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는 강북구청이 해마다 여는 ‘더불어사는세상 꿈의 장터’에서 공공박스 손수레를 끌고 돌아다니며 홍보한다.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제공
서울에서 재사용가게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어디일까? 강북구다. 모두 16곳으로 다른 자치구의 3~4배나 된다. 그런 강북구의 재사용가게들이 지금 재미난 실험을 하고 있다. 3년 전 손을 잡고 함께 꾸린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강자네)다.
재사용가게들은 주민들에게 친환경적 자원 순환 방법인 ‘재사용’에 대해 알리고, 기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강자네로 뭉쳤다. 공동의 브랜드를 만들고 지역의 재사용가게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도 그렸다. 주민들이 손쉽게 기부할 수 있도록 온라인 기부 플랫폼 ‘○○박스’((http://oobox.kr)까지 만들었다.
강자네에는 ‘아름다운가게’, ‘녹색가게’, ‘함께웃는가게’ 등 크고 작은 재사용가게 14곳이 함께한다. 이들 가게를 운영하는 주체는 시민단체, 발달장애인부모회, 자활센터, 종교기관 등으로 다양하다.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녹색가게는 생활용품을 다시 쓰고 바꿔 쓰는 생활문화 운동에 비중을 둔다. 발달장애인부모회의 함께웃는가게는 교육과 직업 체험 등으로 장애 청년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다. 자활센터의 ‘민들레가게’는 일자리 만들기가 초점이고, 천주교구가 운영하는 ‘살림’은 지역주민의 쉼터가 되는 것이 주된 목표다. 그렇지만 자원 순환의 문화를 만들어 환경을 보존하고, 공동체를 살리며,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데 힘을 보탠다는 기본 취지에는 ‘한마음 한뜻’이다.
네트워크로 함께 할 일을 찾으면서 공동 브랜드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공동 브랜드를 지역에 알리면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고 재사용가게가 좀 더 잘 알려질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2014년 ‘○○박스’라는 이름으로 생각이 모였다. 강자네에서 간사 일을 맡고 있는 강북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김준열 실장은 “공공성을 담고 있고, 자원순환을 뜻하는 기호(∞)로 이어지고, 어떤 물건이든 기부할 수 있다는 뜻에서 ○○박스라고 이름 지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생태계조성사업 지원비 1000여만원을 활용해 강자네는 강북구 재사용가게 지도를 만들고 온라인 기부 서비스 플랫폼도 열었다. 기부자가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가까운 곳의 강자네 재사용가게가 접수해 수거하는 방식이다. 기부 받은 물품의 판매수익금은 가게의 운영 목적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지역의 이웃을 위해 쓰인다. 최미경 함께웃는가게 대표는 “기부나 기증이 돈이 들거나 귀찮은 것이 아니라 쉬운 생활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강자네는 자치구가 여는 지역 장터로도 열심히 나간다. 강북구청이 북서울꿈의숲에서 2014년부터 해마다 여는 ‘더불어사는세상 꿈의장터’는 개인이나 단체가 100여팀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강자네는 첫해 장터에선 기부 물품을 들고 오는 사람들에게 노트북으로 ○○박스 누리집을 보여 주고, ○○박스의 취지와 이용법을 알렸다. 장터를 돌아다니며 강북구 재사용가게 지도도 보여 줬다. ○○박스 덮개를 씌운 짐수레를 단 자전거로 좁은 장터 길을 누비기도 했다. ○○박스 그림 걸개막이 재밌어 보였는지 아이들은 짐수레에 태워 달라고 졸라댔다.
지난해부터는 장터에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경석 녹색가게 대표는 “자원 순환 문화는 지역주민의 생각이 바뀌는 것에서 시작하기에 체험 등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펼침막(현수막)으로 만든 장바구니에 그림을 그려 넣기, 버려진 자투리천과 병뚜껑으로 머리끈 만들기, 발효세제(EM) 활성액으로 세안제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체험 활동을 하면서 참가자들은 재사용의 의미를 알아가고 기부 플랫폼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박스’ 이름을 단 수거함은 올겨울쯤 선보일 예정이다. 강자네는 올해 말쯤 강북구청 강당에서 중·고등학생 대상의 교복 바자회를 구상 중인데, 바자회에 참여할 학교에 ○○박스를 두고 교복을 기부 받을 계획이다. 경해진 아름다운가게 미아점 매니저는 “‘여러분의 교복을 ○○박스로 나눠 주세요’라는 콘셉트의 교복 나눔 행사는 강자네의 정체성을 잘 보여 주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자네는 또 기증품 공동 수거로 한 단계 발전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재사용가게마다 여건이 달라 제대로 협업 체계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적잖이 걸린다. 우선은 트럭을 공동으로 사용해 수거를 함께하는 것이 목표다. 함께웃는가게 등 수거 차량이 없는 재사용가게들은 공동 수거에 기대가 크다. 아울러 공동 명함, ○○박스 스티커도 만들 계획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수도권에서 생활용품 기부를 경험한 가구수가 전체의 1~2%에 불과할 정도로 우리는 기부 문화가 열악하다. 강자네 ○○박스는 재사용 문화를 확산하는 데 의미가 큰, 좋은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홍 소장은 “이런 지역의 실험이 성공하고 안착할 수 있도록 물류 플랫폼 구축 등 공공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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