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새벽 3시

퀸이 말하는 건, 아웃사이더가 주인공인 시대

송년회 지배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등록 : 2018-12-20 15:01
‘보랩’ 열풍 놓고 제각각 열띤 토론

보헤미안 정신은 아웃사이더 의식

괴테·박지원, 대표적 표상

방황의 농도와 실패 경험이 더 중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 얘기다. 연말 가는 곳마다, 송년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화의 소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다. 이런 동질감도 드물다. 모인 사람마다 경쟁적으로 한마디씩 한다.

“자네는 안 울었나? 나는 주책바가지처럼 눈물이 줄줄 나와서 애먹었어. 옆에 와이프가 있는데 보이지 않으려고 말이야.”

“나는 사람들이 왜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함께 떼창하는지 모르겠던데. 평소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영어로 된 팝송 가사를 외치는 건 정말 이해 못하겠어!”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한국만의 방식으로 콘텐츠를 수용하는 것은 잘하면 또 다른 형식의 콘텐츠 소비 형태로 키워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슨 얘기를 해도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보헤미안’이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보았다는 사람,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보기를 잘했다는 말도 나왔다. 한국에서만 관객 800만 명을 돌파했다는 것을 보면 전설적인 밴드 퀸의 고향 영국과 영화가 만들어진 미국보다 훨씬 더 심한 광풍이다.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너무도 다른 이질적인 한국에서 더욱 열광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람마다 해석이 다양하다.

“부적응자를 위한 부적응자들의 노래에 환호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적응이 안 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프레디 머큐리처럼 스스로 아웃사이더라 느끼는 마음이 강한 것 아닐까요?”

“우리는 냄비 의식이 너무 강해요. 영어권도 아니면서 이렇게 열광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하나의 ‘빠’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대 통합적 콘텐츠라고 봅니다. 사실 그동안 세대 간의 단절이 심했잖아요. 아빠와 아들, 할머니와 손녀 간에 서로 묶을 수 있는 공통된 장치가 없었던 듯싶어요. 외롭다고 느끼던 차에 그 단절된 마음이 퀸의 음악과 영화로 연결된 게 아닐까요?”

“물론 소수자의 아픔이나 이에 대한 배려도 중요했겠지만, 용서와 화해, 가족과 팀, 그리고 사랑 같은 전통적인 가치들이 영화 곳곳에 스토리텔링의 코드로 숨어 있는 게 더 큰 감동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해석이야 어떻든 퀸의 음악이 할퀸 세상은 심리적 치유를 받은 것이 틀림없다. 새삼 음악이란 장르가 갖는 위대함과 치유 효과에 놀란다. 많은 이들이 감정이입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허전한 마음을 회복한다. 과거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등 세시봉 세대 가수들이 등장했을 때도 그런 경험을 했다. 하나의 시대를 매듭 짓고, 하나의 벽을 통과하는 셈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은 경계인의 삶을 산다. 주류는 비주류의 자유를 그리워하고, 비주류는 주류의 안정을 원한다. 주류와 비주류,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중심과 변방 사이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어쩌면 인생이란 불만과 불안 사이의 아슬아슬한 이중주일지도 모른다. 직장인들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는 불만 속에서 살고, 취업을 앞둔 이들과 자영업자들, 프리랜서들은 알 수 없는 내일과 팍팍한 미래 앞에서 불안에 떤다. 아웃사이더는 인사이더의 안정을 갈구한다면, 조직 안 인사이더들은 그 안정이 오히려 불만이다. 많은 직장인은 겉돌고 있으며 만성 피로를 하소연한다. 조직 안에 있으니 분명 인사이더이지만 스스로 아웃사이더라 생각한다. 모두가 변방 의식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헤미안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던 괴테와 연암 박지원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헤미안의 어원이 되는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을 가장 많이 찾은 저명 인사가 괴테였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모두 16번이나 그곳을 방문했다. 과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벽 3시 알프스를 넘었던 유명한 이탈리아 기행의 출발지는 카를스바트, 이곳 역시 보헤미아 산맥 자락에 깊숙이 둘러싸인 곳이다.

조선 시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연암 박지원 역시 과거시험을 막판에 포기하고 야인의 길을 선택했다. 사대부 아니면 행세할 수 없었던 시대에 안정된 삶을 거부하는 것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북위 40도에서 함께 길을 걷고 또 함께 글을 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없는 18세기 후반의 역사는 너무도 지루하다.

어떤 점에서 불확실성은 자유의 본질이다. 편안한 자유란 없다. 하나를 선택했으면 또 다른 하나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창조는 그 불확실한 마음 가운데 생기는 것임을 괴테와 연암의 인생이 보여준다. 만약 그들이 주류의 삶만 고집했다면 사람들은 그토록 열광하지 않았으리라.

지금은 아웃사이더의 시대다. 과거에는 공부 잘하고 성공한 사람들에게 열광했다. 이 시대는 방황의 농도와 실패의 경험치가 더 중요한 시대다. 실패한 적 없고 아픈 적 없던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진정한 치유란 함께 아픔을 느끼는 공감이 있을 때 가능하다.

2018년 연말 또 한 명의 보헤미안이 있으니 그는 축구인 박항서다. 중심에서 밀려나 일자리를 찾아 동남아로 떠났던 나이 든 남자가 베트남의 영웅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감동받았다.

삶이 어려울수록 길을 떠나야 한다. ‘쉽게 왔다가 쉽게 떠나는’(Easy come Easy go)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 가사와 만날 필요가 있다. 힘든 것을 훌훌 털고 내가 세상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변방이 곧 중심이 된다. 그것이 진정한 보헤미안 정신 아닐까.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