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개포동 미용실 ‘헤어스케치’ 문남근 원장이 손님 머리를 다듬고 있다. 이곳은 70세 이상 손님에게 요금을 30% 깎아 주는 ‘효사랑 업소’다.
강남구 개포 주공아파트 1단지 언덕에 자리 잡은 ‘헤어스케치’ 미용실에 할머니 세분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요즘 미용실답지 않게 18㎡(5.5평) 작은 공간, 미용사 1명, 의자도 1개인데 손님은 5명이 넘으니 무슨 일인가 싶다. 미용실 문에 붙은 조그만 간판 ‘효사랑 업소’가 답이다.
강남구 ‘효사랑 업소’는 70살 이상 지역 어르신에게 사용액의 30%를 깎아 드리기로 약속한 업소다. 이 미용실에서는 4만원인 일반 파마를 2만8000원에 할 수 있다. “머리만 해도 손주들한테 예쁘단 소리 들어. 난 두달에 한번씩 꼭 파마해.” 서용례(83) 할머니는 20년째 이곳에서만 머리를 한다고 했다. 4만원씩 두달에 한번 하면 1년에 24만원, 거기에 한달에 한번씩 커트도 한다니 1년 미용비가 총 36만원이다. 그런데 30% 할인을 받으면 1년에 10만8000원을 아낄 수 있다. 덕분에 용돈 걱정 덜었다며 할머니들이 밝게 웃었다.
그런데 동네 미용실이라고 다 같은 ‘할머니 파마’는 아니다. 놀랍게도 앉아 있는 할머니 세분을 포함해 머리를 하고 있는 손님까지 모두 모양이 다르다. “어르신들도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어요. 자연스러운 파마, 곱슬곱슬한 파마 원하는 대로 해 드린답니다.” 주인 문남근(52) 미용사가 머리를 말며 말했다. ‘효사랑 업소’로 손님에게 값을 깎아 준다 해서 구청에서 따로 받는 지원금은 없다. 그런데도 선뜻 동참하게 된 까닭은 뭘까? “가족 같은 마음으로 어르신들에게 더 해 드릴 거 없나 생각하다 구청에서 이런 캠페인을 한다고 해 작년부터 참여하게 됐어요.”
할인 혜택을 드리고부터 월매출이 줄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더 늘었어요. 어르신들이 가시는 데마다 홍보를 해 주셔서 그런 거 같아요.” 예구해(70) 할머니는 아침마다 가는 수영장에서 같은 반 수영 동기 여럿에게 미용실을 소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달에 ‘효 손님’만 꾸준히 30명이 넘는다.
‘효사랑 업소’에는 음식점도 있다. 개포동 ‘손짜장’은 노인들이 좋아하는 중국요리를 매장에 와서 드시면 30% 깎아 준다. 짜장면을 3500원에 먹을 수 있으니 주변 노인정에서 단체 손님으로 자주 찾는다. 주인 최길동(68)씨는 ‘효사랑 업소’ 취지가 좋아 참여하게 됐다며 “좋아하는 음식을 다른 곳 가서 드시는 것보다 할인도 받고 맛있게 드시면 기쁘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씨 역시 단골손님이 많아 매출은 줄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
강남구는 고령화사회에 따른 어르신 우대 목적으로 2013년 12월 ‘효사랑 업소’ 지정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 일반음식점 40개소로 시작한 효사랑 업소는 현재 일반음식점 220개소, 이·미용업소 75개소로 늘었다. 2014년에는 ‘혁신시책 부문 서울 창의상’을 받으며 성동구, 종로구, 광주광역시 서구 등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이 정책을 벤치마킹해 시행하고 있다.
영업주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만큼 강남구는 ‘효사랑 업소’의 참여율을 높이고자 우수업소에 구청장 표창을 하고, 안내 포스터와 리플릿을 만들어 경로당, 노인복지회관 등에 배포하며 홍보에 힘쓰고 있다. 한편 효사랑 업소를 이용하려면 이용자가 70살 이상 강남구민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이 필요한데, 업소별로 다른 할인 메뉴와 할인율을 알아보려면 동주민센터, 경로당, 노인복지회관, 강남구청 위생과(3423-7064, 7082)로 문의하면 된다.
글·사진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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