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 역사의 프리즘, ‘용산공원 갤러리’

기고ㅣ권기욱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등록 : 2018-12-20 15:47 수정 : 2018-12-20 16:32
서울역과 용산역을 오가는 길목에는 주상복합건물들이 우후죽순 서 있다. 그 사이에 영화 <1987>로 시민의 시선이 집중된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고, 가까운 곳에 용산 기지 ‘캠프 킴’이 있다. 캠프 킴에는 한국인노무단(KSC, Korean Service Corp)이 있었다. 대부분의 인원이 한국인이었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미군보다 한국인이 훨씬 많았다. 미군들이 보기에 미군 기지라기보다는 한국 군대 같은 인상을 줬고, 캠프 이름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Kim)을 따서 캠프 이름으로 정했다.

지난달 30일 캠프 킴 터에 있던 미군위문협회(USO)의 흔적 위에 ‘용산공원 갤러리’ 간판이 걸렸다. 서울시·주한미군 공동 전시회가 열리는 이 건물은 1908년에 건축돼 일본군 육군 창고로 쓰이다가 한국전쟁 뒤 재건됐다. 약 40년 동안 미군위문협회 건물로 사용되며 판문점 관광 등 각종 미군 서비스와 위문 활동을 펼쳐온 이곳은 지난 8월 이전을 완료하고 폐쇄됐다.

11월30일 용산 기지 옛 미군위문협회(USO) 건물에서 ‘용산공원 갤러리’ 개관식이 열렸다. 서울시 제공

용산공원 갤러리를 방문하면 60여 점의 사진과 영상을 만날 수 있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국내 상황과 일본군의 철수 모습,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서울과 전후 복구의 노력 등 용산 기지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용산에 놓인 철도로 인한 신도시 건설의 흔적, 일본군 병영과 주한미군 기지 비교로 100만 평에 이르는 땅을 어떻게 사용하고 재편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용산 기지 주변 여의도와 이촌동, 서빙고동 일대에 펼쳐진 한강 백사장과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기 전까지 미군 골프장으로 활용된 모습도 볼 수 있다.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한강 너머 관악산을 볼 수 없는 상황과 너무 대조돼 서울이라는 도시에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용산공원 갤러리와 함께 추진된 용산 기지 버스투어는 11~12월 6차례 시범 운영됐다. 용산 기지 주요 거점 7곳을 둘러본 이번 투어는 근현대사의 단면을 두 눈으로 보고, 현장을 걷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용산 기지가 곧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기에 지속해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용산공원 갤러리를 확장하고 용산 기지 버스투어 횟수와 참여자 수를 늘리는 것은 용산공원 조성을 좀더 현실적인 미래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지문이 있듯 땅에 새겨진 흔적도 마찬가지다. 용산 기지는 용산 기지에만 남은 기억과 흔적이 있다. 바로 이 땅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과 사용해왔던 건물들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을 지나 냉전 시대까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금은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에서 정의한 본체 터와 산재 터에서 제한적으로 용산 기지 버스투어와 용산공원 갤러리를 시작했다.

캠프 킴 미국위문협회 건물 활용으로 만든 용산공원 갤러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부터 용산 기지의 역사까지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용산 기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해야 할까’에 답을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용산 기지를 최대한 보전하고 역사성, 문화성, 생태성을 갖춘 국민 여가 휴식 공간으로 만들려 한다. 이 의미를 공원화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지혜를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 용산공원 갤러리는 용산공원의 기본 이념을 담을 기반이자, 미래의 용산공원을 내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앞으로 용산공원 갤러리와 소통 공간의 안정적 운영을 기반으로 온전한 용산공원을 만들기 위해 중앙부처와 협력 체계를 재정립하고, 실질적인 국민 참여가 있는 ‘과정 중심으로의 공원 조성’ ‘미래 세대와 함께 만드는 공원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