으로 뒷담화에 가세합니다. 직장에서 승진 인사를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또 자주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을 칭찬하거나 보상하는 것은 곧 다수의 시기심을 유발하니까요. 적절한 질투심은 자기발전과 조직의 성장에 도움을 주지만 일정 선을 넘으면 자칫 치명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잘나가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도 않습니다. 그때 조심해야 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일이 많이 생긴다)라는 말처럼, 좋은 일 뒤에는 으레 예기치 않던 불쾌한 일들이 따라다니기 마련입니다. 그 상당 부분은 나의 성공에 도취되어 주변의 감정을 미처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뒷담화의 피해자가 물론 힘들지만, 그 소문을 만들어낸 사람의 마음 또한 편하지 않답니다. 사실이 아닌 소문은 휘발성이 강합니다. 남다른 성과로 입증해내면 소문은 금방 증발되어 버려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스스로 멋지게 입증해 보이세요!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 대표이사·M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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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