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LP 이야기

“송창식의 ‘밤눈’이 내겐 최고의 겨울 노래”

송년 분위기 나는 노래들

등록 : 2018-12-27 14:57
작가 최인호가 쓴 노랫말에

불안한 영혼 담은 아름다운 멜로디

윤심덕·키보이스·나훈아의 캐럴

송년이 되면 어디서나 들렸던 노래

송창식의 ‘밤눈’이 수록된 그의 세번째 ‘LP’(맨위 왼쪽) 등 60~90년대 인기 가수들의 겨울 노래가 담긴 LP들.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 엄동설한의 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각종 송년회 모임과 크리스마스를 지나 송년의 시간이 다가오니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계절이 바뀌면 유난히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 봄비가 내리거나, 햇살이 강렬하고, 낙엽이 지고, 요즘처럼 날이 춥고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다시 듣고 싶은 계절 노래 말이다. 계절 노래는 그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부활하며 영원히 추억으로 기억된다. 마치 서랍 속에 고이 넣어뒀다가 문득 그리워질 때 꺼내보고 싶은 오래된 사진처럼.

겨울을 대표하는 대중가요와 겨울 풍경을 음반 재킷으로 장식한 시대별 가요 LP를 소개하려 한다. 과거 겨울을 대표하는 캐럴 LP에는 한 해를 보내는 송년가들이 대부분 포함되었다. 겨울 노래의 화두는 단연 하얀 ‘눈’과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은 기네스북에도 오른 빙 크로즈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이다. 그는 이 노래로 세 번이나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음반으로 발표된 국내 겨울 노래는 1926년 윤심덕의 ‘파우스트 노엘’, 즉 익숙한 캐럴인 ‘첫 번째 노엘’로 시작되었다. 1945년 해방 후 미군 주둔과 더불어 유입된 외국 팝가수들의 캐럴 음반을 통해 국내에도 캐럴의 대중화가 급격하게 이뤄졌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던 1950년대 말부터는 한복남, 전오승, 하기송 등이 창작 캐럴을 만들며 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때 당대의 인기 가수 송민도, 현인, 김용만, 김정애 등이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캐럴 LP를 잇따라 발표했다. 50년대 창작 캐럴은 고전 캐럴 멜로디를 차용했지만 완전 트로트 버전인지라 듣는 이를 웃음 짓게 한다.


고색창연한 50~60년대 국내 크리스마스 캐럴 LP들.

60~70년대는 록과 포크의 전성시대였다. 자연스럽게 많은 록밴드와 포크 가수가 독특하고 색다른 캐럴 음반으로 젊은 층의 호응을 끌어냈다. 고전 캐럴을 롱 버전의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로 편곡한 히파이브와 라스트 찬스, 키보이스 등 록밴드들의 캐럴 음반은 개체수의 희귀함과 탁월한 음악성 때문에 지금도 고가에 거래된다. ‘해변으로 가요’로 여름을 평정했던 키보이스는 ‘징글벨 락’으로 겨울까지 접수했다.

또한 이미자, 배호, 남진, 나훈아, 하춘화, 문주란, 박일남 등 많은 트로트 가수도 동참하며 캐럴 음반량은 급팽창했다. 그중 1972년 발매했던 나훈아의 캐럴 음반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한 조악한 재킷 디자인 때문에 외국에서 ‘월드 워스트 캐럴 음반 재킷 10’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창작곡까지 수록된 나훈아의 캐럴 음반은 꽤나 진귀하다. 쌍둥이 자매 듀엣 바니걸스의 엄마와 뽀뽀하는 가사가 등장하는 ‘지난해 본 산타 할아버지’는 이색 트로트 캐럴이니 한번 들어보시길 바란다.

60~90년대 사이키델릭 록, 랩, 국악 등 이색 장르 캐럴 LP들.

요즘은 캐럴 음반 신보가 많지 않아 발매 자체가 뉴스가 되는 디지털 시대다. 한때 저작권이 없는 캐럴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었다. 80~90년대만 해도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만 유통되는 캐럴 음반은 특별한 홍보 전략 없이도 수만 장은 거뜬히 팔려나갔다.

캐럴은 가수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개그맨, 배우들도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경쟁적으로 캐럴을 발표해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코믹 캐럴의 최대 히트작은 1982년에 나온 심형래의 코믹 캐럴이다. 국내 최초의 코믹 캐럴은 1966년에 발표된 코미디언 서영춘과 여성 듀엣 갑순을순의 ‘징글벨’로 봐야 한다. 이 곡은 서영춘의 형인 작곡가 서영은의 창작 캐럴을 기존의 ‘징글벨’에 리믹스한 버전으로 서영춘 특유의 익살이 돋보인다.

각종 60~90년대 개그맨 코믹 캐럴과 배우들의 캐럴 LP들.

계절 노래도 세대 간 간극이 있다. 겨울 노래만 해도 중장년층에게는 이미자의 ‘첫눈 내린 거리’, 4월과5월의 동요처럼 맑고 순수한 ‘겨울바람’, 조영남의 ‘함박눈 아가씨’, 현경과 영애의 ‘눈송이’, 이종용의 ‘겨울아이’, 송창식의 ‘밤눈’, 조하문의 ‘눈 오는 밤’, 이선희의 ‘겨울 애상’, 남성 듀엣 미스터 투의 데뷔곡 ‘하얀 겨울’, 푸른 하늘의 ‘겨울 바다’, 김종서의 ‘겨울비’ 등이 사랑받았다.

1977년 최대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던 영화 <겨울 여자>의 주제가 ‘겨울 이야기’도 김세화와 이영식이 부른, 진한 추억을 간직한 명곡이다. 또한 가요 순위 1위까지 오르며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게 팬을 확보했던 ‘하얀 겨울’은 당시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겨울 노래로는 빠지지 않고 흘러나왔다.

개인적으로 최고로 생각하는 겨울 노래는 70년대 포크 가수 송창식의 ‘밤눈’이다. 창작곡들로 포진된 1974년 송창식 3집에 수록된 이 노래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남성 듀오 트윈폴리오 결성 후 인기를 누리던 송창식은 입대 영장을 받고 가수 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 불안에 시달리며 심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소설가 최인호(음반에는 ‘최영호’로 표기)가 통기타 가수들에게 노랫말을 줘서 곡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송창식에게 배당된 노랫말이 바로 ‘밤눈’이었다. 최인호의 서정적인 노랫말도 근사했지만, 미래가 불투명했던 당시의 허탈하고 답답한 젊은 날의 솔직한 심정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담아낸 송창식의 진심은 많은 젊은 영혼들에게 오랫동안 공감대를 형성하며 사랑받았다.

겨울 풍경을 소재로 한 70~90년대 국내 대중가요 LP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는 KBS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등장했던 박효신의 ‘눈의 꽃’과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주제곡인 거미의 ‘날 그만 잊어요’를 선호한다. 유엔(UN)의 ‘평생’, 핑클의 ‘화이트’는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젊은 연인들의 발랄한 사랑을 묘사해 사랑받았던 겨울 노래다. 디제 디오시(DJ DOC)의 ‘겨울 이야기’나 젝스키스의 ‘커플’도 첫눈을 신나게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계절 노래다. 반대로 첫눈 오는 날이면 오히려 지난 추억 때문에 우울한 사람들은 드라마 <겨울연가> 주제곡인 류의 ‘처음부터 지금까지’나 김건모의 ‘겨울이 오면’, 원타임의 ‘위드아웃 유’를 들으며 마음을 달랬을 것 같다.

이처럼 세대별로 좋아하는 겨울 노래는 제각각이지만 겨울에 들어야 제격이란 점이 공통점이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