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랑 말 섞기 싫다는 듯, 타자마자 너나없이 휴대폰 ‘삼매경’

이충신 기자, 택시회사에 취업하다 ⑥ 이런 손님, 저런 손님

등록 : 2019-02-28 15:31
손님이 먼저 말 붙이는 경우 거의 없어

목적지 제대로 안 대는 손님 제일 ‘난감’

택시 기사의 제1 덕목은 ‘알고도 모른 척’

안타까운 손님의 사연에 가슴 먹먹해져

전·현직 택시 기사를 태운 경우도 여러 번

대부분 “택시 하지 마라”고 같은 충고

택시를 타려는 시민들이 2월21일 서울역 앞 택시 승강장에서 길게 줄을 서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기자가 지난해 12월11일부터 택시 운전을 한 8일 동안의 총 영업 횟수는 127회였다. 1회당 1명씩 손님을 태웠다고 계산해도 127명이고, 2~4명(가족 단위 손님)까지 태운 적도 있으니 총 손님 수는 어림잡아 160여 명쯤 된다. 손님의 직업도 회사원, 학생, 가정주부, 내레이터 모델, 막노동자 등 다양했는데, 택시 기사가 택시를 탄 적도 있다.


택시를 탄 손님 대부분은 심야 시간과 출근 시간대에 택시 잡기가 힘들다는 불만을 가장 많이 이야기했다. 더욱이 승차 거부가 더해지고 불친절하기까지 하니 택시를 타려는 쪽에서는 이런 일들을 당하고보면 여간 분통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택시 운전을 하면서 손님들의 불만을 들어보면 열에 아홉은 “필요할 때 택시 잡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기자가 택시 운전을 하는 동안 손님에게 받은 가장 큰 요금은 2만8500원이다. 12월14일 오후 3시11분께 서대문구 신촌기차역에서 출발해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까지 23.71㎞를 달려 받은 돈이다. 도로가 막혀 오후 4시49분에 도착했으니 1시간 반 넘게 걸렸다.

손님을 싣고 가장 멀리 간 거리는 28.27㎞, 가장 짧게 간 거리는 730m였다. 17일 저녁 8시57분께 금천구 독산1동 빅마트 앞에서 탄 손님은 밤 9시39분께 성북구 길음1동 이편한세상 아파트에서 내렸다. 가장 긴 거리로 42분이 걸렸고, 요금 2만3천원을 받았다. 가장 짧은 거리는 14일 오전 7시57분께 은평구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탄 손님이 근처의 와이티엔(YTN)까지 가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기본요금 3천원을 받았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요금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손님은 만나지 못했다. 기사들끼리 ‘요즘 택시는 초등학생도 탄다’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택시비가 싸다는 뜻이다. 기자가 택시를 운전하는 동안 초등학생은 태워보지 못했지만, 중학생은 태운 적 있다.

서울시의 1983년 시내버스 요금은 110원, 짜장면 값은 500원, 택시 기본요금은 600원이었다. 그러던 것이 35년이 지난 2018년 시내버스 요금은 1300원, 짜장면 값은 5천원, 택시 기본요금은 3천원으로 올랐다. 1983년 짜장면 값보다 20% 가까이 비쌌던 택시 기본요금은 2018년 짜장면값의 60% 수준으로 뒤바뀌었다. 2018년 버스 요금과 짜장면값은 1983년보다 열 배나 올랐지만 택시 기본요금은 다섯 배밖에 오르지 않았다.

이런 손님, 저런 손님

제일 난감한 손님은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제대로 말하지 않는 손님이다. 하루 2~3명 이런 손님을 만났다. 보통 이런 손님은 택시를 타자마자 ‘그냥 쭉 직진하자’고 한다. 기자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가겠다고 하면 ‘바로 요 앞이라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한 뒤, 좌회전과 우회전을 몇 차례 반복하고는 ‘저 앞에 내려달라’고 한다.

한번은 아파트 앞에서 손님을 태워 ‘어디까지 가시냐’고 물었다. 손님은 그냥 직진해달라고 했다. 다시 한번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도 자기가 길을 아니까 그냥 직진하란다. 이 손님은 수십 번의 좌회전과 우회전을 난발하면서 5천원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서야 한 골목 뒤에 내려달라고 했다. 게다가 이 손님은 좌석 시트가 자기 기호에 안 맞는다며 타박했다. 아무리 ‘손님은 왕’이라지만 종이나 하인이 된 기분에 자괴감이 들어 종일 기분이 언짢았다.

손님과 대화하면서 안타까운 사연을 듣는 경우도 있다. 택시 운전 2일째 되던 날,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40대 여성을 태웠다. 서울역에 왜 가는지 물으니, 오빠와 어머니가 수원에서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15일 전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는데, 식물인간 상태라고 했다. “의사가 남편이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면서 장기 기증을 하려면 뇌사 판정을 내려야 한다고 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오빠가 병원에 오면 그 일을 상의할 참이라고. 기자가 뒷거울(백미러)로 슬쩍 보니,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좌석에 몸을 기댄 모습이 무척 고단해 보였다. 서울역에 도착하자 택시비가 1만원 넘게 나왔다. 손님이 천원짜리 현금을 세는 모습을 보고 1만원만 달라고 하고 나머지는 받지 않았다. 나중에 만원도 받지 말걸 괜히 받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손님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실수할 수 있다. 야간 근무 2일째인 17일 밤 10시께 성북구의 마을도서관 앞에서 한 남성을 태웠다. 도서관 앞에서 태운데다 가방도 들고 있고 외모가 어려 보이길래 고등학생이냐고 물었다.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럼 대학생이냐고 물었더니 좀 뜸을 들이더니 34살이라고 했다. 곧바로 ‘죄송하다’고 사과했더니,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며 택시의 승차 거부와 불친절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손님들이 길을 더 잘 안다

“손님이 택시를 타서 어디로 가자고 하면, 길을 알아도 모른 척하세요. 내가 택시 운전한 지 며칠 안 돼서 그런데, 손님 아는 길 있으면 안내해주실래요 하면 불상사가 안 나요. 열에 아홉은 그러냐며 친절하게 알려주고 잔돈도 안 받아요.”

택시 기사의 가장 큰 덕목은 ‘모른 척하는 것’이다. 많은 택시 기사가 운전을 처음 할 때는 손님과 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 길을 알아도 모른 척하라고 알려줬다. 그러지 않고 마음대로 갔다가 길 막히고 요금 올라가면 손님이 시비를 걸 때도 있다는 것이다.

손님들은 보통 택시를 타면 도로변 큰 건물이나 관공서명을 말하면서 그 앞으로 가자고 한다. 열심히 달려서 그곳에 도착하면, 다시 구체적인 목적지를 말한다. 대부분 대로변에서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택시 운전 5일째 되던 날, 용산구 이촌동 대림아파트 앞에서 탄 손님이 광흥창역으로 가자고 했다. “강변북로 타주세요. 좌회전하면 강변북로 타는 길 있어요.” 친절하게 길까지 알려줬다. 토요일 낮이라서인지 강변북로가 한산했다. 광흥창역에 다 왔을 즈음에 손님이 좌회전과 우회전을 외치기 시작했다. ‘깊은’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세워달라는 말을 하고는 내렸다.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카오콜로 손님을 태울 때 골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콜을 받아 열심히 목적지에 가면 골목은 물론이고 언덕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경우도 있다. “기본요금 3천원 거리도 콜을 많이 때려요. 골목으로 열심히 2㎞ 정도 올라가면 3천원짜리야. 길을 모를 때야 잡지만, 알면 안 잡지.” 함께 근무했던 택시 기사 장아무개씨는 골목에서 골목으로 가는 카카오콜 때문에 짜증이 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손님들은 더 이상 택시 기사와 대화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손님이 택시를 타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된 듯한데, 요즘은 택시 기사들과 손님이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가 묻지 않으면, 손님이 먼저 기사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다. 열에 아홉은 기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과거에는 택시 기사와 손님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했는데, 요즘은 거의 안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휴대폰만 보면 택시 기사한테 듣는 것보다 더 자세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많은데 기사에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 손님은 택시에 타면 휴대폰을 꺼내고 곧바로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으니 기사가 말을 건넬 틈이 보이지 않는다. 손님에 따라 다르지만, 기사가 말 거는 것을 대부분 귀찮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현직 택시 기사나 택시 기사였던 손님을 태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대부분 얘기를 많이 거는데, “택시 운전 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했다. 택시 운전 4일째 되는 날 새벽 6시께 대림역까지 가는 손님을 태웠다. 그는 “날이 추우면 택시 손님이 많다”며 아는 체했다. 그러면서 나도 3년 전에 택시 운전을 해봤다고 했다. 그는 사고가 났는데 생돈을 물어냈다며 “또 사고가 나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고가 나도 개인이 처리해야 하고, 당시 생각만 하면 한숨만 나온다”며 “젊은 사람이…택시 하지 마라”고 충고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