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남편도 아빠로서 만들어질 상당 시간 필요해요

육아 관심 없는 남편 때문에 힘든 30대 초보 엄마 “내 삶은 다 바뀌었는데…”

등록 : 2016-05-26 13:36 수정 : 2016-05-26 15:01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저는 4개월 된 아기가 있는 30대 초반의 엄마입니다. 대학 졸업 후 회사 동기로 남편을 만났고 친구처럼 지내다가 연애 4년 만에 자연스럽게 결혼했습니다. 지금은 육아휴직으로 하루 종일 아기를 돌보고 있습니다. 모든 게 처음인 실전 육아로 몸과 마음이 모두 정말 힘들더라구요.

문제는 출산 이후 더 힘들어진 남편과의 관계입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내 몸이 힘들고 또 그 힘든 몸으로 24시간 아기를 봐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하루하루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커지고 저의 짜증과 비난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출산 전에는 그래도 이해할 수 있었고 가볍게 넘어간 것들이 출산 후에는 그렇게 되지가 않더라구요. 몇 번의 고비 때마다 남편에게 심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기를 밤낮없이 보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차라리 회사에 출근하는 게 백번 낫겠다고, 또 모유 수유로 인해 온몸이 얼마나 아픈지를요.

그리고 아기를 재우기 전에는 그가 좋아하는 야구나 휴대폰 게임을 삼가 달라고, 또 나에게 가끔은 자유시간을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어떨 때는 차분하게 어떨 때는 울면서도 얘기했습니다. 제가 심각하게 얘기할 때 남편은 대개 잘 받아들이고 잘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루이틀 나아진 것 같아도 또 틈이 나면 야구를 보고 게임을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내 삶은 출산과 함께 다 바뀌어 버렸는데 남편은 똑같이 지내는구나 싶습니다. 내 몸은 이렇게 변하고 또 아프고 힘든데 남편은 겉으로만 걱정하고 정말로 저를 위한다는 생각이 안 듭니다. 서로 너무 안 맞는 우리 어떻게 계속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제이

A. 생후 4개월 된 아이가 있다면 제이님 부부는 그야말로 초보 부모군요! 초보 부모란 부모 노릇이 아직 익숙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그때는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떨떨한 때이고, 잔뜩 긴장하셨을 거고, 아이 중심의 생활을 상당히 불편하게 느끼실 때입니다.

정체성을 바꾸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늙을 때까지 다양한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아기에서, 어린이로, 또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그리고 부부와 부모로 말이지요. 그런데 정체성이 바뀌는 과도기에는 매우 어색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게 됩니다. 사춘기와 갱년기 증후군, 산후우울증 등이 바로 좋은 예이지요.

그래도 여성은 엄마라는 정체성에 좀더 익숙할 겁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아이를 잉태하고 배가 불러 오는 과정에서 엄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니까요. 문제는 아빠인데, 아빠가 되기를 아주 간절히 기다렸던 경우가 아니라면 남성에게 아이의 탄생은 비교적 급작스럽고 낯선 사건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아이의 탄생에서 조금은 주변인 같은 존재, 소외된 존재입니다. 아내와 아이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지켜보는 목격자라고 할 수도 있고요. 사실 소외된 사람이 자처해서 적극적으로 자기 일을 맡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아빠는 아이가 태어나도 이처럼 아빠 준비가 덜 되어 있는 상태일 수 있답니다.

심리학자와 소아정신과 의사인 스턴 부부는 그들의 책 <좋은 엄마는 만들어진다>에서 출산 후 아내가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남편은 아내가 아기에게만 집중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조언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변화를 보면서 혼란과 질투 등을 느끼며, 심지어 충만하고 신비한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 자신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엄마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로서의 역할과 정체성은 본능처럼 발휘되는 게 아니며, 애쓰고 수고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던 이유들 때문에 아빠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빠는 그야말로 아빠로서 만들어질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빠들이야말로 부모 교육, 부모가 될 준비가 필요한 것이지요.

짧은 글로는 다 파악할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 두 분은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의 탄생과 육아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제이님도 역시 육아에서 남편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으신 것 같고요. 그렇다면 이제라도 고민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저는 제이님에게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제이님이 남편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짜증과 화, 우울한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는 남편의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육아노동을 분담해 주기를 원하시나요? 아니면 힘든 제이님의 마음을 미리 알아 다독여 주길 원하시나요? 그것도 아니면 제이님의 하소연을 들어 주기를 원하시는 건가요? 글에서 보면 제이님이 남편에게 힘들다거나 게임을 삼가라는 말씀은 하셨는데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힘든 걸 알아달라라든지 보기 싫은 걸 하지 말라고 요구하시기보다는 남편에게 어떤 구체적인 일을 주세요. 일주일에 몇 번은 집에 들어와 나와 수다를 떨어 줘, 또는 일주일에 몇 번은 저녁에 들어와 내가 일찍 잠들 수 있도록 아이를 봐 줘, 아이 빨래를 맡아 줘, 당분간 집안일을 맡아 줘, 우유병을 삶아 줘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혹시 알아서 다해 주기를 기대하시나요? 그러지 않는 남편이 이기적이고, 제이님 자신은 피해자, 소외된 자, 그리고 위로 받아야 할 사람처럼 여겨지시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알아서 다해 주는 관계는 부모와 자식 관계밖에는 없습니다. 서로 성인인 관계에서는 그것이 부부일지라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요구해서 문제를 풀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이님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의 드라마에서 정말 멋진 일을 해낸 엄마라는 이름의 주인공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세요! 몸이 많이 지치셨겠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시고, 지혜롭게 남편을 육아 과정에 끌어들이세요. 또 부담되는 육아 노동을 해결할 대책도 남편과 함께 모색해 보시고요. 아기가 4개월이라면 남편의 협조를 요구하기에 아주 좋은 시기입니다.

박미라 심리상담가·<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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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