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맛보는 고향의 맛…한겨울이라 더욱 풍부한 맛

충청도 올갱잇국·경상도 과메기·전라도 꼬막·강원도 곤드레밥·평안도 음식들

등록 : 2019-01-03 14:49
제철에 먹어야 더 깊은 맛 나는

8도 음식이 있다

한겨울 구룡포 바닷바람에 마른

과메기와 남도 갯벌서 캔 꼬막

옥천에서 잡은 올갱이로 끓인 올갱잇국.

제철에 먹어야 더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한겨울 구룡포 바다의 바람과 햇볕에 마른 과메기와 남도의 갯벌에서 캔 꼬막이 그렇다. 겨울 밥상에 퍼지는 나물 향의 주인공은 강원도 곤드레밥이다. 몸을 덥히고 마음을 녹이는 올갱잇국은 충청도에서 유명하다. 어떤 지방의 겨울 대표 음식은 만둣국이다. 겨울에 더 생각나는 지방의 유명 음식들을 서울에서 맛봤다.

충청도 올갱잇국


‘올갱이’는 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다. 올갱이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 올갱잇국이다. 서울에서 올갱잇국 파는 곳은 드물다. 올갱잇국을 팔면서 차림표에 ‘다슬기국’이라고 적어놓은 식당도 있다. 올갱잇국과 다슬기국, 아무래도 올갱잇국이라고 해야 그 맛이 산다.

올갱잇국은 충북 괴산·충주·영동·옥천 지역에서 유명하다. 괴산과 충주는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달천 유역이다. 괴산을 지나는 달천을 괴강, 충주를 지나는 달천을 달래강이라고 이르기도 한다. 영동과 옥천을 흐르는 물줄기는 금강이다.

옛날에는 냇물에서 올갱이 한 대접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올갱이를 삶아 바늘로 살을 뺀다. 여럿이 모여 올갱이 살을 빼먹으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던 밤은 함초롬했다.

가을 올갱잇국이 맛있다. 올갱잇국의 맛을 더 그윽하고 깊게 하는 아욱이 가장 맛있는 때가 가을이기 때문이다. “가을 아욱국은 문을 잠그고 먹는다”는 옛말이 있다.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게 당연했던 시절에도 가을 아욱국은 아까웠던 모양이다. 그런 아욱국에 올갱이를 넣었으니 그 맛은 또 어땠을까.

올갱잇국 맛은 집마다 다 달랐다. 집마다 장맛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장으로는 낼 수 없는 맛이다.

괴산 괴강의 옛 올갱잇국 맛을 잇는 식당이 서울에도 있었는데 지금은 잠시 휴업 중이다. 겨울 추위 지나고 다시 문을 연단다. 그래서 금강이 흐르는 옥천의 옛 올갱잇국 맛을 잇는 식당을 찾아갔다.

옥천이 고향인 아줌마가 공덕시장 한쪽에서 올갱잇국을 끓인다. “겨울 올갱잇국에는 아욱하고 우거지가 들어가유, 겨울에는 우거지가 들어가야 시원한 맛이 깊어져유.” 아줌마의 겨울 올갱잇국 비법은 우거지다. 직접 담근 장맛이다. 옥천에서 잡은 올갱이다.

겨울 지나고 괴산의 옛 올갱잇국 맛을 볼 수 있는 식당이 문을 다시 열면 서울에 있는 충북의 올갱잇국 맛을 섭렵할 수 있겠다.

과메기와 꼬막

1970년대에는 바다가 없는 충북에서도 겨울을 대표하는 반찬 중 하나가 꼬막이었다. 꼬막을 삶아 껍데기 한쪽을 벗겨내고 꼬막 살 위에 간장양념장을 얹어 밥상에 올렸다. 짭조름하고 쫄깃한 맛은 겨울 밥상을 풍요롭게 해줬다. 꼬막 맛의 전형이 그런 줄 알고 있던 어느 날 전남 순천에서 꼬막의 새로운 맛을 봤다.

간장 양념으로 무친 꼬막

꼬막을 삶는 게 아니라 데치는 거였다. 꼬막 껍데기를 까면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꼬막 살과 핏물을 한입에 넣고 씹는데, 그 비릿하고 짭조름한 맛이 강렬했다. 간장양념장도 없이 그냥 꼬막만 먹는 거였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머리를 맞대고 쉴 새 없이 꼬막을 까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친 한마디, “아, 이게 꼬막이구나!”

한겨울 전남 벌교 시장은 꼬막 천지다. 식당에 꼬막 요리가 넘쳐난다. 꼬막데침, 꼬막무침, 꼬막전, 꼬막간장양념, 꼬막된장국, 꼬막비빔밥….

꼬막야채무침

전남 순천 낙안읍성 초가집에서 삼겹살을 굽고 있는데, 집주인 가족이 마당에서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뭔가를 구워 먹고 있었다. 불 옆 양동이에, 드럼통 위에 얹은 큰 석쇠 위에도 꼬막이 가득했다. 그날 밤에는 삼겹살이 꼬막에 밀렸다.

서울에서 벌교 꼬막으로 꼬막 요리를 한다는 식당을 찾았다. 지하철 가락시장역 부근에 있는 식당이었다. 간장무침, 채소무침, 찜, 전, 강된장 등 꼬막으로 만든 여러 음식을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꼬막정통정식을 시켰다. 남도의 겨울 향기를 담은 바람이 그리웠다.

경북 구룡포 과메기 또한 한겨울에 제맛을 내는 음식이다. 구룡포 바닷가 살을 에는 바닷바람과 맑은 햇빛 아래 과메기가 꾸덕꾸덕 마른다. 바닥에 떨어진 과메기 기름을 밟으면 신발이 쩍쩍 붙는다. 그렇게 마른 과메기가 포항 죽도시장 건어물 상가 거리에 즐비하다. 짚으로 엮은 과메기 다발도 보인다.

과메기가 경북 바닷가의 지역구 음식에서 전국구 음식이 된 건 20년이 채 안 된다. 서울 중구 다동에 있는 어느 식당 식탁마다 과메기가 놓였다. 겨울 중에서도 한겨울에 먹는 과메기 맛이 제일 낫다.

과메기

과메기 배추쌈.

평안도식 음식과 강원도 곤드레밥

서울 중구 무교동 빌딩 숲에 갇힌 기와집 한 채, 그곳이 평안도식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평안도에서 예전에 해 먹던 김치말이밥과 만두 요리가 인기다. 겨울밤 출출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김칫국물에 밥을 말아 먹은 것을 떠올려 만든 음식이 김치말이밥이라고 한다. 차가운 김치말이밥 한 대접에 속이 시원하고 개운해진다.

겨울 음식의 대표는 뜨끈한 국물에 만두를 넣고 끓인 만둣국 아니겠는가. 두부, 돼지고기, 숙주 등을 넣어 만두를 만든다. 만두 하나가 보통 여성 주먹만 하다. 만두는 모난 맛 없이 담백하다. 사골 우린 육수는 구수하다. 담백한 만두에 양념간장을 얹어 먹는다.

만둣국은 충청북도 중북부 지역과 강원도도 유명하다. 설날 차례상에 만둣국을 올린다. 가난했던 시절 시골에서는 고기만두보다 김치만두가 주류였다.

평안도식 만둣국

강원도의 또 다른 별미는 곤드레밥이다. 강원도에서도 정선과 영월 지방이 유명하다.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에 ‘한치 뒷산 곤드레 딱주기’라는 말이 나온다. 한치 뒷산은 민둥산이다.

가마꾼들도 혀를 내두르며 올랐다던 정선 유평리 산길을 따라 시집온 새색시가 한치 뒷산에 올라 곤드레와 딱주기를 따며 배운 노래가 ‘정선 아리랑’이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시절, 강원도 첩첩산골에서 따다 먹던 게 곤드레 딱주기였다.

곤드레 나물을 넣어 밥을 지은 게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나물과 함께 들기름을 넣어 밥을 하는 식당도 있다. 강된장이나 간장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곤드레밥 한상 차림.

강원도 곤드레나물로 곤드레밥을 지어 파는 식당이 서울에도 있다. 삼선교 전철역 주변에 있는 그 식당에서 곤드레찰솥밥을 시켰다. 구수한 곤드레나물 향이 밥에 잘 배었다. 간장양념장을 넣어 잘 비빈 곤드레밥을 한술 뜨는데, 식탁에 차려진 열세 가지 반찬에 왠지 서글퍼졌다. 정선 유평리 동구나무 아래서 정선아리랑을 불러주던 할머니의 새색시 때 얼굴은 참 고왔을 것 같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