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동주민센터 공간 개선, 서울을 빛나게 할 작은 보석들”

서울시 공간 변화 실무 책임자 김태형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장

등록 : 2016-05-19 18:47 수정 : 2016-05-20 11:47
경영학을 공부하다가 건축가가 된 김태형 도시공간개선단장. 건축은 인문학이라는 생각으로 거대도시 서울을 역사와 자연, 인간이 어우러지는 ‘메타도시’로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은 날마다 공사 중이다. 불과 1~2년만 떠나 있어도 낯설어질 만큼 다이나믹하다. 이 변화무쌍한 거대도시는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뒤 도시공간개선단이 꾸려졌다. 바로 서울이란 도시의 ‘재생’ 비전을 수립하고 디자인하는 조직이다. 지난해 3월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장(개방직)으로 선임된 건축가 김태형(49)씨를 만나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들어 보았다.

우선 도시공간개선단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부터 설명해 달라.

“서울시 총괄건축가의 도시 비전이 공공건축 사업 현장에서 제대로 발현되도록 지원하는 행정 조직이다. 서울시의 관련 행정 조직과 민간에서 위촉된 총괄건축가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이다.”

‘총괄건축가’는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민간 건축가에게 도시 공간 설계에 관한 비전을 확립하도록 하고, 주요 도시 공간 사업의 정책 방향 설정과 기획, 자문, 조정 등의 일을 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서울시가 2014년 9월에 제도를 도입해 건축가 승효상씨를 초대 총괄건축가로 위촉했다. 그 첫 사업들이 세종대로 역사문화공간 사업, 서울역7017프로젝트, 세운상가 재개발 등이다.

총괄건축가란, 말 그대로 도시 건축 공간 전체를 총괄적으로 바라보자는 개념인데 서구에서는 보편적인가?

“서구의 선진 도시들은 ‘시티 아키텍트’(City Architect·도시 건축가)를 두고 도시 공간을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있다.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 건축가’(State Architect)까지 두고 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주어진 개발 선 안에 건물을 잘 박아넣는 것을 건축으로 여겼다. 그러나 서울이 세계 속의 도시를 지향하는 한 선과 선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


건축적인 관점에서 서울의 비전은 어떤 방향인가?

“서울은 인구 1천만이 넘는 현대적인 메가시티(거대도시)인 동시에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산수가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 도시이다. 전 세계 메가시티 중에서 서울처럼 여러 개의 산을 품은 도시는 없다. 그 산세 사이로 한강과 지천들이 흐른다. 600년 수도라는 역사성과 함께 서울의 산과 강이야말로 최고의 랜드마크이다. 이제는 서울이 가진 이런 인문적인 장점에 주목할 때가 왔다. 메가도시에서 ‘메타도시’로의 전환이다. 역사와 자연이 인간의 삶과 어우러지는 인문적인 도시가 메타도시의 의미다.”

서울시는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서울 4대문 안을 인문 도시로, 도심 바깥은 한강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걸어서 자연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생활권 네트워크 구축을 도시 재생과 공존의 비전으로 삼고 있다.

도시 공간의 비전, 구체적인 빅 플랜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예를 들어 차 없는 광화문 광장을 생각해 보자. 지하공간화 사업의 장기적 빅 플랜이 없다면 어떻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 경복궁 앞 월대나 조선시대 육조거리는 언제 어떻게 복원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이런 것들이 플랜의 대상이다. 육조거리가 복원되면 지상에는 현재 사람들의 거리가, 지하에는 과거 사람의 거리가 공존하게 된다. 이런 일은 많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하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지혜를 집약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다.”

지난해 1월 발족한 도시공간개선단이 중심이 되어 벌인 일 가운데 손꼽히는 사업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공간 개선 사업’이다.

“공공건축은 건축가의 사명감, 행정조직의 지원, 시민의식이 맞아떨어져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서울에는 모두 424개의 동주민센터가 있는데 먼저 74개 동을 대상으로 구청과 공공건축가들이 협약식을 맺고 공간 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200개, 내년 150개 사업을 진행해 모든 동주민센터 공간 개선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우리는 이것을 서울이란 도시에 박힌 ‘424개의 작은 보석들’이라고 부른다. 서울이란 메타시티를 반짝반짝 빛나게 할.”

개선단의 사업 중에 전통시장에 문화 공간을 집어넣어 활성화하는 개선 사업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 시내 31개 저소득층 주거지의 공간 재생 사업, 홍대 앞 같은 초과밀 지역의 재설계 등도 있다. 서울에만 200여개가 있다는 고가 하부 공간의 활용, 시 외곽의 차고지와 유수지 공간 개선 등의 아이디어도 눈길을 끈다.

“한강 노들꿈섬의 변화를 주목해 주기 바란다. 종래의 개발은 건축물을 먼저 짓고 공간 활용을 생각했다면, 노들섬은 최대한 자연을 살리면서 용도에 따라 가변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도시 공간 재생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선단의 향후 과제와 목표라면?

“공무원 조직에 들어와 보니 개별 프로세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제도적인 시스템 구축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건축가들이 각 부서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 지속가능한 역할 수행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건축진흥 기구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 과제이다. 예술 분야의 문예진흥원처럼 건축을 공공서비스 산업 차원에서 육성하는 건축진흥원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

김태형 단장은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다 건축으로 전환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건축, 그림을 좋아하긴 했으나 막상 건축은 그림과 별 상관이 없었다. 사물에 대한 이해력이 요구되는 인문학이었다. 공부하면서부터는 건축의 사회성에 관심을 쏟았다. 졸업작품도 오염된 양재천을 건축적 관점에서 재생하는 것이었다. 그런 시도를 정치가나 행정가의 일로 여기며 반겨 주지 않은 교수님들도 계셨지만….”

그는 2014년에 펴낸 책 <을지로2-을지로를 말하는 17가지 도시건축적 시도들>에서도 같은 관점을 보여 주었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조직하고 도시를 연구하고 바꾸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건축가의 일이 아니라면, 나는 건축가가 아니어도 좋다.’ 아마도 이런 철학이 그를 도시공간개선단의 초대 책임자로 이끌었을 것이다. “일은 엄청 많지만 지금처럼 행복하게 일한 적이 없었다. 설계부터 실행까지 자기 생각을 구현해 볼 수 있는 일을 가지고도 행복하지 않을 건축가가 어디에 있겠는가.”

<서울&> 콘텐츠 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