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욕 페스티벌’로 가해 청소년 마음 열기
서울예술치유허브, 상처받은 청소년을 예술로 치유한 경험 모은 책 <더힐링스쿨> 출간
등록 : 2019-01-24 15:52
함께 욕한 뒤 사회 관계 형성
음악 등 다양한 예술 형식으로
닫힌 아이들 마음 여는 과정 다뤄
아이들 마음 여는 게 가장 중요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예술치유허브가 ‘상처 입은 청소년들을 예술을 통해 치유한 사례’를 모은 책 <더힐링스쿨>(커뮤니케이션북스)을 펴냈다.
<더힐링스쿨>은 서울예술치유허브가 2017년 인문예술·미술·응용 연극·음악·사진·무용·목공 등 다양한 예술 방식으로 128회 진행한 15개의 청소년 치유 프로그램의 내용을 담았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체 청소년은 1506명이 이른다.
프로그램 참여 청소년들은 주로 학교 밖 청소년이지만, 사실 우리나라 모든 청소년에게 예술 치유가 필요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2016년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이며, 중·고등학생 네 명 중 한 명은 자살 충동까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예술치유허브에서 청소년 치유에 활용한 예술 형식은 다양했지만, 치유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1일 서울예술치유허브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응용연극단체 문’의 김효진 대표는 2011년 한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과 연극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 ‘얘기 듣기’의 중요성을 경험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우선 가해 학생들에게 함께 욕을 하는 ‘욕 페스티벌’을 제안했다. 아이들과 라포(신뢰 관계) 형성을 위한 조처였다. 김 대표가 아이들과 실컷 욕을 한 뒤 “너희들은 언제 이런 욕을 하게 되니”라는 물음으로 말문을 트자 아이들은 어려운 가정환경이나 따돌림당하는 학교생활 등에 대한 얘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연극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우리 얘기 들어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라며 신뢰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김 대표는 2017년 청소년 미혼모 대상 연극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도 “고생했다. 괜찮다”며 청소년 미혼모들의 마음을 열었고,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사연을 말한 뒤 “나란 사람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며 울먹였다고 전했다. 상처 입은 청소년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꼭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예술 단체 ‘내내로’(‘항상 작업하는 작가’라는 의미의 함경도 사투리)의 정선주 대표(49)는 목공 작업을 하며 학교 밖 청소년들의 마음을 보듬었다. 치유 과정은 청소년들과 함께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주워 온 폐가구를 디자인하고 다듬는 것이 전부다. 정 대표가 청소년들에게 “이 부분을 사포로 잘 다듬어줄래?”라고 부탁하면 아이들은 한 시간 넘게 그 부분을 다듬는다. 정 대표는 “요즘 청소년들이 사회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서 “가구를 만드는 시간은 청소년들이 자기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며, 그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청소년들은 어느 순간 자기 얘기를 꺼내기도 한다.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마음이 치유되고 있다는 뜻이라 한다. 집에서 부모님들이 청소년의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김효진 대표는 “역시 청소년들이 말을 하게 해야 한다”며 “그러나 대놓고 ‘네 마음이 지금 어떠니’라고 묻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진단한다. 김 대표는 “대신 ‘집에 있는 물건 중에서 너와 가장 맞닿아 있는 물건은 뭐니?’라고 한 뒤, 그 이유를 묻는 간접 표현 방법이 더 치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수현 서울예술치유허브 담당 팀장은 “서울예술치유허브에서는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도 청소년 예술치유 사업을 중점 사업으로 진행했다”며 “올해는 3월쯤 ‘사회적 예술 치유 랩(Lab)’을 만들어 좀더 체계적으로 청소년 치유 문제를 다뤄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사회적 예술 치유 랩’에서는 지난 2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유예술가, 청소년 전문가, 심리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해 위기 청소년의 특성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3년 동안 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 서울예술치유허브의 우혜인 주임은 “청소년 예술 치유에 대한 모범 사례가 만들어지면, 사회적 예술 치유가 필요한 또 다른 계층인 청년이나 어르신들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도 본격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인문예술·미술·응용 연극·음악·사진·무용·목공 등으로 청소년을 치유한 사례집 의 출간 주역들이 지난 21일 성북구 종암동 서울문화재단 예술치유허브에 모였다. (왼쪽부터) 우혜인 서울예술치유허브 주임, 김효진 ‘응용연극단체 문’ 대표, 정선주 예술집단 ‘내내로’ 대표, 김수현 서울예술치유허브 담당 팀장.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예술치유허브에서 청소년 치유에 활용한 예술 형식은 다양했지만, 치유의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1일 서울예술치유허브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응용연극단체 문’의 김효진 대표는 2011년 한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가해 학생들과 연극 프로그램을 함께하면서 ‘얘기 듣기’의 중요성을 경험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우선 가해 학생들에게 함께 욕을 하는 ‘욕 페스티벌’을 제안했다. 아이들과 라포(신뢰 관계) 형성을 위한 조처였다. 김 대표가 아이들과 실컷 욕을 한 뒤 “너희들은 언제 이런 욕을 하게 되니”라는 물음으로 말문을 트자 아이들은 어려운 가정환경이나 따돌림당하는 학교생활 등에 대한 얘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연극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우리 얘기 들어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라며 신뢰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김 대표는 2017년 청소년 미혼모 대상 연극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도 “고생했다. 괜찮다”며 청소년 미혼모들의 마음을 열었고,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사연을 말한 뒤 “나란 사람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며 울먹였다고 전했다. 상처 입은 청소년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꼭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예술 단체 ‘내내로’(‘항상 작업하는 작가’라는 의미의 함경도 사투리)의 정선주 대표(49)는 목공 작업을 하며 학교 밖 청소년들의 마음을 보듬었다. 치유 과정은 청소년들과 함께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주워 온 폐가구를 디자인하고 다듬는 것이 전부다. 정 대표가 청소년들에게 “이 부분을 사포로 잘 다듬어줄래?”라고 부탁하면 아이들은 한 시간 넘게 그 부분을 다듬는다. 정 대표는 “요즘 청소년들이 사회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서 “가구를 만드는 시간은 청소년들이 자기도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며, 그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과정을 거친 뒤 청소년들은 어느 순간 자기 얘기를 꺼내기도 한다.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는 것은 마음이 치유되고 있다는 뜻이라 한다. 집에서 부모님들이 청소년의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할 방법은 없을까? 김효진 대표는 “역시 청소년들이 말을 하게 해야 한다”며 “그러나 대놓고 ‘네 마음이 지금 어떠니’라고 묻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진단한다. 김 대표는 “대신 ‘집에 있는 물건 중에서 너와 가장 맞닿아 있는 물건은 뭐니?’라고 한 뒤, 그 이유를 묻는 간접 표현 방법이 더 치유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수현 서울예술치유허브 담당 팀장은 “서울예술치유허브에서는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도 청소년 예술치유 사업을 중점 사업으로 진행했다”며 “올해는 3월쯤 ‘사회적 예술 치유 랩(Lab)’을 만들어 좀더 체계적으로 청소년 치유 문제를 다뤄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사회적 예술 치유 랩’에서는 지난 2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유예술가, 청소년 전문가, 심리 전문가들이 함께 연구해 위기 청소년의 특성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3년 동안 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 서울예술치유허브의 우혜인 주임은 “청소년 예술 치유에 대한 모범 사례가 만들어지면, 사회적 예술 치유가 필요한 또 다른 계층인 청년이나 어르신들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도 본격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