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살 때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직업 실습을 마친 둘째 아들은 장래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독일의 직업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초등학생 때는 물론 기간도 짧고 업무를 배운다기보다는 견학을 하는 정도다. 그러나 7학년이 되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기 교육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회사나 기관에 직접 이력서를 제출해 실습 자리를 얻어내야 한다.
자리를 얻는다는 것이 어떤 아이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내성적이고 자기주장이 뚜렷한 우리 작은아들한테는 참 힘들고 고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나 거두절미하고, 남은 본론마저도 간단명료하기 그지없으니 면접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한번은 자리를 못 구해서 할 수 없이 원하지 않는 곳까지 지원을 하더니, 결국 자동차 정비소에서 실습 자리를 얻었다. 다른 엄마들은 나이에 비해 힘든 일이라고 걱정했고 그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달리 도움을 줄 방법도 없었다. 첫 출근 날 아이와 함께 가서 일터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온 것이 전부였다. 정비소에는 처음 보는 거대한 기계들이 즐비했고 벽마다 수십개의 타이어가 걸려 있었다. 작업복에 작업화까지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위험한 정비소에 열네살짜리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앞에 아이가 어른거려 수십번은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아이는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무슨 일을 했냐고 물었더니 자동차 부품 교체를 도왔다고 했다. 부지런히 저녁을 차려놓고 옆에 앉아 눈치만 살피고 있자니 몇 숟가락 넘기자마자 결국 참았던 울분을 토하듯 나에게 물었다.
“엄마, 나 내일 또 가야 되지? 나 이러다가일주일 지나기도 전에 죽을 것 같아.”
다른 엄마 같았으면 이럴 때 무슨 말을 했을까?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우리는 서로 똑같은 질문을 주고받았다. 나는 오늘은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고 아이는 내일 또 가야 되느냐고되물었다. 죽을 것만 같던 우리의 일주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실습 마지막 날, 여느 때처럼 작업복에 작업화를 질질 끌고 시커먼 얼굴로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오늘 공장에 어떤 한국 사람이 왔었어. 타이어가 펑크 나서 내가 갈아드렸어.”
“어머! 네가 타이어도 갈 줄 알아?”
“그럼. 공장에서 이제 타이어는 나 혼자 갈아.”
그러고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이 들어 버렸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저녁 식사 중에 아이가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나 파일럿이 되면 어떨까? 도(친구) 있잖아. 도가 전부터 자기도 타이어 한번 갈아보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러더니 결국 비행기 정비사가 되겠다는 거야.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나는 파일럿이 좋을 것 같아! 그러면 같이 일할 수도있고…. 어때 엄마?”
열네살 인생, 첫 꿈을 꾸는 눈동자는 그야말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글·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